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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Jun 30. 2022

엄마는 노는 사람 아니다!

"엄마는 좋겠다~ 집에서 놀아서~"


언젠가 꾸물거리며 등원 준비하던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엄마가 집에서 노니?!!"

아이 말속 의미를 알지만 그 단어는 나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놀.아.서.


마치 준비라도 해둔 듯이 길고 긴 대답이 이어 나왔다.

"엄마가 얼~마나 바쁜데!!너희밥먹고옷입고자고생활하는거는다그냥하 줄아니!고양이똥치우고밥주는것까지 모두엄마가하는데!또비는시간엄마도일해야지.엄마가논다고표현하면안되지!!"


나의 숨쉴틈 없는 할 일 목록폭탄에 아이는 잘못 건드렸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차차, 내가 잠시 정신줄을 놓았구나.'

다시 엄마의 본분으로 돌아와 오은영 박사 같은 마음으로 말을 이어갔다.


" 사람은 모두 다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야. 엄마는 집에서 살림하고 글 쓰는 게 일이고, 아빠는 출근하는 게 일이야. 너랑 동생은 어린이니까 잘 놀고, 학교에 잘 가는 게 너희 일이야. 일이 없는 사람은 없어. 모두 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은 다들 무언가를 하면서 살아가는 거야"


애국가 4 절급의 잔소리를 들은 아이는 창가의 고양이, 멜로에게 눈을 돌렸다.

"아~~ 알았어! 좋겠다~ 멜로는~ 공부도 안 하고 학교도 안 가서~"

(사실, 가끔 우리집 고양이가 부럽다)


'노는 엄마'해프닝은 끝 났지만 거실에 굴러다니는 레고조각이라도 밟은 듯 아팠던 이유를 생각해봤다.

한때 열병처럼 아프게 한 아이의 '학교 가기 싫어 병'이 다시 도질까 봐 두려웠을까?

노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내마음 어딘가를 건드렸을까?


퇴사를 선언하고 자유직업인이자 주부를 선택했다.

나는 여전히 일을 이어가고 있지만 출근을 하는 직장인 신분은 더 이상 아니다.

오랜 시간 집단의 구성원으로 살다가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어색했다.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는 엄마라는 자리는 꼭 필요한 겉옷은 입지 않은 기분이었다.

잠옷 차림으로 현관문을 열었다가 앞집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것처럼, 무엇이라도 걸쳐야 할 것 같았다.

그게 트레이닝복이든, 청바지든 무엇이라도 입고 있으면 설명이 필요 없으니 말이다.

내게 어울리는지, 원하는 것인지도 몰라도 상관없다.

나를 가려주는 조건에 충족하면 오케이다.



이제는 워킹맘이나 직장인의 명함을 가진 사람보다  직업이 "주부"인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게 된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들을 좀 키워놓고 나면 일을 다시 해야지요. ' 같은 주제로 흘러가게 된다.

나중에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출산과 육아를 전담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내 직업은 '주부이자 엄마'였다. 어린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기르는 일은 철야를 반복하는 노동이나 마찬가지다.( 육체적, 정신적인 소모가 많다는 의미의 노동이다)

이제는 돌봄노동, 가사노동으로 인정하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지만 내 의식수준은 88올림픽이 열리던 시대에 멈춰있었나보다.

솔직하게  '엄마'를 순도 100% 직업인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나 역시 "집에서 논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원없이 놀고 먹었으면 억울하지도 않은데 내 밥한끼 챙기기 어렵고 화장실 한번 편히 못 가게 바쁜데도 노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부르는대로 된다고 '노는 사람'이란  타이틀을 스스로에게 주니 점차 자존감에 구멍이 났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미래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따로 규정지을수록 작은 구멍이 더 커졌고 커진 만큼 아팠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직업인으로의 명함이 없는 사람이니 노는 사람이었다.

사회의 일꾼으로 자라도록 교육받고 자라왔으니 누가 강요한 건 아니였지만 내 안에 녹아들어있었다.


'난 커서 아이를 잘 키우고, 잘 교육시킬 사람이야! '하는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직업이나 명함을 가진 미래가 멋진 모습이야! '하는 그림을 그렸으니 말이다.



완두콩이 나올 줄 알고 열심히 길렀는데 검정콩이 나온 느낌이랄까?

내가 느낀 당혹감이 그랬다.

"이 안에 검정콩을 어떻게 해야하죠? 일단 나왔으니 사랑으로 잘키우고 또 완두콩도 나중에 다시 키워야하나요?" 묻고 싶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결말처럼  그 구멍이 거의 다 메워져간다.

"시간이 가면 다 해결되느니라~"하는 엄마 선배님들의 이야기처럼  육체적으로도 힘이 들었던 그 시기 모래알처럼 지나갔다.

K 딸 엄마의 희생으로  직장에 복귀도 하고 워킹맘으로도 살아봤다.

과연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일까 뒤늦은 사십춘기를 앓으면서 지금은 마음이 충만해지는 일을 하고 있다.

마음이 충만한 만큼 통장까지 충만해지는 일은 아닌지라 가끔 일에 대해 다시 고민도 한다.

'돈과 자아실현을 꿩먹고 알먹는 일은 없을까~'하는 망상같은 생각도 주기적으로 한다.


돌고 돌아 여기다! 하고 자리를 찾았지만 애초에 꼭 맞는 자리는 없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시기는 '엄마'라는 직업이 맞는 시기.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는 그 일을 해야 하는 시기.

천직인 줄 알았는데 다른 것도 생각나면 변화를 시도해볼 때.


일이라는 게 그런 것이구나 싶다.


내 딸들이 커서 엄마라는 직업에 100% 충실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면 자연스럽게 생각해주면 좋겠다.

지금 내 직업의 지분은 '엄마'구나!

이 많은 일을 하는 직업을 하니까 보람된다.


분명히 미네랄 가득한  물을 마시고 있으면서도 바닷물을 마신 것처럼 상상 속 갈증을 느끼지 않으면 한다.

지금 하는 일이 내 일이다.

그런 생각이 이슬비처럼 아이들 생각을 적셔주면 좋겠다.


그래서 앞으로도 힘주어 말해줄 것이다.

' 엄마는 노는 사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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