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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Jun 29. 2022

필사할때 딴생각하면 금방 표시가 난다.

며칠째. 아침에 일어나면 시를 한편 베껴쓴다.

그렇다고  필사를 좋아하는 편 아니다. 타이핑으로는 1분이면 되는데 손글씨는 10분은 더 걸린다.

항상 바삐 살아서 그런지 시간대비 효율이 떨어지는 일 같다.

나같은 실용주의자에게 필사하며 스며들기를 기다리는 건 좀  어렵다. 여러 글을 보고  잘쓰는 방법과 규칙을 찾아내거나 연결짓는 편이 익숙하다.


그럼에도 공들여 시를 따라 쓰면 떨어질지도 모를  콩고물을 기대한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시인의  문장을 갖고 싶다.

시를 사랑해서  쓰고 싶은건  아니지만 내 안에 시인의  다정한 시선, 울림을 만드는 문장능력을 채우고싶다.


음료자판기에 식혜,콜라,데미소다, 캔커피를 채우듯 언제든  누르면  나올 문장이 가득  차 있다면 좋겠다. 날카로운 문장부터 촌스러운듯 뭉근한 문장,유행하는 위트까지  sold  out 이 켜진 버튼은 없으면 한다.








수레 바퀴 언덕


                                                최창균


수레국화 언덕 끌고 언덕 오르는 데 일년

봄맞이꽃 언덕 끌고 언덕내려가는 데  일년

일년은

언덕이라는 수레바퀴가 한 바퀴 도는데

꼬박 걸리는 시간

언덕이 한바퀴 또 한바퀴

여름풀 겨울나무 언덕끌고 나타난다.

언덕의 수레바퀴 돌아가는 속도대로

꽃 피고 꽃 지고 나비날고 벌떼 잉잉거린다

모든 생의 언덕은 분침초침처럼

조금 느리게 아주 빠르게 돌기도 한다

간혼 제 언덕의 바퀴에 깔린

검은 나무는 죽은 시간의 잠으로 또 한바퀴

그렇게 나도 언덕을 끌고 여기까지 왔다

내가 끌고 온 언덕이 데굴데굴

내가 탕진해버린 언덕이 데굴데굴

구르고 굴러도 언덕인 내 평생아


집중력의 바로미터, 필사



쓰다보면 이상한 오기도 발동한다.

분명, 시작은 필사! 베껴쓰는 것인데, 점차 조형미에 집중한 쓰기로 방향이 흐른다.

내용을 음미하려던 목적보다는 가지런히, 내 느낌을 담아서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역시 따라쓰기만 하는  건 어렵다.


나는 시키는대로만 하는 게   적성에 안맞는 편이다. 주도성을 주면 훨씬 성과가 좋다.

그대로 따라하는 것 못견디는 재기발랄한 뇌를 가졌다.



필사를 하다보면 늘 비슷한 순환고리를 돌게된다.


1.시를 고른다. 물론 시집 차례로 쓰는 건 못한다.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 오늘은 너로 정했다!'


2.심호흠을 하고 음미한 시를 한자한자 따라 쓴다.

 어줄 쓰고 나면 싯구와 내 생각이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오, 이걸 다른 글에 인용하면 좋겠네'


0.001초만에 떠오른  생각이다.생각을 한다고 의식도 못한채  떠올랐는데 금새  오타가 난다.


'오르는 데' 란 시구에서 '데'가 상실되고,

'돌아가는' 에서는 성급해져 '돌아가는' 손이 먼저 다음 글자를 데려온다.

'죽음의 시간'은 '죽은'으로 나도 모르게 내 언어로 시를 다시 쓴다.



3.한눈은  시를 보면서 쓰니  손이 자동으로 앞서나가면  글씨는 줄 위를 벗어난다. 갑자기 망친 기분이 든다.


4.몇 번 더 내 의식이 여기저기로 여행을 하다보면,

그렇게 검정 칠이 된 글자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5.그래도 끝까지 써야지 하면서 쓰지만

어쩐지 뒤로 갈수록 글자에 힘이 빠진다.





글로 쓰고 보니, 이렇게 하는 게 필사가 맞나  의문이 든다.

충분히 읽 암송이 될 정도로 흡수하고 나서 베껴쓴다면 딴  이탈로

선로에서 잡음이 날 일이 있겠는가.


필사에서도 성격이 나타난다.

빠르게, 효율적으로.

내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효율이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딴 생각 하면서 필사 할 땐 여지없이 표시가 난다.

보고, 쓰고란 2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내 생각도 제어해야한다.



단순히 글씨를 쓰는 일 말고,  사는 일도 그렇다.


생각이 떠오르는대로 행동하면 원래 정해둔 길을 나도 모르게 벗어난다.

지금 가는 이 길에  집중해야 완주가 가능하다.

자유로움은 환영하되, 기준은 가지면서 살아야한다.


딴 생각이 길어지면 자주 선로를 이탈하고 이 길을 완주고 싶어지지 않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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