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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Jan 05. 2024

본인을 본인이라고 인증해야 하는 본인

 마블, 티타늄, 다이아몬드...


히어로 영화속  무기에 붙이면 딱인 단어지만 대한민국 어느 집이든 하나 이상 있다고 장담한다.

거의 하루에 한 번은 쓰게 되는 그것, 싱크대 속 코팅 프라이팬 있다면 말이다.

마블이든, 티타늄이든 날로 업그레이드가 되어 신소재가 나오지만 사실 첨가된 양은 극히 미미하고 결국은 불소수지를 코팅한 것 퉁쳐서 코팅팬이다.

대중적으로 쓰는 프라이팬은  팬 표면에 얇은 코팅막을 입혀서 음식을 잘 눌어붙지 않게 하고 물이나 기름을 잘 묻지 않게 처리를 하는데 이 코팅의 문제가  수명이 짧다.  쓰느 사람의 취급방식, 사용기간에 따라 벗겨지는 단점을 극복하고자 자꾸만 코팅이 진화하는 척 이름만 바뀐다.


지구를 위한다면 더 이상 코팅팬 쓰지 말자는 말을 본 후 용기 내어 스텐팬을 들인 적 있다. 내 건강과 지구를 위해 정기적으로 버려지는 프라이팬을 더 이상 사들이지 않겠어! 호기롭게 다짐했다. 다짐과 일상은 간극이 꽤나 멀어서  예열의 까다로움과 간발에 차로 눌어붙 환장네이션에  스텐팬은 유물이 되어 간다.  그에 반해 코팅 프라이팬은 요리천재가 된 것처럼 만들어주는 매력을 가진 녀석이다.  미끄러지는 달걀프라이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금이약 옥이야 실리콘과 나무주걱으로 살살 달라가면 쓰던 초기와 다르게 사용흔적이 쌓이고 편할 대로 쓰다 보면 신기하게 일 년쯤 되면 코팅이 벗겨진다.  오래 써서 코팅이 벗겨진 팬을 계속 쓰면 중금속이 노출될 수 있다고 식약처교체 주기를 일 년으로 보통 말하는데 신기하게 맞아떨어진다.


며칠 전 아침에도  달걀프라이를 하다 반은 바닥에 양보하고  몇 점 살려 접시에 담았다.이제는 사야 할 때라며 핸드폰을 집어 다. 지금 쓰는 이 팬은 가격대비 코팅유지기간이 길어서  5개째 쓰고 있다. 팬에 대한 나의 예찬은 확고해서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손수 링크까지 전달하며 영업을 일삼기도 했다.


매년 동일한 곳에서 사는 건 아니라 최저가 검색 신공으로 써야 한다. 생필품은 어쩔 수 없이 사야 하는 쇼핑이라 임무를 수행하듯 사기만 하는데 모델명을 검색하고 알아보는 열정, K-아줌마의 알뜰함이 낳은 최저가의 미련으로 꽤나 시간을 잡아먹는다.

핫딜까지 챙기는 섬세함은 아니더라도 최저가로 검색해서 카드 할인별로 옵션을 적용해 보고 내가 가진 카드로 살 수 있는 가장 낮은 가격으로 사야 호갱님은 면할 것이 아닌가.


쿠팡 외 5대 쇼핑몰부터 백화점, 몰, 개인업체까지  [테 X+모델종류] 검색하니 791개가 나온다.


네이 X 랭킹순에 속지 말고 낮은 가격순으로 오름차순을 해서 정렬을 하고  제일 먼저 뜨는 쇼핑 링크부터 접속한다.

가끔 최저가이면서 막상 들어가면 다른 조건이 붙어 아닌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를 걸러내고 진정한 최저가를 파는 쇼핑몰을 찾았는데 이런...


팝업창에 체크를 하라고 뜬다.

I'm not  a robot




그렇다. 또 까먹었다. 이놈의 패스워드에서 막혔다. 아니, 어쩌면 아이디부터 틀렸을지도 모른다.

아이디가 틀린 건지 비밀번호가 틀린 건지 알 수도 없다. 둘 중 하나만 맞는지. 둘 다 틀린 건지..

사용하는 것도 몇 가지 없는데 또 기억이 안 난다. 아이디를 찾으려 본인인증을 하고 또 패스워드 찾으려 본인인증을 하고 자꾸 인증하다 보면 이제 내가 사람인지 로봇인지 인증을 하란다.


저기요. 몇 번을 체크하는 건가요? 몇 번을 말하지만 나는 로봇이 아니라고요!

내가 로봇이면 그걸 까먹었겠니? 사람이니 기억이 안 난다고... 일상에서 가장 인내심을 많이 쓰는 순간이다. 인증의 과정이 억겁 시간 같다. 분명히 비번이 기억하기 쉬운 것일 텐데 본인을 본인이라고 인증해야 하는 지금의 본인이 싫어진다.


모델명을 찾고, 최저가를 찾고, 할인을 찾고, 비밀번호를 찾고 또 아이디를 찾았는데 잘못 뒤로 가서 또 비밀번호를 찾고...

이렇게 속절없이 시간을 보내면 찾고 찾으면서 힘을 뺀다.


제발 내 돈을 가져가고 그 팬을 좀 보내주세요..(테이크 마이 머니!)


이래서 엄마들이 비싸도 직접 가서 사는 게 속이 편하다고 하는구나 옛 어른의 지당한 말씀이 절로 떠오르다.


인생은 어쩌면 찾고 찾는 일의 연속이다. 점수보다 더 잘 갈 수 있는 대학을 찾고 나와서는 쏘울메이트를 찾고 평생의 반쪽을 찾는다. 이제는 다 찾은 거 같은데 여전히 뭐 해 먹고살지를 찾고 분명 같이 벗어 넣었는데  건조기에서 증발할 양말 한 짝을 찾는다. 또, 일주일에 한 번은 비밀번호나 아이디를 찾는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찾아 나선 것처럼 미래의 인류는 내가 로봇이 아님라고 인증하는 법을 계속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그런 걸 발명하면 대박이 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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