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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재 Aug 25. 2019

고집쟁이 배우자

오베라는 남자

                                                                                                            

먼 바다에서부터 장대비가 내릴 때, 해안가에서는 시간을 식별할 수 없었다. 시간은 풀어져서 몽롱했다. 새벽 같기도했고 저녁 같기도 했다. 철모에서는 빗물이 땀방울처럼 흘러내렸다. 걷는 걸음마다 군화에 빗물이 스며들었다가 빠져나가며 질척대기를 반복했다. 아마도 살면서 이보다 추레한 꼴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군대에서 이별통보를 받은 날은 그랬다. 뒤돌아보면 그렇게 애틋한 관계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땐 바깥 세상 일이 크게 와 닿곤 했다. 전 여자친구는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는 너한테 지쳤다"고 했다. 그 뒤로 한동안 철책 앞 갈대밭 풍경이 괜히 서러워 보였다. 우우웅. 바람이 불면 더 그랬다. 상처의 말은 저문 강에 흐르는 물소리가 되더라. 머리 풀고 흐느끼는 갈대밭이 되더라.


                                                                                                           

프레드릭 배크만이 쓴 책 '오베(Ove)라는 남자'의 주인공 오베 꽉 막힌 남자다.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면 예외를 두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원칙주의자지만,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옹고집 이미지의 오베를 대하기 어려워한다. 그런 오베의 일상에 어느날 소냐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오베의 답답함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주는 여인의 등장이다. 오베는 소냐를 통해 원칙을 지키면서도 세상과 등지지 않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게 된다. 

오베는 자연스레 소냐를 사랑하게 된다. 대개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스스로를 과대포장해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베는 사랑하는 방식마저 그다웠다. 그는 어떤 것도 숨기지 않기로 한다. 소냐와의 첫 데이트, 오베는 상대방이 묻지도 않은 자신의 신체 결함까지도 밝힌다. 그런 오베를 보며 소냐는 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다. 

                                                                                                         

옹고집의 오베는 어느 날 (소냐로 인해) 살면서 해본적 없는 '거짓말'이란 것도 하게 된다. 사고로 아이를 잃고 시름에 빠진 소냐. 소냐가 오베에게 "앞으로 (아이 몫만큼) 나를 두 배로 사랑해달라"고 말하자 "그러겠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보다 더 그녀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미 한계를 넘어 사랑하고 있음에도. 사랑은 오베를 거짓말하게 만들었다.


                                                                                                             



군대에서 헤어진 전 여자친구(A)는 나를 답답해했다. 융통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강화-교동도 전방에서 근무하던 나는 "(근무지가 전방인만큼) 부모님 이외에는 되도록 면회 신청하지 말라"는 중대장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했다. A 입장에서는 중대장의 말 한마디에 갇힌 내가 답답했을 것이다. 입대할 때도 비슷했다. 난 나이가 참에 따라 서둘러 입대했는데, A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A는 "날 생각해서라도 좀 늦추라"고 했지만 내가 결국 말을 듣지 않았다. 입대 등 인생의 중요 행사(?)는 내 고집대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A에게 나는 '오베'였다. 세상 대부분 사람이 보는 오베. A와의 이별을 겪으며 나도 나를 의심했던 것 같다. "내 고집이 신념이 아니라 아집인걸까?"

다행히 나는 훗날 '소냐'를 만났다. 아내였다. 아내는 나의 고집을 좋게 바라봐줬다. 아내는 "소신 있는 사람이야말로 믿을만한 사람"이라며 다독여줬다. 나 스스로도 아내에게만큼은 경계를 허물게 됐다. 취준생 시절, 원래 공부할땐 절대 여자친구와 함께 공부하지 않던 나였지만 아내가 너무 좋아서 그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취직도 입대 못지않은 중요 행사다. 그러나 아내가 영 아니라고 말했던 회사는 선택지에서 배제했다. 오베식 거짓말은? 당연히 했다. "내가 자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수 있게 해줄게". 사실 그럴 능력도, 형편도 안됐으나 결혼하고 싶어서 거짓말 했다. 아내도 알았을 것이다. 알면서 속아줬다. 



                                                                                           

사람은 누구나 양면이 있다. 오베처럼 장단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누군가는 나의 면면을 싫어하겠지만 누군가는 좋게 봐주고 아껴줄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하게 된다. 그런데 특히 결혼까지 이르게 됐다면. 평생을 함께 하기로 했다면. 이 지점에서 잊지 말아야할 사실이 있다. 어쩌면 배우자니까,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날 더 좋게 봐주고 있을 거란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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