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사랑을 포기할 수 있는가
그는 나를 버렸지만
완전히 떠나지는 못했다.
그게 사랑이라면
사랑은 참 비겁한 감정이다.
By유혜성
연하 남자가 있다.
앞날이 창창하고,
열정이 많고,
아직 세상을 다 배우지 않은 남자.
그가 사랑에 빠진 상대는
이미 한 번 결혼을 통과했고,
아이 둘이 있고,
세상의 잔혹함을 이미 겪어본 여자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하필 그 여자야?”
“진짜 사랑이야?”
“현실을 모르는 거 아니야?”
“그 여자가 너무 계산적인 거 아니야?”
사랑은 늘 두 사람 사이에서 시작하지만
평가는 언제나 바깥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만약
그 연하 남자가
훗날 황제가 된다면.
그 순간 이 사랑은
연애가 아니라
역사로 넘어간다.
파리, 1795년.
혁명은 끝났지만,
도시는 아직 요동치고 있었다.
어제까지 권력이던 사람들이
다음 날 단두대에 올랐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말보다 눈치를 먼저 배우고 있었다.
그 도시에서
한 여자가 살아남았다.
조제핀.
본명은
마리 조제프 로즈 타셰 드 라 파주리
(Marie Josèphe Rose Tascher de La Pagerie).
카리브해 마르티니크 출신.
그리고 훗날 프랑스 황후가 되는 여자.
그러나 이때의 그녀는
그저 한 번 죽음을 통과한 미망인이었다.
첫 남편,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고,
그녀는 두 아이
외젠과 오르탕스를 데리고
혁명의 파리를 버텨야 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순히 숨 쉬는 일이 아니었다.
감정을 숨기고,
사람을 읽고,
어디서 웃고 어디서 물러나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일이었다.
조제핀은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도 그녀를 평범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숨이 멎을 만큼의 절대적인 미인으로 기억하는 이도 많지 않다.
그녀의 힘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가 들어오면
공기의 결이 바뀌었다.
대화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꺾이고,
사람들의 시선이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녀에게 모였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공간을 지배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전혀 다른 방향에서 올라오는 한 남자가
그녀 앞에 나타난다.
스물여섯의 장교.
코르시카 출신,
아직은 낯선 이름.
야망은 컸지만
세상은 아직
그를 부르지 않았다.
나폴레옹.
그는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본다.
혁명 이후의 파리에서
살아남은 사람만이 갖는
그 묘한 여유.
계산과 감정이 동시에 깃든 눈빛.
그는 그것을
단번에 알아본다.
그리고
그 눈빛 앞에서만
자신이 아직 아무것도 쥐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전쟁에서는
항상 이겨온 남자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복하지 못한 세계를 마주한 것처럼.
그래서 그는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전쟁에서처럼.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다르게 부른다.
“로즈”가 아니라
“조제핀.”
그 한마디는
애칭이 아니라
선택에 가까웠다.
과거의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세계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방식.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그 사람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796년,
두 사람은 결혼한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그는 전쟁터로 떠난다.
사랑은 시작되었고
거리는
이미 생겨 있었다.
전쟁터에서
나폴레옹은 거의 매일 편지를 썼다.
포화와 먼지,
명령과 이동이 반복되는 시간 사이에서
그는 오직 한 사람을 향한 문장을 남긴다.
“당신 없이는 세상이 사막 같다.”
“나는 당신을 끊임없이 생각한다.”
“당신의 편지를 기다린다.”
그의 편지는 길지 않았지만
같은 감정이 반복되었다.
그리움,
확인,
그리고 다시 그리움.
전쟁에서는
하나의 목표를 끝까지 밀어붙이던 사람이었고,
사랑에서도
그는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관계를 끊어지지 않게 이어두려는 쪽.
그래서 그의 편지는
화려하기보다
꾸준했고,
집요하기보다
지속적이었다.
그는
전장을 지휘하면서도
한 사람을 계속 떠올리는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갔다.
그래서 이 시기의 편지는
지금도 그의 사랑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상징하는 한 문장이 전해진다.
그가 귀환을 앞두고 보냈다는 편지.
“며칠 뒤 도착하니
씻지 말고 기다려 달라.”
이 문장을 두고
여러 해석이 따라붙는다.
멀리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그녀의 체취와 온기를
그대로 느끼고 싶었다는 해석.
다시 말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그 사람 그대로’를
확인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의 정확한 출처를 두고는
지금도 의견이 갈린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전쟁에서 돌아오는 남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승리도, 명예도 아니라
한 사람의 감각이었다는 점.
그런데 같은 시간
파리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조제핀은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었다.
젊은 장교,
이폴리트 샤를.
이 관계는 비밀이 아니었다.
사교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고,
그녀는 그 중심에 있었다.
전쟁터에서는
멀리서 관계를 이어가려는 남자.
파리에서는
그 자리에서 관계를 살아가는 여자.
같은 시간,
다른 방식의 사랑.
그리고 그 순간
보이지 않던 균형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나폴레옹 쪽의 감정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먼저 편지를 보냈고,
그가 먼저 기다렸고,
그가 더 자주 관계를 확인했다.
그러나
외도가 드러난 이후
흐름이 달라진다.
상처를 받은 쪽은
나폴레옹이었고,
그 이후 그의 감정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다.
사랑은 남아 있었지만
이전처럼 곧바로 쏟아지지 않는다.
그 사이에
거리와 생각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관계의 힘이 이동한다.
한때
그가 붙잡고 있던 사랑이
이제는
조제핀이 놓지 않으려는 관계로
기울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외도의 기록이 아니다.
사랑의 흐름이
어디에서,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사랑은
처음부터 균형 잡혀 있지 않다.
그리고
같은 온도로
끝나는 일도 없다.
나폴레옹은 전쟁으로 명성을 쌓았다.
이탈리아 원정에서 연승을 거두며
젊은 장군의 이름은 빠르게 유럽에 퍼졌다.
그러나 파리는 달랐다.
전쟁터에서 영웅이 되는 것과
수도에서 권력으로 인정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파리는 여전히
코르시카 출신의 이 젊은 장군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 조제핀이 등장한다.
조제핀은
전쟁을 하지 않았다.
대신
파리를 움직였다.
그녀는 사교계를 장악했고,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 편을 만들었고,
군인 남편을 세련된 권력으로 번역했다.
혁명 이후의 프랑스에서
정치는 의회와 군대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살롱,
사교,
관계,
이미지.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권력의 방향을 결정했다.
조제핀은 그 세계를 정확히 읽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권력의 중심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조제핀의 역할을 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떤 평전들은 그녀를 이렇게 부른다.
“황제를 만든 여자.”
전쟁은 왕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승인 없이는
황제가 될 수 없다.
조제핀은
그 승인 장치를 쥐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상황을 읽을 줄 아는 여자였다.
누구와 가까워져야 하는지,
어디서 물러나야 하는지,
언제 남편을 빛나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녀는 권력의 흐름을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읽었다.
문제는 아이였다.
조제핀은 이미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첫 결혼에서 태어난 외젠과 오르탕스.
그러나 나폴레옹과의 사이에서는
끝내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황제가 된 순간
사랑은 더 이상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왕조의 문제가 된다.
황제에게 후계자가 없다는 사실은
궁정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폴레옹의 가족,
특히 그의 형제들은
끊임없이 이혼을 압박했다.
궁정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반복됐다.
“황제에게는 후계자가 필요합니다.”
사랑은
조용히 정치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오래 버텼다.
그러나 제국이 커질수록
결정은 점점 개인의 것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결국
1809년.
이혼이 선언된다.
이혼식 장면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전해진다.
나폴레옹이 선언문을 읽다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는 이야기.
조제핀이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는 기록.
묘사는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대부분의 전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다.
그날 밤,
두 사람 모두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이혼은 정치적 결정이었다.
그러나 정치가
감정을 지워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폴레옹은 다시 결혼한다.
오스트리아 황실의 공주,
마리 루이즈.
이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외교였다.
왕조를 위한 결혼,
유럽 질서를 위한 결혼.
그리고 1811년
아들이 태어난다.
로마 왕,
나폴레옹 2세.
제국은 후계자를 얻었다.
그러나 그 순간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황제는 왕조를 얻었지만
사랑도 함께 얻었을까.
이 지점이 중요하다.
보통이라면
버티거나 저항했을 것이다.
황후의 자리,
황제의 사랑,
그리고 제국의 중심.
그 모든 것을 내려놓는 선택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조제핀은
공식적으로 이혼을 받아들인다.
왜였을까.
여기서 역사가들은 몇 가지 이유를 이야기한다.
첫째,
그녀는 현실을 읽는 사람이었다.
황제가 된 순간
나폴레옹의 사랑은 더 이상 개인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왕조의 문제였고,
유럽 정치의 문제였고,
제국의 미래가 걸린 문제였다.
조제핀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이해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그녀는 자존심이 강했다.
궁정에서 쫓겨나는 여자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결단하는 황후로 남는 길을 택했다.
실제로 이혼식에서
조제핀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는 황제의 영광과 프랑스의 이익을 위해
이 희생을 받아들인다.”
이 문장은
사랑의 언어라기보다
정치의 언어였다.
셋째,
전략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혼 이후에도
조제핀은 말메종에서 황후에 준하는 대우를 유지했다.
막대한 연금,
궁정에서의 존중,
그리고 무엇보다
황제와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이후에도
조제핀을 자주 찾아갔고
편지를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모든 조건은
완전히 패배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대우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평전은
이 선택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이혼은 패배가 아니라
품위 있는 퇴장이었다.
그리고 그 품위가
조제핀을 더 강한 인물로 만든다.
물론
그녀의 마음이 정확히 어땠는지는
우리가 단정할 수 없다.
사랑이 이미 식었을 수도 있고,
현실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고,
혹은 끝까지 나폴레옹을 사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상황을 읽고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역사에 남을지를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조제핀은
쫓겨난 황후로 기억되지 않는다.
오히려
황제를 떠난 여자로 기억된다.
이혼 이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황실의 공주
마리 루이즈와 재혼한다.
그리고 1811년
아들이 태어난다.
제국은 마침내
원하던 후계자를 얻는다.
왕조의 문제는 해결된 셈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이혼 이후에도
나폴레옹이 말메종을 비밀리에 방문했다는 기록,
조제핀에게 정치적 조언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여러 전기에서 전해진다.
그 관계는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조제핀은
말메종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낸다.
궁정의 소란과는 멀리 떨어진 곳,
꽃이 피고 지는 정원을 거닐며
이제는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시간.
그리고 1814년,
그녀는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와
정원을 함께 거닐다가
찬 공기에 몸을 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날의 공기가 어땠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녀의 마지막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생각보다 인간적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늘 하나의 장면이 덧붙는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순간.
무너진 제국의 끝에서
그가 남겼다는 몇 개의 이름들.
그리고 그 사이에,
조용히 끼어 있는 하나의 이름.
“조제핀.”
정확히 어떤 말이었는지는
기록마다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장면을 지워버리지 않았다.
제국을 쥐었던 남자가
마지막까지 기억한 것이
권력도, 왕관도 아니라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이 사랑은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결말이 아니라
기억으로 남은 이야기다.
그리고 어떤 사랑은
함께 살지 못했기 때문에
더 오래 남는다.
이 사랑은
법적으로 금지된 사랑은 아니었다.
불륜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사랑은
성공할수록 불가능해졌다.
나폴레옹이 커질수록
조제핀은 점점 정치적 부담이 되었고,
사랑은 더 이상 두 사람의 감정으로 남지 않았다.
그것은
왕조의 문제가 되었고,
외교의 문제가 되었고,
후계자의 문제가 되었다.
황제의 사랑은
사적인 감정으로 오래 머물 수 없다.
그 위에는 언제나
국가와 권력,
그리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올라탄다.
그래서 이 관계는
‘하면 안 되는 사랑’이 된다.
사랑이 죄라서가 아니다.
그 사랑이
더 이상 개인의 것으로
남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복을 선택할 줄 알았다.
전략을 짜고,
지도를 다시 그리고,
나라를 접수하는 일에는 천재였지.
그런데
사랑 앞에서는 늘 초보였다.
조제핀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녀가 ‘미망인’이라는 사실보다
그녀가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먼저 끌렸다.
혁명이 남긴 폐허 속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생존.
그건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이었다.
나는 그녀를 황후로 만들었다.
하지만 황후가 된 그녀는
내 제국의 얼굴이 되었고,
제국의 얼굴은 결국
‘후계자’라는 단어 앞에서 흔들렸다.
나는 사랑을 포기한 게 아니다.
다만
사랑을 국정으로 바꾸는 순간,
그 사랑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뿐이다.
2026년이라면?
왕조 대신
여론이 나를 압박했겠지.
“왜 이혼했나.”
“왜 그녀를 이용했나.”
“왜 끝까지 사랑했다는 표정을 했나.”
그때도 지금도
나는 한 문장만 남긴다.
나는 제국을 만들었고,
그 제국이
내 사랑을 망가뜨렸다.
나는 한 번
죽을 뻔했다.
그리고 그 뒤로
조금 더 영리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계산적이었다고.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살아남는 사람은
대체로 계산을 잘한다.
하지만 내가
나폴레옹을 사랑하게 된 순간은
계산이 아니라
그가 나를 부르는 방식에 있었다.
“로즈”가 아니라
“조제핀.”
그 목소리는
나를 과거에서 꺼내
미래로 데려갔다.
나는 황후가 되었고
그는 황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황후가 된 순간부터
내 사랑은
내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 얼굴보다
내 배를 먼저 보았고,
내 자궁을 먼저 물었고,
내 “아이 없음”을
제국의 불안으로 번역했다.
그래서 나는
이혼을 받아들였다.
사랑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내가 무너져도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끝까지
그를 미워하지 못했다.
미워하기에는
그 사람은 너무 인간적이었고,
그래서
완전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
양귀비는
제국을 무너뜨린 사랑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당현종은
그 사랑 앞에서 비겁했던 황제로 읽힌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남아 있다.
그는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공식적으로 포기했을 뿐이다.
이 선택을
비겁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시선에서 보면
그는 단지 구조 속에서 결정을 내린 사람이기도 했다.
황제가 된 순간
사랑은 개인의 감정으로 남기 어렵다.
왕조, 후계자, 외교, 제국.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마음보다 먼저 계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제핀은
그 구조를 누구보다 빨리 이해한 여자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악녀와 냉혈한의 서사가 아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택했고
누군가는 제국을 택했다는
단순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건 결국
권력과 감정이 충돌할 때
누가 먼저 물러서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때로
사랑은 실패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공했기 때문에 끝나기도 한다.
Q1. 조제핀은 정말 나폴레옹을 이용했을까?
초기에는 현실적인 계산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혁명 이후의 파리에서 생존은 곧 관계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를 넘어 정치적·사회적 파트너십으로 발전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용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감정의 기록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Q2. 나폴레옹은 왜 그렇게 조제핀에게 집착했을까?
그는 사랑에서도 ‘승리’를 원했던 사람에 가까웠다. 강한 통제 욕망과 감정적 몰입이 뒤섞인 관계였다. 전쟁에서는 냉철한 전략가였지만, 사랑에서는 오히려 과열되는 모습을 보였다.
Q3. 조제핀의 가장 큰 능력은 무엇이었을까?
사교 네트워크를 통한 정치적 중재 능력이었다. 혁명 이후 프랑스 정치에서는 살롱과 인간관계가 중요한 권력 통로였다. 조제핀은 사람을 읽고 관계를 연결하는 감각이 매우 뛰어났다.
Q4. 이혼은 조제핀의 전략이었을까?
완전히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단순한 희생으로만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녀는 체제의 압력을 이해했고, 황후의 품위를 지키는 방식으로 이혼을 받아들였다. 수동적 희생이라기보다 전략적 수용에 가까웠다는 해석이 많다.
Q5. 나폴레옹은 이혼을 후회했을까?
말년 기록과 여러 전승에서 조제핀에 대한 애정은 분명히 드러난다. 이혼 이후에도 그녀의 지위를 유지했고 경제적 지원을 계속했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말에 ‘조제핀’이 포함되었다는 전승이 전해지는 것도 이런 기억 때문일 것이다.
Q6. 조제핀은 왜 끝까지 존중받았을까?
그녀는 황후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품위를 잃지 않았다. 말메종에서 조용한 삶을 이어가며 정치적 충돌을 피했고, 궁정과 외교 사회에서도 일정한 존중을 유지했다. 이 점이 그녀의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Q7. 나폴레옹은 평범한 남자였을까?
출신은 비교적 평범했다. 코르시카의 지방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그러나 야망과 집중력, 전략적 사고는 비범했다. 이 조합이 그를 역사적 인물로 만들었다.
Q8. 조제핀은 정말 미인이었을까?
당대 기록을 보면 절대적인 미인이라기보다 매혹적인 분위기와 세련된 매너가 강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고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는 능력이 뛰어났다.
Q9. 이 사랑이 양귀비 이야기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양귀비는 제국의 붕괴 속에서 희생된 인물로 기억된다. 반면 조제핀은 스스로 물러나는 방식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같은 권력 속 사랑이지만 선택의 방식이 달랐다.
Q10. 사랑은 왕조와 권력을 이길 수 있을까?
개인의 감정 차원에서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 시스템과 왕조의 논리 앞에서는 대부분 밀린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종종 권력이 승리한 사건보다, 그 안에서 남은 사랑의 이름을 더 오래 기억한다.
ㅣ
나폴레옹은 사랑을 포기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조제핀은
그 선택을 받아들였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을 살아남는 방식으로 바꾸는 선택을 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단순히 이혼한 황제 부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이 권력에 닿는 순간
한 사람의 감정이
왕조와 국가의 문제로 번역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황제가 된 순간
사랑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다.
후계자, 왕조, 외교, 제국.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마음 위에 올라탄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사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사는
한 가지 사실을 조용히 남겨 두었다.
제국은 무너졌고
왕관은 사라졌고
유럽의 지도도 여러 번 다시 그려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한 황제의 이름을 말할 때
그와 함께 떠올리는 이름이 있다.
조제핀.
황제는 사랑을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을
완전히 지워 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제국이 아니라
이름으로 남는다.
나폴레옹과
조제핀.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권력보다 오래 살아남는
사랑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https://www.millie.co.kr/v4/millieRoad/36133/134849
<하면 안 되는 사랑>
역사 인물 편 시즌 2.
브런치와 함께 밀리의 서재에서도 동시에 연재하고 있어요.
밀리의 서재에서는 노란 버튼 '밀어주리'가 작가를 응원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한 번씩 꾹 눌러주시며 응원 부탁드릴게요.
밀리의 서재에서 연재 중이신 작가님들도 알려주시면 저도 찾아가겠습니다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