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랑
차오를 때까지 기다린다고 스스로 위로했는데 너무 멀리 와버린 기분이다. 지금까지의 길은 잊고 완전히 다른 길로 가게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 불안하다. 매일 읽고 쓰고 걷고... 그것만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욕심내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허허...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왜 몰랐을까. 아니, 자신을 과신한 탓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완성이란 게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한없이 부족한 인간이 얼키설키 엉킨 감정을 풀지 못해 허둥대고 있다.
불안
몸이 예전같지 않다. 나이를 먹어가니 당연하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약해지다가 할 일을 못하고 하고 싶은 일도 포기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남편과 오래오래 걷고 맛있는 거 먹어가며 지금처럼 술 한 잔도 기울이면서 살고 싶은데 벌써부터 체력을 고려해 걷기 코스를 고른다. 이러다 어느 순간 남편과 나 누구 하나가 먼저 주저앉게 되면 어떡하나 때때로 불안이 엄습한다.
안쓰러움
남편이 아킬레스건염이다. 몇 달 전 강화도 함허동천 코스로 마니산을 다녀온 후 절뚝거리며 출근했단다. 주말 부부라 그 다음 주 금요일 밤이 돼서야 남편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했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나보다 느려진 남편의 걸음이 신경쓰였다. 그래서 자꾸, 남편의 뒤에서 걷게 된다. 눈에 띄게 줄어든 머리숱, 움츠러든 어깨, 근육이 빠져 엉덩이와 허벅지 부위가 헐렁해진 바지핏... 안쓰러워 뒤에서 꼭 안아주고 싶었다.
두려움
7년 전 아빠가 암으로 떠났다. 엄마는 요양 병원에서 홀로 코로나를 겪어내다 3년 전 결국 아빠 곁으로 갔다. 작년 어린이날, 30년 넘게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했던 큰언니가 60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눈을 감았다. 아빠와 같은 암이었다. 너무 가까이에서 가족의 죽음을 지켜봤다. 겉으로는 죽음에 대해 의연한 척 하지만 사실은 무섭다. 암이라는 병이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눈이 얼마나 공허한지, 인생의 마지막이 얼마나 쓸쓸한지, 인간이 얼마나 외롭고 약한 존재인지, 너무 잘 알게 되었다. 잘 죽고 싶은데 잘 사는 게 쉽지 않다. 살아가는 것이 죽어가는 것이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 두렵다.
욕심
대학 4학년 때부터 국어 강사로 시작해 11년 학원 원장까지 겸하면서 20년 넘게 일했다. 그러다 3년 4개월 일을 쉬었다. 그후로 재취업해서 1년 국어 강사로 일하다 학원을 옮겨 논술 강사로 4년 째다. 일주일에 3일만 일하는 꿈의 직장이다. 매년 성장했다. 수강생에 비례해 급여가 달라지는데 지금 받는 급여가 가장 많다.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이걸 유지하고 싶어서, 그보다 더 많은 수강생을 받고 싶어서 때때로 마음이 조급해진다. 욕심이 내 일의 보람과 즐거움을 잡아먹지 못하게 마음을 비우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랑
그동안 하나하나의 감정에 취해 똑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무거운 마음에 짓눌려 납작 업드리기도 했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합리화하며 내 상태를 직시하려 하지 않았다. 본질적인 것을 해결하지 못한 채 겉으로만 멀쩡한 척, 주변 사람들은 물론 나 자신까지도 속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모두가 사랑이다. 가족과 나 자신, 그리고 내 인생에 대한 사랑이 모든 감정의 출발이었다. 그런데 사랑으로 시작된 그 소중한 감정들을 잘 정돈하지 못하고 휘둘린 것이 문제다. 이제 그 엉킨 감정들을 풀어낼 때다. 내 안의 '사랑'이 '나'를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