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원더보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재 Apr 03. 2021

음주 , 이 굴레는 운명이다

그제 밤, 술을 죽어라 퍼부었다. 이튿날 새벽, 세종시에 내려왔다. 점심, 나이많은 취재원이 반주를 하자해 거들었다. 저녁, 다시 서울에 올라와 또 술을 들이부었다. 어제까지 몰랐던 사람들, 하지만 알아두면 언젠가 일할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과의 술자리다. 개중엔 상사와 함께한 자리도 있었다. 상사는 내게 "(이 정도면) 잘했다"는 말과 "(좀 더) 잘해라"는 말을 뒤섞어 전했다. 방점은 늘 그렇듯 뒤에 찍힌다. 이럴때면 술은 못이 된다. 나는 술을 땅.땅.땅 망치질해 넣는다.





매일 저녁 약속이 있는건 아니어서, 저녁자리가 없는 날마다 와이프와 인왕산 둘레길을 걷는다. 교남동에서 부암동까지 뻗어있는 이 길은 흙길이어서 그런지 사방에서 풀냄새가 난다.


산책의 제 1목적은 건강챙기기지만, 여러 부수재가 따른다. 지나간 하루를 되짚게 하고, 번잡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다만 이때 드는 생각이라는 게 결국 또 직장에서 벌이진 일이다. 상사가 했던 말, 그날 쓴 기사에 대한 피드백 등등을 생각한다. 일이 특히 힘들었던 날일수록 생각에 깊게 빠져든다. 숙고의 시간을 가진다고 해서 맞닥뜨린 문제가 꼭 해결되는건 아니지만 감정의 갈피를 잡을 수 있다. 산책이 감정을 갈무리하는 역할도 하는 셈이다.



오늘은 술을 먹고 산책했다. 산책 중에 비가 내렸다. 풀, 나무, 흙의 숨겨진 냄새가 비를 맞아 스며나왔다. 살아있는 것들의 냄새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갔다.





죽어라 일해도 죽지 않고, 일하다 죽겠네 죽겠네해도 죽지 않는다. 밥벌이엔 대책이 없다. 이 굴레는 운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좆같은 상사의 등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