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매주 토요일 8시간 논술 수업을 한다. 1시쯤 쉬는 시간 10분 동안 작은 복사실 책상에서 배를 채운다. 학원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을 먹는 시간이다. 그때 핸드폰 교보문고 앱으로 들어가 요즘 무슨 책이 있나 어슬렁거린다. 부지런히 음식물을 씹어 넘기며 눈으로는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 책을 찾는다. 그러다가 은유 작가와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극찬하고 무라카미 하루키까지 추천한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발견했다. "성경에 비견되는 완벽에 가까운 도덕적 우화"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1927년에 출간되어 1928년에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이다. 퇴근 길 근처 교보문고에 들러 구입했다.
사실 분량도 그리 길지 않고 스토리도 복잡할 것 같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지며 다섯 명의 여행자가 그 아래의 골짜기로 추락했다'로 시작한다. 책의 소개글과 추천글 등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 다섯 명이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야기하겠구나. 예상대로였다. 우선은 그냥 스토리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소설의 마지막장을 넘겼다. 은유 작가, 신형철 문학평론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느꼈다는 대단한 감흥은 없었다. 역시 개인의 취향인가 보다 싶었다. 너무 큰 기대를 했던가 보다. 이 책은 그대로 책장에 꽂혔다.
2주쯤 지나『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냥 다시 읽고 싶어졌다. 내가 놓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독서노트도 준비했다. 역시... 좋은 책은 한 번만 읽으면 안되는 거였다. 처음 읽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발견하지 못한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필사도 하고 잠깐씩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왜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 아니면 계획에 의해 살고 계획에 의해 죽는 것일까.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라는 말을 한다. 박완서 작가도 같은 해에 남편을 잃고 아들까지 잃었을 때 그런 말을 했다고 읽은 적이 있따. 70대까지 자전거 모임을 다니며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던 아빠가 암으로 1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혼자 코로나 시기를 견디다 말을 잃고 기억을 잃고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되었을 때에, 30년 넘게 간호사로 일한 큰언니가 60도 안된 나이에 아빠와 같은 암으로 죽음에 가까워질 때에도, 분명 왜 하필 나냐고 신이든 누군가에게든 소리쳤을 것이다. 아빠, 엄마, 큰언니까지 차례로 내곁을 떠날 때 나도 왜 하필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고, 그만큼 고생했는데 행복할 시간은 좀 넉넉히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억울해 했으니까.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에서 죽은 다섯 명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왜 하필 자신들에게, 하필이면 바로 그 순간에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과연 신이라는 존재가 있기나 한 건지 한탄스러웠을 것이다. 딸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망가뜨렸던 도냐 마리아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 수녀원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후작 부인 곁에서 말벗을 하며 시중을 도왔던 어린 페피타, 수녀원에서 쌍둥이 형과 키워진 후 형마저 잃고 힘들고 외롭게 살았던 에스테반, 유명 배우 카밀라 페리촐레를 키워내고 그녀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표현하며 결국 그녀의 아픈 아들마저 거두려 했던 피오 아저씨, 카밀라와 돈 안드레스 총독의 외동아들로 태어났지만 몸이 아파 마음도 아프고 외로웠던 아이 돈 하이메. 이들 중 그 누구도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곧 죽을 것이고, 다섯 명에 대한 모든 기억도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p.207
결국, 사랑이다. 우리가 언제 죽게 되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랑뿐이다. 안타깝게 죽은 자들을 사랑으로 기억하고 사는 동안 아낌없이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살면 그뿐이다. 책 속에 현명한 인물이나 뒤늦게 깨달은 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에서 에스테반이 유일하게 존경했던 알바라도 선장은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니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최대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자신을 믿고 따랐던 페피타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하지 못한 수녀원장은 자신이 너무 바쁘게만 살았다고 후회한다.
내 곁을 떠난 아빠, 엄마, 큰언니도 죽음 뒤에 내게 말했다. 생각보다 인생이 그리 길지 않다고, 그러니 하기 싫은 걸 해가며 너무 아등바등 살진 말라고, 짧은 인생 되도록 좋아하는 일을 먼저 하라고, 그리고 아낌없이 사랑하라고 말이다.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은 분명 두렵다. 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오늘을, 열심히, 사랑하며, 즐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