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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부 Oct 31. 2021

관계의 삼투압

관계의 난제를 풀어가는 어린 아이들과 답을 모르는 선생님 

삼총사가 나란히 등하교를 함께 하고 청소를 기다려주고 먹을 것을 똑같이 나눠먹는 행복한 날만 이어지면 좋으련만.. 여느 하굣길, 누군가는 함께 걷는 두 친구의 그림자가 유독 자신과는 멀어져 있음을, 어느새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가까워졌음을 발견하곤 한다.



‘선생님 저는 3명이서 다니는 관계가 스트레스예요. 저 빼고 나머지 둘이서만 친하게 지내는 거 같아 신경 쓰여요.’ 


정현이가 상담 시간에 고민을 털어놓았다. 정현이는 친구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큰 아이였다. 학교생활 만족도로 10점 만점에 7점을 주길래 왜이냐고 물었더니 첫째로 학업 스트레스, 둘째로 위와 같은 삼자 관계를 꼽았다. 


친구 사이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가 어찌 보면 이 삼자 관계가 아닌가 싶다. 세 명은 두 명일 때보다 즐거울지는 몰라도 두 명이 주는 관계의 상대적인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삼총사가 나란히 등하교를 함께 하고 청소를 기다려주고 먹을 것을 똑같이 나눠먹는 행복한 날만 이어지면 좋으련만. 여느 하굣길, 누군가는 함께 걷는 두 친구의 그림자가 유독 자신과는 멀어져 있음을, 어느새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가까워졌음을 발견하곤 한다. 관계의 저울이 기우는 순간, 상처 받는 이가 생긴다. 찬란했던 우정이 한순간에 괴로움과 고민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물론 이런 인간관계의 비극이 비단 삼자 관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계 맺기란 다 자란 성인이 되어서도 익숙지 않은 인생 최대 난제이니까. 


그 누구인들 쉬우련만, 유독 관계의 불안정성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쉬는 시간에 대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 물론 자리를 지키지 않는 아이들 중에는 그저 사교성이 좋고 활발하여 말 걸기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체질에 맞음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일어나 친구의 자리로 향한다. 그들은 표류하는 배처럼 교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 이루어지는 작은 사교모임은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 짧은 10분,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최근 소식과  ‘시험 끝나고 같이 놀래?’ 등과 같은 약속을 생각하면 결코 빠지기 쉽지 않은 모임이다. 문제는 세 명이서 친하다고 해도 꼭 모든 약속에 다른 한 명을 끼우리란 법은 없다는 것이다.  ‘어제 인스타 스토리 보니까 둘이서만 피자 먹으러 갔던데 왜 나는 부르지 않았을까?’, ‘혹시 둘이서만 놀고 싶은 걸까. 물어보면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까.’ 

사사로운 모임이어도 초대장을 받아 보지 못한 경험이 있는 누구라도 느껴보았을 심정이다. 왕따를 당하는 것도 아닌데 소외당한다는 기분을 지우기 힘들다. 불안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은 친구를 더 확실하게 잡아두고 싶어 하고 그러다 보니 때론 집착 아닌 집착으로 이어진다. 


‘오늘 나랑 끝나고 같이 가.’ ‘내 청소 기다려줘.’ ‘시험 끝나고 나랑 놀아.’ 

한 명의 일방적인 애정 갈구는 오히려 상대를 멀어지게만 만드는 것이 인간사 법칙인 것일까?

정현이 역시, 자신이 친구들한테 다가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정현이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야 나도 한 때는 정현이 같은 아이였기 때문에. 


나는 심리학자가 아니기에 유독 관계의 불안을 느끼는 아이들이 어떤 이유로 그러는지는 알 수 없다. 많은 이유와 설명이 있지만 뭐 하나 나를 단정 지어 설명해주는 것은 없었다. 그보단 정현이가 이 문제로 조금이라도 덜 괴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하나였다. 

‘정현아, 그럴 땐 너 자리를 지켜.’ 

‘...... 일단 너 자리를 지키고 너 할 일을 해. 처음엔 신경 쓰이고 잘 안돼도 일단 자리를 지키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너 자리에 오게 되고 너를 궁금해할 거야.’

정현이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 내가 발견한 사실이 있었다. 유독 몇몇 친구의 자리로만 아이들이 몰린다는 것. 자리에 친구가 몰리는 아이들은 웃겨서, 인기가 많아서, 공부를 잘해서, 늘 새로운 소식을 가지고 와서 등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친구들이 모여드는 아이들은 확실한 특징이 있었다. 그들은 늘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종이 울리자마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이들과 달리, 그 아이들은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며 본인의 할 일부터 끝낸다. 그것이 공부를 하는 것이든,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든 그들은 주어진 할 일을 마치고 나서야 고개를 들고 다른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보면 대게는 누군가 먼저 알아서 말을 걸고는 했다.  

(물론, 이 시기는 아직 서로가 서로를 전혀 모르는 학기 초가 아닌 어느 정도 친구관계가 형성되었을 즈음에 해당한다.)



배의 닻처럼 굵직하게 자리를 지키면 그곳에 사람이 모인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학창 시절 수많은 관계 실험을 거치며 어렴풋이 깨달은 인간관계의 진리 중 하나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웃긴 농담과 화려한 언변으로 자신을 마구 어필하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잘하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인간관계에도 삼투압 현상이란 게 있어서 사람들은 농도가 약한 누군가보다는 짙고 무거운 농도의 사람에게 자연스레 끌리는 것이 아닐까. 관심을 구하고 애정을 갈구한다고 해서 상대방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질수록, 그곳에서 나의 색을 찾고 나의 자리를 무겁게 지킬수록 자연히 누군가 끌려온다는 것을 나는 정현이가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얼마 후 정현이와 나는 두 번째 상담을 가졌다. 정현이는 시험 준비로 새벽까지 공부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신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고 했다. 

‘이젠 좀 내려놓았어요. 쉬는 시간에 둘이서만 얘기하든 말든 신경 안 써요.’

‘내려놓아보니까 어때?’

‘훨씬 편해요. 그리고 음, 요새는 전보다 더 잘 지내는 거 같아요.’

정현이는 딱히 나의 조언을 받아들였다기보다는 스스로 타인과의 적절한 간격을 찾은 듯 보였다. 어쩌면 늘어만가는 공부량 덕에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할 정도로 힘에 부쳤을 수도. 


아무쪼록 나는 편해졌다는 정현이를 보며 마음이 편해졌다. 빠른 시간에 스스로 내려놓았다는 정현이를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조금 마음이 아프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채로. 하교 시간, 세 친구는 여전히 서로의 청소를 기다려주고 떡볶이 약속을 잡곤 한다. 나는 운동장 한가운데로 멀어지는 아이들의 그림자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어린 시절에는 그토록 아슬아슬하던 인간관계였건만, 세월이 지나 스스로 감당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무거워진 나는 더 이상 흔들거리지 않는다. 저 어린 친구들도 인간관계란 때론 멀어지고 때론 다가오며 균형을 찾아가는 일종의 균형 잡기 놀이 같은 것임을 서서히 알게 되지 않을까. 새삼 세 친구의 우정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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