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나는...
언니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5월 5일 오후 5시 5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시간에 언니는 결국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 달 남짓... 나는 아직도 언니를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채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수업을 하는 중에도 문득 문득 언니가 떠올라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힘겹게 삼키곤 한다. 밤에는 좀 편하게 꿈속에서 언니를 만난다. 함께 밥을 먹고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 나누고 언니의 마른 몸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눈을 뜨면 내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언니가 아직 내 곁에 있다.
언니의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걸 대학병원 암센터에 입원하고 나서야 실감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집에 있을 때만 해도 거동이 조금씩 불편해지기는 했지만 맑은 정신으로 우리와 무리없는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원에서 임종 면회를 권했다는 말에 나는 그날 수업을 빼고, 조퇴하고 온 남편과 함께 언니에게로 달려갔다. 병실에 이런저런 줄을 달고 누워있는 언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앉아서 대화하는 것조차 힘들어 자꾸만 눈이 감기고 까무룩 잠이 드는 언니를 보다가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언니의 죽음이 보였다.
4월 한 달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언니를 만나러 갔다. 언니와 대화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고 언니는 6년 전 호스피스 병동에서 눈을 감았던 아빠의 모습을 닮아갔다. 통증이 심해서 마약성 진통제를 최대치까지 투여했다고 했지만 우리 앞에서는 단 한 번도 아프다고 소리치지 않았고 눈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깔끔한 성격 탓에 몹쓸 병을 얻었을 지도 모른다고 책망하고 싶었지만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언니의 마음이 느껴져 숙연해졌다.
5월 4일, 어린이날 연휴 탓에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 가는 병원에 5시간 걸려 도착했다. 그날이 언니와의 마지막이 되었다. 어린이날엔 남편과 가까운 곳에서 산책을 하고 연안부두어시장에 들러 시장을 보고 왔다. 조기와 갈치를 다듬고 있는 중에 작은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가 갔단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렇다고 충격이 덜하거나 슬픔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집안 일을 수습하고 미리 준비해둔 검정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 2박 3일용 가방을 챙겼다. 언니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언니의 카톡으로 부고가 도착했다. 내가 찍어준 코스모스 배경의 프사가 여전히 눈부시게 예쁜데 환한 얼굴로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그 상황이 몸서리쳐지게 스산했다. 가슴이 저려왔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와 밥을 먹고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 나누고 함께 차를 마셨는데 그런 언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운전하는 남편 곁에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언니의 영정 사진은 너무도 낯설었다. 프릴이 달린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 자켓이라니... 언니의 취향과는 너무 다른 어색한 구성에 속이 상했다. 평소 패션에 민감하고 옷을 잘 입었던 언니인데 마지막 가는 길 가장 언니다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내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문객을 맞이하고 언니를 아는 사람들과 함께 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함께 슬픔을 나눴다. 나이 60도 되지 않아 30년 넘게 일만 하다가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하고 떠난 언니를 모두가 입을 모아 안타까워했다. 바보같은 언니...
2박 3일 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남편, 두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가족은 다같이 모여 저녁을 먹는데 언니가 없는 집에서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할 형부와 두 조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언니의 몸은 작은 단지 안으로 들어갔지만 언니의 영혼은 가족 곁에서 쉽게 떠나지 못할 것이다. 사는 동안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 아쉽고, 이승에서 맘껏 누리지 못한 너무나 짧은 인생이 한스러워 언니는 쉽사리 돌아설 수 없을 것이다. 얼마 후면 언니의 49제다. 그때가 되면 우리의 바람대로 언니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까.
언니가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언니가 떠나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좀 멍한 상태였다. 일주일에 3일 학원 수업을 위해 출퇴근하는 일도 가끔 버거웠고, 매일 밤 잠을 설치고 불규칙하게 먹고 마신 탓에 몸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졌다. 두 달 넘게 나를 위한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고 글을 쓰는 것은 언감생심으로 내 블로그와 브런치는 먼지가 두텁게 쌓였다. 오늘부터, 오늘부터 하면서 다시 일상을 정돈하고 후회없는 시간을 살자 마음은 먹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6년 전 담도암으로 2년 반을 고생하던 아빠가 떠났을 때 나는 잠시 일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2년 전 요양병원에서 엄마가 눈을 감았을 때 나는 엄마처럼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번에 언니가 아빠와 똑같은 담도암으로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병과 고통과 죽음이 두려워졌다. 아빠가 떠났을 때처럼 나를 돌아보는 여유를 갖기도 힘들고 엄마가 떠났을 때처럼 더 잘 살아보겠다고 힘을 내기도 어렵다. 그저 시간에 떠밀려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는 기분이다.
더 이상 이렇게 나를 내팽겨 둘 순 없다. 겉으로는 별탈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이 내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한동안 하지 못했던 아침 산책을 시작했다. 비어 있던 다이어리를 채워가고 있다. 아들과 영화를 보고 남편과 등산도 했다. 무슨 책을 읽을까 책장을 서성인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언니를 글로 썼다. 언니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나는 이렇게 살 궁리를 한다. 죽음을 향해 가는 내 삶이 애처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