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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룩 Jul 21. 2023

분재, 질문 없는 순수

「三代将軍」: 수령(樹齡) 약 550년인 일본오엽송. 일본 황궁이 소장·관리. 자연적으로는 20~25m까지 자라는 나무이지만, 이 나무는 81㎝이다.


盆栽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의 상태에 있는 자에게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지평선의 산맥이나 나뭇가지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 순간 이 산, 이 나뭇가지가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산이나 나뭇가지의 분위기(Aura)가 숨을 쉬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 발터 벤야민, 「技術複製時代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편역, 민음사, 1983, 204쪽


일본에서는 자연을 축소하여 표현하는 원예 문화가 발달했다. 서양과 달리 일본의 원예 작품은 자연의 모습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비율만 줄이는, 축척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로지(露地), 축경(縮境), 분경(盆境), 그리고 분재(盆栽)가 이에 해당한다. 로지는 “도시의 작은 공간에 마치 숲속의 자연과 흡사한 깊은 산속 풍경의 일부분을 끌어와 응축한 다실에 부속된 정원”이고, 축경은 “대상이 되는 경치 자체를 축소”한 것이며, 분경은 수반이나 화분에 나무와 조형물을 올려 작은 경치를 꾸민 것이다(이미자, 2018 : 408; 이어령, 2008 : 163).


분재는 원래 말 그대로 ‘분에 심음’, 즉 식물을 화분에 옮겨 심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문화, 예술의 한 양식으로 발전하면서, 식물과 화분의 미적 조화를 따지고, 식물을 특정한 규칙과 기준에 따라 변형하는 일을 포함하게 되었다. 그리고 분재 과정을 거친 나무와 화분을 그 자체로 ‘분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분재가 처음 생긴 곳은 중국이지만, 분재가 지금처럼 ‘절제된 아름다움’ 이 극대화 된 형태의 예술로 자리 잡은 데에는 일본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분재는 일본으로 전파된 뒤 고도로 발전하여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일본에서 매우 높이 평가되며 대중적인 예술이 되었다.


분재를 만들 때는 우선, 나무가 원래 있던 토양에서 나무를 뿌리째 뽑아서 작은 화분에 옮겨야 한다. 옮길 때 핵심은 나무를 자연에 두었을 때만큼 자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화분을 가능한 한 작게 사용하여 뿌리의 형성을 제약하고, 영양분이 없고 물이 잘 빠지는 마사토 등의 자갈 같은 흙을 사용하여 나무의 성장을 제한한다. 나무의 형태가 분재에서 따지는 미적 기준과 맞지 않을 때는 철사를 나무에 감아서 원하는 형태로 휘고 꺾는다. 이를 ‘철사걸이’라 한다. 그렇게 새로 만든 수형(樹形)에 맞지 않는 줄기, 가지, 잎은 모두 잘라낸다. 이를 전정(剪定)이라 한다. 소나무나 향나무 등은 수피(樹皮)를 벗겨 사리*를 내어 꾸미기도 한다. 


차례대로 철사걸이의 예시(동백나무), 전정과 사리의 예시(향나무).


앞서 언급한 네 종류의 원예·정원 문화는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때 이 예술작품들은 모두 자연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므로 복제할 수 없다. 아무리 비슷하게 만들어도 물과 바람으로 생긴 미세한 돌의 흠집과 결, 모두 다르게 생장하는 생명체인 나무들, 한순간도 같지 않은 물의 움직임은 인공적으로 복제할 수 없다. 


* ‘징’이라고도 한다. 이는 수백 년에 걸쳐 나무가 말라 백골화(白骨化)된 노목(老木)의 모습을 인공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분재가 형태뿐 아니라 시간도 응축하는 행위임을 보여준다(이어령, 2008 : 189). 


보이는 존재, 신성한 존재


주지하다시피 가장 오래된 예술작품은 처음에는 마술적 의식, 다음으로는 종교적 의식에 봉사하기 위해 생겨났다. 그런데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실은, 예술작품의 이러한 분위기적(Aura) 존재방식이 한번도 의식적(儀式的)인 기능과 분리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달리 표현하면 <진짜>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그것에 제일 먼저 본래적 사용가치가 주어졌던 종교적 의식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에 있다.
- 발터 벤야민, 같은 글, 205쪽


천황은 특정한 방식으로 보여야 했다. 천황의 초상화에는 천황이 체현하는 가치가 담겨 있었고, 사람들은 이를 바라보아야 했다. 이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바라보는 이가 천황이 체현하는 일본(인)의 관념, 덕목을 체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보이는 대상과 보는 시선 사이에서 권력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이 그림은 대일본제국 헌법에 명시된 천황처럼 신성했다. 일본에서는 보이는 것과 보는 이 사이에 형성되는 권력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세계대전 중에도 종군화가가 전쟁의 장면을 그림으로 만들었고, 이는 도쿄에 공적으로 전시되었다. 그림만이 전달할 수 있는 ‘분위기’를 활용한 것이다. 천황제는 통상적인 근대의 통치 도구가 아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기독교를 기능주의적으로 벤치마킹하여 일본이라는 거대한 신사를 세웠다. 천황제는 종교였고, 의식에서 ‘분위기’는 핵심이었다. 


차례대로 일본의 국풍분재전, 석부작 분재가 있는 분경

살아있는 나무로 만드는 예술작품인 분재는 여러 면에서 그림과 유사하다. 원래 나무는 어떤 각도에서 보든 상관이 없지만, 분재에는 정면이 있다. 가지와 줄기가 가장 잘 보이고, 앞으로 튀어나온 가지가 없는 쪽으로 정면을 정한다. 정면을 정할 때의 눈높이는 곧 가장 적합한 감상 위치가 된다. 분재는 정면에서, 그리고 정해진 눈높이에서 감상해야 하고, 이때 분재의 색과 형태가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뒤에 흰색이나 검은색의 배경을 설치하게 된다. 나무와 화분뿐 아니라, 뒤의 배경까지도 분재의 구성요소가 된다. 단색의 배경뿐 아니라 그림이나 돌도 배경으로 설치되곤 한다. 배경은 분재 주변을 풍성하게 꾸며서 일종의 축경을 형성하거나 나무를 그림과 병치하여 분재의 이상형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배경은 캔버스처럼 앞의 나무를 평면화한다. 돌이나 그림이 배치될 때도 분재 뒤에는 분재를 돋보이게 하는 벽이 설치되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이명호는 <나무> 연작에서 바로 이러한 특징을 활용하기도 했다. “나무 뒤에 하얀색 캔버스를 세워 나무라는 대상을 원래의 자연적 맥락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캔버스 위에 나무가 그려져 있는 듯한” 사진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를 통해 “나무 한 그루가 캔버스 안에 삽입된 이차원적 이미지로 평면화됨으로써, 예술의 아름다운 대상물이자 주목할 만한 존재로써 전환”된다. 이러한 설명은 보는 시선의 위치가 정해지고 나무가 마치 캔버스 위의 그림처럼 평면화되는 분재에도 적용될 수 있다. 분재는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눈높이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거리를 두고 감상해야만 하는 복제 불가능한 예술작품이다.


차례대로 Hwa Fong 2017 타이완 하얀소나무,
이명호의 작품들. 차례대로 <Tree... #1_1 & #1_2>, <Tree...#2>, <Tree>

자기의 일이 상품 판매가 아닌 “인간 삶의 시간과 공간에 관련된 일”*이라는 어느 분재 장인의 말은 분재가 사회적으로 단순한 예술작품 이상의 의미를 띤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분재는 일본 당국에 의해 일본 특유의 예술로 받아들여졌고, 이에 따라 ‘국풍분재전(国風盆栽展)’이 1934년부터 열리게 되었다. 초대회장으로는 다카마쓰 번의 제2대 당주이며 제10~11대 일본 귀족원 의장이었던 마쓰다이라 요리나가(松平頼寿) 백작이 추대되었다. 분재전은 세계대전으로 중단된 후 1947년에 재개되었는데, 일본분재협회는 이를 “오랜 세월에 걸친 전쟁에서 억눌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드디어 평화가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느낌을 전달”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지금까지도 황궁에서는 최고급 분재를 전문적으로 관리·전시하며, 일왕의 즉위 기념행사로 천황 주최의 황궁분재전이 열리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절약’을 이유로 모든 형태의 예술을 금지당한 일반인들도 전쟁 중에 분재를 포기하지 않았고(Suga, 2019 : 80), 궁내청의 분재원들은 필사적으로 분재를 지켰다. 분재는 일반인이든 황궁이든 전쟁 중에도 반드시 보존해야 했다. 분재는 대자연 혹은 우주를 축소한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묘사되며, 격렬한 전쟁들에도 살아남아 수령이 수백 년이 된 분재들이 황궁에 보존되고 있다. 분재 기술자들은 장인으로 대접받고, 분재는 장인이 관리할 때를 제외하면 감상할 때는 결코 손을 대면 안 된다. 일본에서 분재는 명백히 신성한 존재다. 


* ‘BONSAI Mirai he habatake’, Acore Omiya, no. 33, April-May 2017, p. 28.


일본인이라는 분재


분재는 에도 시기, 특히 17~18세기에 급격히 발전하며 대중화되는 동시에 고급 예술로도 자리매김하였다(Kuma and Dwivedi, 2011 : 115-116; Suga, 2019 : 78). 즉, 천황과 천황제, 대일본제국에서 ‘일본인’을 구성하려 동원한 분위기(Aura)가 있기 직전에 이미 보이는 대상과 보는 시선 사이에 권력 관계를 생성해 내는 분재가 존재했다. 분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완벽하게 축소된 ‘우주’나 ‘대자연’을 느끼게 하고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보는 이의 위치와 눈높이를 일방적으로 설정하는 신비한 대상이었다. 집에 분재의 위치가 정해져 있었을 만큼 분재는 많은 이들에게 일상의 일부였다. 중세 일본에서 분재는 주로 실내, 가장자리, 마당에 놓였고, 특히 가장자리에 툇마루나 마당에 특정한 방향으로 놓였다. 분재는 “실내외를 시각적으로 연결하고 뜰의 경치를 구성하는 1요소”였고, 다른 사물들이 놓이는 방향을 결정하기까지 했다(村上 朝子, 2011 : 102). 그러니 분재는 여러 면에서 보는 이나 주변의 다른 사물들보다 상위의 존재였다. 


분재는 아름다움과 자연에 대한 숭배를 반영하는데, 이는 자연의 아름다움(自然の美しさ),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다움(人に因って作るれた美しさ), 그리고 자연 세계에 대한 경의와 자연과 인간 사이의 조화를 세 가지의 아름다움으로 여기는 일본 문화에서 이상적 예술 양식일 수밖에 없다.* 이뿐 아니라 분재는 조화, 평화, 질서, 인내 등의 가치를 집약적으로 구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는 모두 ‘일본인’의 덕목으로 여겨지는 요소들이다. 분재가 체현하는 아름다움은 단지 자연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진정한’ 인격적 가치까지도 포함한다. 이를테면, 황궁에서 관리하는 「장수매」(「長寿梅」白交趾楕円鉢)는 “친근하고 대범한(親しみやすい、てらい)”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식물을 보는 행위가 보는 이에게 모종의 심리적 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식물 기르기나 ‘숲 치료법’은 대중적인 심리치료인데, 분재 감상도 그중 하나이다. 식물보다 유독 분재에는 항상 더 풍부한 의미가 붙어 왔다. 분재는 “보는 이에게 삶의 수수께끼를 인식하는 다른 방식을 제공”하고, “사람과 분재 그 자체를 영적으로 자연과 연결하는 예술 형식”이며, “자연 그리고 전 우주와 인간의 조화”를 의미하고, “인간과 분재의 상호작용은 도교 사상에서 기원하는 깊은 의미를 띤다”(McClellan, 2016 : 13; Nguyen, 2010 : 30; Pietraszko and Sobota, 2008 : 134). 분재를 만들고, 감상하고, 연구하는 이들이 이러한 기록들을 남겼다는 사실은 분재가 시선 속에 영적인 권력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요컨대, 사람들은 특정한 미의 규범에 따라 분재를 만들었고, 그 미의 규범은 특정 덕목들, 후에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이 만들어진 후에는 해당 정체성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덕목들을 함축하고 있었다. 보이는 대상으로서 분재는 마치 천황의 그림처럼 보는 자에게 모종의 가치를 체화하도록 했다. 이때 보는 시선이 체화하게 된 것은 조화, 평화, 질서, 인내와 같은 가치였다. 에도 시기에 이루어진 분재의 일상화는 사람들에게 보는 행위를 체화하게 했고, ‘분재’라는 이름이 처음 공식적으로 정착된 메이지 시기(Scott, 1996 : 3) 이후 꾸준히 이어진 분재 예술은 체화된 시선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일본인의 덕목’을 체화하도록 했다. 


일본에서 예술로서 분재가 고도로 발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분재의 형식은 엄연히 훨씬 옛날, 다른 지역에서부터 존재했다. 식물을 화분에 옮겨 심는 행위는 4000년 전 고대 이집트, 기원전 1000년 인도, 그리고 한(韓) 왕조까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며, 일본에서 분재가 시작된 것은 10세기 후반 정도로 추정된다(Scott, 1996 : 2-3).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후 분재는 일본의 고유한 전통으로 지목되고 그 내러티브에 따라 발전되었다. ‘일본’의 전통을 발명하던 시기에 분재는 일본만의 영성(spirituality)을 표현하는 문화이자 예술로 발탁된 것이다. 그렇기에 분재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왔고, 외국의 종교와 관련된다는 역사적 사실은 감추어져야 했다. 그러한 역사는 “영성의 순수한 일본적 표현”이라는 분재의 지위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천황이 큰 영향력이 없었던 과거가 ‘일본’이라는 이름으로 꿰어지고 꾸며질 때, 같은 목적에서 분재라는 “전통의 수립은 역사의 부정에 기반을 두었다(Katz, 2012 : 93).”


이처럼 보이는 대상이 권력 관계를 형성하는 시각 경험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천황이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순수하고 신성한 혈통이며, 심지어는 신의 후손이라는 황당한 설정마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카자와 신이치에 따르면 일본 문화와 신화적 사고는 지극히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천황제와 같은 정치 제도만이 아니라 예술문화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신화적 사고의 활발한 활동”이 있었다(이삼성, 2011 : 104). 분재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천황제와 같은 정치 제도와 예술문화가 신화적 사고를 바탕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천황의 순수함과 신성함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그것에 절대적 가치와 지위를 부여하고, 복종하고,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천황이 체현하는 가치에 동화시키는 태도는 ‘일본(인)’이 구성되기 전부터 드러났고, 천황제가 빠르게 정착하는 하나의 토대가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분재를 보며 분재가 되었다. 분재는 만드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내면의 가치와 외면의 형태가 결정된다. 그런 면에서 ‘일본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분재였으며, ‘일본’의 발명은 분재 만들기였다. 


* “What Does Bonsai Mean and Symbolize?”, Bonsai Tree Gardener, 2018.9.22.


질문 없는 순수


The purposes of bonsai are primarily (consumption for the voyeur) and the pleasant (business) of effort and ingenuity (for the trafficker). Bonsai practice focuses on long-term (clientele) and (grooming) of one or more small trees growing in a (brothel). A (whore) is created beginning with a specimen of source (trauma): this may be a cutting, a (repressed memory), or small (trespass) of a (safeword) suitable for (submissive) development.
- Lawson, T. (2017). Bonsai Bondage: Sex Work in Little Tokyo. WSQ: Women's Studies Quarterly 45(3), p. 347


분재가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분재는 “식물에 대한 전족”이라고 비판받았다. 제작과 관리 과정 전반, 그로 인한 몸의 변화를 살펴보면 ‘굶주린 나무(starved wood)’라는 비판은 타당함에도, 이 비판과 대등한 수준의 반박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분재가 학대가 아닌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으레 근거로 분재 작업이 그 나무가 가진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보다 나무를 사랑하고 열심히 관찰해야만 분재의 장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무를 위한 일이라고도 말한다. 그게 전부였고, 논리적인 근거를 갖춘 반박은 단 한 문장도 찾을 수 없었다. 분재에 대한 비판이 동양 문화에 대한 서구의 문화 감수성(Western cultural sensibility)이라는 틀로 수렴되면서, 문화 사이의 위계에 대한 논의 안에서 정작 분재 자체에 관한 담론은 사라져 버렸다(Suga, 2019 : 77).


앞서 본 반응들은 애초에 자신들이 분재에 대입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을 문제 삼을 생각조차 하지 않기에 가능하다. 분재에 대입하는 ‘아름다움’은 사실 자연미를 빙자한 극도의 인공미일 수밖에 없다. 분재는 나무의 성장을 제약하고, 짧은 시간 안에 생길 수 없는 사리나 곡(曲)과 같은 형태를 만들어낸다. 가만히 두면 불가능한 작은 나무를 만들고, 작은 나무에서 불가능한 형태를 만들고, 이를 감상할 때도 위치와 눈높이까지 정하는 예술을 자연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손바닥 안에 다 들어올 만큼 작은 마메(まめ) 분재*는 그만큼 귀하고 비싸다. 부자연스러울수록 귀하다. 


작은 것에 대한 일본인의 애정은 꽤 많이 논의된 내용이다. 원래 “처자를 향한 애정”을 의미했던 ‘うつくし’는 작고 사랑스러운 것에 대한 애호로 의미가 변했고, 결국 지금의 ‘아름답다’라는 의미에 정착하였고(오오타케마유미, 2014 : 31-32), 이는 선호하는 것을 작게 만드는 ‘축소지향’이라는 특징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일본인론’을 전개한 이어령은 일본인이 자연을 축소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인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없고, 그러한 본질주의적 관점은 논의를 폐쇄해 버리기 마련이다. 


이어령은 분재를 직업으로 삼는 이가 일본에만 있었다고 말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18세기 중반 이후 조선에서도 분재 전문 직업인이 생겼을 만큼 분재는 큰 인기였고, 서구에 분재가 처음 소개된 1930년대에 프랑스에서 분재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본의 오미야 분재 마을에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 미술에 일본의 영향이 닿으면서 ‘자포니즘’이라는 현상도 발생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영국의 공간 디자인이 일본 분재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조선의 분재와 분경에는 중국의 영향도 컸다(정민, 2005 : 11-14; Suga, 2019 : 77, 80; 菅 靖子, 2010; 李 樹華, 1998). 지금 구글이나 유튜브에 영어로 ‘bonsai’를 검색하거나 한글로 ‘분재’를 검색하면 분재에 관한 자료가 쏟아진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식물을 미적·의료적 목적으로 화분에 옮겨 담아 실내로 가져오는 행위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며, 분재의 인기는 현대에 들어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분재를 ‘일본인의 문제’ 혹은 ‘일본인의 특징’ 중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발명된 전통의 본질화(naturalization)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는 분재를 둘러싼 담론의 부재라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 분재를 즐기는 이들 중 분재의 아름다움에 의문을 던지는 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관련 담론이 정리된 연구 자료도 찾아볼 수 없다. 적어도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찾아본 결과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 질문의 부재는 어디에 기인하는가? 질문되지 않는 가치에 내면과 외면이 모두 동일시되는 분재와 천황제의 구조, 그리고 분재가 절정을 이룬 시기와 천황제의 수립 시기가 맞아떨어지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분재는 서구와의 접촉에 따라 긴급히 요청된 근대화 과정에서 묘하게 뒤틀리고 보존되는 일본의 신화적 사고를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보여준다. 신화적 사고는 성(聖)과 속(俗) 사이의 짧은 간격과 그로 인한 강한 연속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근대 일본의 정치사상은 성과 속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정치 권력의 신화화를 꾀했는데(이삼성, 2011 : 105), 분재를 비롯한 원예 예술, 문화에서도 성과 속의 공간적 연결이 계속해서 드러난다. 


분재는 자연이라는 신성한 대상을 방에, 손바닥 안에 들이는 것이다. 로지도 여러 면에서 분재와 비슷하다. 로지는 자연을 가까이에 축소·모방해 두는 것이며, “속세의 세상[도시]에서 청정한 세계[자연]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이기도 하다. 청정함을 유지하는 의식을 치르기까지 한다. 긴밀히 연결된 성과 속, 둘 사이의 명백한 위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종교적 의식. 로지와 분재는 모두 자연을 인간의 시선에서 특정한 미의 틀에 고정하고, 이를 계속해서 체화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가치의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체화는 마치 천황제에서 규정된 ‘일본(인)’이나 천황이라는 존재처럼, 그 가치에 질문을 던질 빈틈을 남겨 두지 않는다.


* 두(豆) 분재, 혹은 콩 분재라고도 불린다. 


매력이라는 문제


우리는 작은 것에 대한 애호가 아닌, 아름다움의 기준에 질문하지 않는 모습을 문제화해야 한다. 분재에 대한 애호나 질문 없는 순수는 결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순수한 것, 신성한 것은 대체로 날조된 서사를 바탕으로 성립하며, 강한 보존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순수하고 신성한 대상은 어떤 원리로 보존 욕구를 촉발하는가? 우리는 그러한 대상에 왜 끌리며, 매력(attraction)은 왜 질문을 삭제하는가? 자신의 미적 취향에 대한 비판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받아들임에도 끝끝내 이를 놓지 못하는 수많은 개인을 떠올려 보자. 매력이 개입할 때, 질문은 빠르게 사라진다. 우리는 질문하지 않거나, 질문을 외면하곤 한다. 매력은 옳고 그름보다도 강력한 기준이 된다. 판단보다 강력한 끌림을 창출한다.  


일본과 일본인을 본질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이해하려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특정 가치의 종교적 체현 과정, 그리고 사람을 잡아당기는 매력의 영적인 효과에 천착해야 한다. 일본 문화 속의 분재에 관한 고민은 일본을 넘어 인간과 사회의 관계, 전통의 발명과 시각 경험의 체현이라는 문제,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질문 없는 순수와 매력이라는 문제를 탐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행본]

발터 벤야민, 「技術複製時代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편역, 민음사, 1983   

이어령, 『축소지향의 일본인』, 문학사상, 2008

Ann McClellan, Bonsai and Penjing: Ambassadors of Peace and Beauty(Tuttle Publishing, 2016)

Randy Scott, Thesis: The Art of Bonsai(UMI Company, 1997)


[논문 및 간행물] 

菅 靖子, 両大戦間期イギリスの空間のジャポニスムにみる生け花・盆栽の影響 : 『ステューディオ』誌の検証を中心に, デザイン学研究, 2010, 57 巻, 4 号, p. 1-10, 公開日 2017/06/24

李 樹華, 朝鮮盆栽・盆石の確立における中国の影響, ランドスケープ研究, 1998, 62 巻, 5 号, p. 423-428, 公開日 2011/07/19

村上 朝子, 仲 隆裕, 藤井 英二郎, 住宅における植栽意匠, 特にいけばなや盆栽との関わりに関する史的考察, 造園雑誌, 1992, 56 巻, 5 号, p. 97-102, 公開日 2011/07/19

이삼성. (2011). 동서양의 정치전통에서 성속(聖俗)의 연속과 불연속에 관한 일고. 현대정치연구, 4(1), 73-126.

오오타케마유미. (2014). 일본 전통미의 재조명과 근대적 미의 형성. 미학, 79(0), 29-68.

이미자. (2018). 일본 정원문화와 로지(露地)의 미학. 한국일본어문학회 학술발표대회논문집, 408-411

정민. (2005). 18, 19세기 문인지식인층의 원예 취미. 한국한문학연구, 2005, 35, pp. 37-73

Yasuko Suga. (2019). Branded heterotopia: Omiya Bonsai Village in Japan, from 1925 to the present day, Studies in the History of Gardens & Designed Landscapes, 39:1, 77-89

Katz, S. R. (2012). Bonsai Imperium : Plant Capitalism in the U.S. and Japan, 1853-1924(Master of Science in Architecture Studies).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n.p..

Prasann Kumar and Padmanabh Dwivedi. (2011). Bonsai : Symbol of Culture, Ideals, Money and Beauty, Env. and Biotech. 4:2, 115-118

Nguyen, Amy. (2010). "Bonsai: A Way of Living," Fresh Voices: Composition at Cal Poly: Vol. 1 : Iss. 1 , Article 13.

Pietraszko, K., & Sobota, J. (2008). Bonsai–Far East art of landscape miniaturization. 1st WSEAS International Conference on Landscape Architecture

Lawson, T. (2017). Bonsai Bondage: Sex Work in Little Tokyo. WSQ: Women's Studies Quarterly 45(3), 347-348. 

‘BONSAI Mirai he habatake’, Acore Omiya, no. 33, April-May 2017, p. 28.


[기사 및 칼럼]

“盆栽—大自然を凝縮する美学”, nippon.com, 2012.12.04.

“분재로 살아가는 나무들의 괴로움”, 경북대신문, 2004.11.29.

“가난한 분재예술가, 8식구 가장의 ‘비상’”, 옥천닷컴, 2019.04.27

“What Does Bonsai Mean and Symbolize?”, Bonsai Tree Gardener, 2018.9.22.

“Imperial family’s bonsai to go on display to mark end of Heisei Era”, The Asahi Shimbun, 2019.02.07.


[웹사이트]

日本盆栽協会

四国新聞, 皇居の盆栽 

Bonsai Empire, 盆栽の歴史   

Bonsai Empire, Definition and Meaning

Bonsai Empire, Hwa-Fong

“THE SECRETS AND SYMBOLISM OF BONSAI”, Miami Beach Botanical Garden

盆栽の表と裏, しんとうきみこ

Gallery Hyundai


* 이 글은 2019년 '일본문화연구' 수업에서 레포트로 작성한 것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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