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인부 Oct 31. 2021

파수꾼의 마음으로

교사란 직업에 대해. 글을 시작하는 이유

누군가 나에 대해 교사로서의 삶을 묻는다면 나는 매일매일 이루어지는 작은 인생 실험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기록은 시기와 시기 사이 기묘하게 구겨 접힌 순간들, 눈부시게 화려해 잡아보려 다가서면 먼지처럼 부서지던 찰나들, 눈으로 담고 글로 옮기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는 감정들의 기록이자 필사이다. 


‘여러분은 어떤 직업의식을 가지고 일합니까?’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직업의 의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곤 한다.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업을 그저 생계 수단으로만 삼기엔 스스로에게 너무나 각박하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땐 홀로 30명의 아이들을 오롯이 감당한다는 것이 큰 책임으로 와닿았다. 

30인분의 책임을 감당하기엔 난 아직 한 뼘도 자라지 않은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상은 내게 큰 기대가 없어 보였다. 이 세상 누구라도 가장 깊숙한 곳에서 오랜 시간을 겪어본 곳이 학교인 만큼 교사는 삼자의 입에서 쉽게 오르내리는 직업이다. 


‘우리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은 다 꼰대들 뿐이었는데’

‘옛날만큼 연금 메리트는 없지만 방학은 최고 장점인 직업이지.’

‘요즘 중2병이 장난 아니라던데 애들 대하기 참 힘들겠어.’

‘퇴근 빨라서 부럽다. 넌 어디 가서 힘들다고 하지 마라.’ 


이런저런 수식어, 맞는 말, 틀린 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말들 속에서 어떤 선생이 되고 싶은가라는 고민은 무색해지곤 했다. 만약 내가 이제 와서 ‘어떤 직업의식으로 일합니까?’라는 질문에 구체적인 목표와 투철한 직업정신을 들이댄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누군가 내게 다시 물어봐주었으면 좋겠다.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납니까?'

그럼 나는 한껏 미사여구를 덧붙여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는 무뎌진 일상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 흐려진 거울을 매일 같이 닦는 사람의 심정으로 아이들을 만납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늦은 오후, 불이 꺼진 긴 복도를 걷다가 혼자 복도를 청소하고 있는 학생을 보았다. 그 아이는 보는 이도 하나 없는 복도 끝에서 물기 마른 곳 하나 없도록 한 줄 한 줄 맞춰 정성스레 물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학생이기에 담임선생님이 엄하신 건지 그냥 성격이 곧 죽어도 깔끔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 아이는 날보고 꾸벅 인사를 하더니 남은 구역도 열심히 걸레질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내가 교사로서 만나는 모든 순간들이 누군가의 아주 작고 사소한 인생의 조각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즈음의 난 삶의 이런저런 시련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던 상태였다. 매일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먼지 쌓인 과거만 되짚고 아무 성과도 못 보는 역사학자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는 불 꺼진 복도에서 혼자 걸레질을 하던 아이의 모습은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해 주었다. 어쩌면 복도를 가득 메운 늦은 오후의 햇살과 아이가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복도 끝까지 길어지는 그림자에 가려 그런 착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상관은 없었다. 누군가 미래에서 애타게 찾고 있는 인생의 조각을 실은 내가 매일같이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짜릿했으니까. 


얼마 전 친한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가르친 요만하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찾아오면 기분이 이상해.

아이들은 이만큼 커버렸는데 나는 이 자리에 그대로 멈춰있는 기분이야.’


가을로 접어드는 쌀쌀한 날씨 덕인지, 그 말이 슬프게 느껴졌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멈춰있음’이란 그거 자체로는 그리 나쁘지 않을 수 있겠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그저 벼랑 끝의 파수꾼 역할을 하고 싶다던 홀든처럼 나도 그런 역할을 하면 되지 않을까. 어린아이들만 수천 명이 있고 주변에 어른이라곤 자신밖에 없는 호밀밭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벼랑에서 떨어질 거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역할. 


내가 언제까지 멈춰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멈춰있는 한 그런 기록을 해보려고 한다. 아이들이 노는 호밀밭의 풍경 하나하나를 한 눈으로 담아내는 기록. 그러니까, 누군가 나에 대해 교사로서의 삶을 묻는다면 나는 매일매일 이루어지는 작은 인생 실험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기록은 시기와 시기 사이 기묘하게 구겨 접힌 순간들, 눈부시게 화려해 잡아보려 다가서면 먼지처럼 부서지던 찰나들, 눈으로 담아 글로 옮기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는 감정들의 기록이자 필사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