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를 이립(而立)이라고, 사는 데 기초를 확보하는 때라고 하지만, 그건 공자님 시대에나 통하던 말인 것 같다. 요즘 시대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방황하는 존재다. 심지어 '노력하는 한' 더 방황하는 존재다(괴테).
19대 대선 때부터 정치부에서 함께 구르고 혼나던 타 언론사 동기가 얼마 전 기렉시트(언론사 퇴사)를 감행했다. "3•1절 맞이 독립"이라며 사표를 낸 지 며칠만이다. 평소 기렉시트를 종종 말하던 친구긴 했다. 그냥 하는 말 치고는 고민이 좀 배어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만둘 줄은 몰랐다. 심지어 퇴사 당시 후사를 정하지 않은 채 사표를 낸 '노딜 기렉시트'였다. 경이로운 결단이다. 이 친구뿐 아니라 본인 꿈, 인생에 진지한 사람일수록 손에 당장 쥔 것을 잘 버릴 줄 아는 것 같다. 필연적으로 괴로워하지만 결국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나도 기자일이 천성에 꼭 맞지는 않는다. 남이 숨기려는 것까지 알아내야 하는 일, 즉 '취재'가 천성에 맞지 않는다. 특별히 세상에 궁금한 것도 없고, 별다른 사명감도 없기 때문이다. 난 그저 글쓰기와 선비놀음이 좋아 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보아하니 소설가는 못되겠고 신문기자가 차선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사실 기자라기보단 논설위원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런데 논설위원은 아무리 빨라도 20년 뒤에야 할 수 있을 전망이다)
글쎄.. 그렇다고 나는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둘 계획은 없다. 이쯤에서 현실 타령, 가족 핑계가 나올 수도 있지만, 난 그냥, 그냥 인생이란 게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살다보면 살아지는 것이겠거니~ 싶었달까. 어쨌든 매달 나오는 월급과, (기레기라고) 욕은 먹어도 무시는 받지 않는 직업, 이러나저러나 글을 쓰며 사는 삶. 나쁘지 않았다. 애초 최선이 아니라 차선임을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오늘 같은 날이면 현자타임을 피할 수 없다. 뭐가 맞는지.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은게 맞는지. 아닌게 아닌 줄 알면서도 괴로워 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상인걸까. 난 괜찮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