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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재 Mar 21. 2021

좆같은 상사의 등장

불지옥을 따라 실개천처럼 놓인 꼬불길

최근 들어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다시 되짚어 보게 된다. 아내 때문이다. 아내는 지난해 여름 재취직했다. 단번에 직장인 6년차에 접어든 내 월급을 따라잡을 정도로 높은 연봉을 받았다. 그러나 대가가 따랐다. '좆같은 상사'의 등장이다.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꼭 나쁜 상사를 만나야한다는 법은 없는데, 하필 그렇게 됐다. 했던 말을 까먹고, 본인이 아는 것만 맞고, 그러나 결과가 잘못되면 아랫사람 탓을 하고, 동시에 왜인지 모를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상사였다. 아내가 괴로울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까지 이상한 상사를 모셔본 적이 없다. 희한한 몇몇 어른이 있긴 했지만 참을만 했다. 그런면에서 '상사복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나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멀고 생경한 길을 넘어와야했다. 사회생활이란 것이 꼭 한 가지 이유로만 힘든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 년간 불지옥을 따라 실개천처럼 놓인 꼬불길을 허위-허위 달렸다. 그렇게 황량한 마음의 나대지를 지난 뒤 작년쯤에야 '큰 탈 없는 직장생활 안착'이라는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어차피 30년 직장생활 할 거, 오늘 벌어진 일은 기억에 남지도 않겠거니..란 위안이 생겼달까. 



길을 지나와본 사람 입장에서 나는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까. "다니다보면 괜찮아질거야"라고 할까? 아니면 "힘들면 그만둬"라고 해야할까. "네 잘못이 아니야", "상사가 나빴네"라는 말은 당연히 해야겠지만, 그 말 말고는 또 어떤말이 있을까. 



2021년, 32세. 우리가 한 해를 산다면 지금은 4월쯤이다. 봄이다. 이 시기에 내리는 비는 땅 속 깊이 자던 씨앗들을 깨우는 비다. 비가 내리고 나면 마음의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질 것이다. 결국 시새워 벙그러질 꽃 시절을 향해 갈 것이다.  옮겨도 좋고, 아예 일을 그만둬도 상관없다. 


우리는 훌쩍 클 것이다.





봄비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그러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이수복(1924~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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