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연애 결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재 Aug 25. 2019

일과 가정 사이

전쟁영웅 아가멤논은 왜 아내에게 살해당했나

                                                                                                              

2017년 이 즈음의 일이다. 중앙일간지의 정치부 기자였던 나는 초년병 기자로서 이사람 저사람 많이 만나두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느 날 점심, 출입하던 당 선거대책위원회의 한 관계자와 식사자리를 갖게 됐다. 이 관계자는 앉자마자 기자들의 가족 안부를 물었다. 아이스브레이킹(ice-breaking) 차원에서 가족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이내 자기 가족 자랑이 시작됐다. "우리 아들은 00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만족스러워하더라고요" "다른 애는 박사과정이에요" 그리고 그는 말했다. "내가 국회의원했던 것보다 자식 농사 잘 지은게 더 자랑스럽다니까요?" 


                                                                                                      

부모의 자식자랑은 말리는 게 아니라기에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동료 기자가 질문을 하나 던졌다. "사모님은요? 어떤 분이세요?" 악의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화를 더 이끌어가고자 한 질문에 가까웠다. 하지만 신나서 말하던 그 정치인은 이내 시무룩해졌다. 밭은 기침 끝에 대답이 나왔다. 

"어..아내는 하하. 저랑 사이가 썩 좋지가 않아서.. 아내는 저를 좀 지쳐하거든요" 

정치를 하겠다고 뛰어든지 십 수년. 이른바 뱃지(국회의원 뱃지) 다는게 소원이었기에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당에서 딱히 직함을 얻지 못하던 시절에는 집에 가져갈 돈 한 푼이 없을때도 많았다고 한다. "아내한텐 미안하죠..제 욕심 때문에.." 정치인의 어깨가 작아졌다. 우리는 다음 화제로 넘어 가야했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로 불리는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은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3부작 중 1부의 이름이 <아가멤논>이다. <아가멤논>은 수십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오는 아가멤논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목할만한 점은 아가멤논이 큰 약점을 하나 안고 있다는 것이다. 딸을 죽인 죄다.

사건은 트로이 전쟁 도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출항을 앞두고 있던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고민에 빠진다. 출항하려면 바람이 꼭 불어야하는데, 바람이 아예 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심지어 두 달이 지났지만 바람은 불지 않았다. 출전을 기다리던 군사들은 점점 지쳐갔고 사기도 땅에 떨어졌다. 다급해진 아가멤논은 신탁을 요청한다. 그런데 예언자 칼카스의 답이 기가 차다. "아가멤논이 자신의 막내딸을 제물로 바쳐야 바람이 불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사랑하는 막내딸이었지만 전쟁에서의 승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아가멤논. 결국 딸을 죽여 제물로 바친다.

딸의 엄마이자 아가멤논의 아내(클리테메스트라)는 분노한다. 주체할 수 없는 증오심을 불태운 그녀는 승전 뒤 집에 돌아와 목욕하던 아가멤논을 찾아가 암살한다. 이어 말한다. "이것이 복수와 심판이다". <아가멤논>은 영웅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 대의, 돈, 권력, 성공 등의 명분을 들어 배우자와 자식들에 대한 무관심을 변명한다. 아가멤논은 그런 '욕망을 위해 가족을 버린 자'들의 원형(原型)이다. 현대에 들어 국가, 민족, 대의 등의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면 돈과 권력, 성공의 명분은 강화됐다. 우리는 후자를 통칭 '일'이라고 부른다. 일과 가정은 양극의 것으로 이해된다. '일과 가정' '워라밸(work-life-balance)' 같은 대립구도가 낯익은 이유다. 그 구도 역시 선명하다.

아가멤논이 그랬듯, '일'에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그 반대편에 있는 가정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의 '아가멤논'은 직군을 가리지 않는다. 그게 정치인이 됐든, 일반 회사가 됐든, 스타트업이 됐든 어디가 됐든 일에서의 성공을 위해 가정을 포기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물론 '아가멤논'이 꼭 남자인 것도 아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일반화된 지금은 남녀 모두에 해당하는 일이다.

                                                                                                         

2017년의 내가 본 그 정치인은  언젠가 다시 뱃지를 달게 될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오면 아마 스스로 감격해할 것이다. 그 나름대로 그가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니 존중한다. 그러나 그를 생각할때면 한켠에 드는 안쓰러움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정치인은, 나는, 그리고 수많은 이 시대의 아가멤논들은 훗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은 여생,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려한다. 최소한 나의 아내가 클리테메스트라는 되지않게.




































매거진의 이전글 고집쟁이 배우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