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에서
헤이그에서, 애국에 관해
*헤이그는 우리나라가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었던 시절, 2차 만국 평화회의가 열린 곳이다. 이준 열사 등은 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1907년 이곳에 왔다. 지금보다 멀고, 힘든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서 별세했다. 국제질서는 강자의, 강자에 의한 것이다. 이준 열사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라를 위한 일에 가부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이곳에서 나는 이준 열사의 저 큰 애국심의 동기가 궁금해졌다. 오늘날 국가는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로 규정된다. 여기서 폭력이란 법과 사회 운영 시스템 등을 매개로 한 개개인에 대한 권리제약과 통제를 뜻한다. 국가의 폭력은 대체로 압도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형태로 행사된다. 세금 징수, 군 징집, 형법의 집행 등. 이 과정에서 개인이 저항할 수 있는 수단 따윈없다. 개인은 언제나 국가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애국' 이란 단어 자체가 권위주의 정부의 프로파간다로 오남용 됐던 탓에 거부감이 드는 경향도 없지 않다. 1950~90년대 권위주의 정부 시절 '애국'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된 국가의 폭력은 당위적이지도, 올바르지도 않았다.
*보통의 개인이라면, 불만을 품기 마련이다. 물론 국가는 많은 제약을 거는 동시에 공공재를 제공하고 국방과 치안을 통해 시민의 삶을 보장한다. 그러나 이는 감사히 여겨야할 은혜라기보다, 세금을 낸 우리의 정당한 권리로 여겨진다.
*이준 열사를 움직이게 한 애국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그럼에도 국가는 나를 길러주고, 나와 내 사람들을 품고 있는 땅이어서였을까. 아니면 나라를 잃는 극단적인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걸까. 나는 어쩐지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앞으로 사랑해야할 것 같으면서도 그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준은 답을 알고 있는것 같지만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