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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Nov 21. 2024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소원을 빌어봐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믿고 본다. 그의 영화를 보고 실망을 한 적은 없으니까. 고레에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큰아들에게 권해준 건 내가 먼저였지만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은 큰아들이 먼저 보고 내게 권한 영화다.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연기를 잘 한다며 감탄했다. 그랬다. 그동안 봐온 고레에다 영화에는 유독 아이들이 많이 등장했고 그때마다 어린 애들이 어쩌면 저렇게 연기를 잘 할까 신기할 정도였다. 이번에도 그랬다. 



두 아들의 부모는 별거 상태다. 첫째 아들은 엄마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둘째 아들은 기특하게도 아빠와 살기를 선택하고 불편을 감수하며 지내고 있다. 엄마와 함께 조부모 집에서 사는 큰아이는 비교적 안정되어 보인다. 첫째답게 의젓하다. 아빠와 함께 사는 작은아이는 그저 사랑스럽다. 한없이 밝고 순수하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자기 할 일을 뚝딱뚝딱 잘 해낸다. 두 아이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이 영화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첫째의 소원은 네 가족이 예전처럼 함께 모여 사는 것이다. 화산이 폭발하면 어쩔 수 없이 아빠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한다. 둘째는 온가족이 함께 사는 것에 그리 간절하진 않다. 철이 없어 그런가 싶다가도 음악을 하는 아빠를 진짜로 이해하고 응원하는, 속 깊은 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떼어놓은 부모 마음은 어떨까. 음악을 버릴 수 없는 아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엄마,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사인 것 같다.



아이들은 저마다 소원이 있다. 죽은 개를 살려달라고, 야구 선수가 되게 해 달라고, 그림을 잘 그리게 해 달라고,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각자 간절히 바라는 것들을 품고 기적이 이루어진다는 곳으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260km의 빠른 두 기차가 만나는 곳에 가서 소원을 빌면 엄청난 에너지가 기적을 일으킨단다. 말도 안되는 줄 알면서도 아이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게 된다. 더 웃긴 건 아이들이 각자의 소원을 소리칠 때 혼자 영화를 보며 나도 큰소리로 소원을 빌었다.  




가장 간절했던 큰아들은 정작 소원을 빌지 않았다. 아빠의 말을 듣고 가족보다는 '세계'를 선택했단다. 가장으로서의 책임보다는 음악이라는 세계를 선택한 아빠는 첫째아들에게 너만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작은아들은 아빠의 꿈이 이뤄지게 해달라고 소리쳤다. 결국 이 영화는 가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각자의 꿈을 이루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가족이 다함께 모여 사는 것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세계를 꿈꾸고 만들어가는 게 더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이다.



내가 소리쳐 간절히 바란 소원은 "우리 가족 모두 죽을 때까지 병들지 않게, 아프지 않게, 제발 건강하게 살게 해주세요"였다. 아빠와 큰언니를 같은 암으로 잃었다. 엄마는 오랫동안 요양병원에 있다가 홀로 외롭게 눈을 감았다. 모두 원하지 않은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이들어 죽을 때까지 병들지 않는다면, 아프지 않고 두 다리로 건강하게 설 수만 있다면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 100세 시대에 내 소원은 그야말로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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