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필로그: 그럼에도 사랑은 늘 규칙을 어겼다
사랑에는 규칙이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늘 사랑에 규칙을 들이댄다.
이래야 옳고,
저래선 안 되고,
지켜야 하고,
넘지 말아야 하고,
적당해야 하고,
안전해야 한다고.
우리는 사랑을 말할 때조차
질서를 세우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질서는 우리를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역사에 남은 사랑들은
하나같이 그 규칙을 어겼다.
여왕은 사랑 때문에 제국을 걸었고,
철학자는 거절당한 사랑으로 사유를 만들었고,
예술가는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반복해 선택했고,
어떤 왕은 책임보다 사랑을 택해 왕관을 내려놓았고,
어떤 음악가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사랑을
침묵으로 작곡했다.
우리가 이 사랑들을
지금까지 읽고, 말하고, 다시 꺼내는 이유는
그들이 모범적이어서가 아니다.
위험했기 때문이다.
위험한 선택은
항상 인간의 본질을 드러낸다.
심리학은 말한다.
인간은 불확실성과 금지된 자극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고.
금지된 대상은
도덕적 판단 이전에
정체성의 질문을 건드린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잃어도 괜찮은가.”
철학은 또 말한다.
인간은 경계에서 가장 자기다워진다고.
경계는
안전과 욕망이 맞닿는 자리다.
그곳에서 우리는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랑은
행복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래서 어떤 사랑은
옳지 않았는데도
우리를 진실하게 만든다.
프롤로그를 열고,
역사 속 이름들을 지나,
금지된 선택들을 따라오며
아마 당신도 한 번쯤
멈췄을 것이다.
“이건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도
읽는 동안
그 사랑을 미워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독자는 말했다.
“이건 하면 안 되는 사랑이 아니라
해도 되는 사랑처럼 느껴졌어요.”
어떤 독자는 분노했다.
“책임은 어디에 있나요.”
어떤 독자는 고백했다.
“저도 그런 사랑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독자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지만
조용히 여러 번 읽었다고 했다.
나는 그 반응들이
이 책의 가장 솔직한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하면 안 되는 사랑’을 옹호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그 선택을 따라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판결을 잠시 유보해 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왜 우리는
금지된 사랑 앞에서
이토록 강하게 반응하는가.
왜 우리는
안전한 사랑보다
위험했던 사랑을 더 오래 기억하는가.
왜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우리를 바꿔놓는가.
문학은 오래전부터
이 질문을 붙들어왔다.
셰익스피어의 연인들,
톨스토이의 안나,
수많은 예술가들의 파국.
사랑은 늘
윤리의 교과서보다
인간의 심장을 먼저 흔들었다.
사랑은
질서가 무너질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안전한 사랑은
우리의 하루를 유지시켜 준다.
그러나 불편한 사랑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묻게 만든다.
그 사랑이 옳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사랑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갔는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이제 이 책은 끝난다.
그러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금지된 사랑은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더 자유로워졌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말하는 순간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아마도 더 사적이고,
더 날것이고,
더 많은 규칙을 건드릴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문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더 깊이 파고들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구조를 드러내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그 이야기는
또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또 한 번
규칙을 어겼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준 당신에게,
조용히 고맙다는 말을 남긴다.
사랑을 판단하지 않고
잠시 들여다봐 준 용기에게.
그리고
당신이 기억하고 있을
그 불편했던 사랑 하나에게.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자주 멈춰 섰습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오래 바라보다가,
어떤 문장 앞에서는 한참을 울다가,
어떤 사랑 앞에서는
말문이 막혀
잠시 아무것도 쓰지 못했습니다.
브람스와 클라라를 쓰던 날은
정말로 눈물이 났습니다.
엉엉 소리를 내며 울지는 않았지만,
문장을 쓰다 지우다 하며
가슴 한쪽이 저릿해졌습니다.
사랑했지만,
함께 살 수 없었던 시간.
그 시간을 평생 품고 살아야 한다는 건
어떤 종류의 신앙 같았으니까요.
차이콥스키를 쓰던 밤에는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그의 침묵이 너무 길어서,
그 침묵이 너무 음악 같아서,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두려움인지
나조차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니체를 쓰면서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만약
루 살로메와 잘 되었다면,
그의 사유는 달라졌을까.
《자라투스트라》는
같은 문장으로 태어났을까.
아마 역사는 달라졌겠지요.
하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그는 사랑을 철학으로 남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고독이 덜 외로웠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를 쓰면서는
제국과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권력보다 사랑을 택한 순간이
어리석음인지, 용기인지
나는 아직도 쉽게 단정하지 못합니다.
에드워드 8세를 떠올릴 때는
왕관을 내려놓는 선택이
로맨틱하기보다 두려웠습니다.
사랑이란 그렇게
모든 것을 바꾸는 힘이라는 걸
실감했으니까요.
프리다와 디에고를 쓰며
나는 예술이 사랑을 살리고
동시에 서로를 상처 입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젤다와 피츠제럴드를 떠올리며
재능과 사랑이 서로를 소모하는 풍경 앞에서
마음이 오래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그들의 편지를 읽을 때
나는 몇 번이나 숨을 고르며 읽어야 했습니다.
사랑이 육체를 넘어 사유가 되고,
사유가 다시 신에게로 올라가 버리는 그 서신들.
사랑이 이렇게도 지적일 수 있고,
이렇게도 처절할 수 있다는 걸
그들은 보여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살지 못했지만,
서로에게 남긴 문장은
천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함께 살지 못한 사랑이
가장 오래 남는지도 모릅니다.
이 사랑들을 쓰면서
나는 판사가 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대신 계속 묻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리고 이 책이 공개되는 동안,
독자 사연이 연재되고 있고,
댓글이 쌓이고,
사연이 도착하고,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 놓습니다.
댓글에 답글을 달면서
나는 다시 사랑 이야기를 쓰는 기분이 됩니다.
어떤 분은
“하면 안 되는 사랑이 아니라
해도 되는 사랑 같았다”라고 말하고,
어떤 분은
“그래도 이건 위험하다”라고 말하고,
어떤 분은
자기 과거의 사랑을
짧게 남기고 갑니다.
그 한 줄이
얼마나 큰 고백인지
나는 압니다.
사랑은 참 이상합니다.
하면 안 되는 사랑이든,
해도 되는 사랑이든,
금지된 사랑이든,
완벽한 사랑이든,
결국 사람들의 가슴을
가장 뜨겁게 만드는 건
늘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비판하면서도
사랑을 읽고,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다시 꺼냅니다.
아마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사랑은
우리의 가장 솔직한 얼굴을
비추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당신이 한 사람을 떠올렸다면,
그건 이미
당신 안에서 무언가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 사랑이
옳았는지,
아름다웠는지,
실패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랑이
당신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면,
조금 더 깊게 만들었다면,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면,
그건 이미
당신의 역사입니다.
이 긴 여정을
함께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의 댓글과 사연 덕분에
이 책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왜냐하면 사랑은
언제나
또 다른 규칙을 어기며
다시 시작되니까요.
그리고 지금,
이 에필로그가 공개되는 사이에도
독자 사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도
언젠가 이 책의 한 장면이 될지 모릅니다.
하면 안 되는 사랑이든,
해도 되는 사랑이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이든,
조심스럽게 보내주세요.
사랑은 늘 예고 없이 시작되지만,
이야기는 누군가 꺼내는 순간부터 기록이 되니까요.
하면 안 되는 사랑,
‘하 안 사‘
작가 유혜성 드림.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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