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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재 Aug 25. 2019

엄마에게 아버지란

하루는 엄마의 몸 오른 편에 마비가 온 일이 있었다

                                                                                                          

아직 장가 가기 전, 대학생 때의 일이다. 하루는 엄마의 몸 오른 편에 마비가 온 일이 있었다. 놀란 마음에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후다닥 택시를 부르고.. 아, 그래 엄마 드시던 약은 챙겨가야지.. 수, 수건은 거기 있겠지?... 마음이 급하다보니 상황 판단이 잘 안됐다. 그런데 이상했다. 엄마가 너무나 태연했다. 엄마는 급해 하는 날 보고 "너무 서두르지 말아라"며 여유를 보였다. 몸에 마비가 온 사람이라기엔 당황스럽기까지 한 침착함이었다. 
여차저차 입원 수속까지 밟고 한숨을 돌렸다. 반나절이 그새 지나있었다. 한숨 돌리고 나니 아버지에게도 소식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당시 해외에 출장 중이셨다. 당시라기보다, 아버지는 내가 자라는 거의 내내 해외 생활을 이어오셨다. 어렸을땐 해외에 나가 같이 살기도 했지만 내가 중학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엄마와 나는 한국에, 아버지는 해외에서 지내게 됐다. 아버지는 2-3개월에 한번씩 휴가 오시는 삶을 반복했다. 

해외로 뚜뚜,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께 사정을 설명하고 엄마를 바꿨다. 
그때였다. 전화를 건네받은 엄마가 울었다. 엉엉.. 서럽게 울었다. 방금 전 까지의 침착함은 어디 내다버리고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칭얼댔다. "당신이 한국에 있었어야지.."  엄마는 울었다. 서럽게 울었다. 
그 날 깨달았다. 아들은 끝내 미더운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반대로, 아버지가 엄마에게 그만큼 큰 산과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레바논이 낳은 세계적인 철학자 겸 작가 칼릴 지브란은 자신의 저서 <예언자>에서 "인간은 성장과정에서 오이디푸스적 시기동안 반대 성(性, sex)의 부모를 사랑하고 같은 성의 부모를 연적 관계로 인식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국 같은 성의 부모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닮게 된다"고 말했다. 작중 지브란이 "내가 그의 아버지를 아는데, 그대는 내가 그를 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라고 말하는 장면도 나온다. 지난 12월엔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인간발달 및 가정학과의 낸시 맥엘웨인 교수팀이 '동성 부모-자식 간'의 유전적 동화(同化) 현상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꼭 권위자의 말을 듣지 않더라도 이는 우리 모두 어느정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자식은 알게 모르게 부모를 닮는다. 특히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어머니를 닮는다. 자식의 행동양식은 부모의 것을 복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식이 커서 새로운 가정을 꾸릴 때도 부모의 흔적은 남아 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했던 태도를 보고 체득한 남편 상象을 자신의 삶에 투영하는 식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아버지같은 남편,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된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좋은 점은 좋은 점대로 받고, 고칠 점은 고쳐서 받을 수 있느냐 일것이다. 

내 아버지는 남자-어른의 전형을 보인 분이었다. 가장家長으로 규정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식구들 밥벌이에 최선을 다했다. 34년 월급쟁이 인생, 고된 순간이 분명 있었을 건만 내색한적이 없다. 100% 만족할 수 없는 아들이었을테지만 잔소리 하지 않았다. 그런 면면이 엄마에게, 내게, 아버지를 '큰 산'같은 존재로 느끼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다만 아내나, 자식에게 애정 표현을 자주 하진 않으셨다. 않았다기보다는 못했다. 서툴렀던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떤 남편일까. 어떻게 하면 믿음직하면서도, 살가운 남편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유전자는 정말 아버지의 그것과 동화되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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