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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재 Aug 21. 2019

결혼하면 정말 어른이 될까?

데미안과 싱클레어

                                                                                                          

중학교 시절 A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소위 말하는 일진이었다. 오토바이를 탔고, 담배를 피웠다. 나와 A는 같은 독서실을 썼다. A의 부모님이 내가 반에서 1-2등을 한다는 이유로 같은 독서실을 끊어서 강제로 다니게 했다. 그러나 그는 일진이었다. A는 정작 독서실엔 잘 안들어왔다. 독서실 앞 놀이터 모래바닥에만 A가 피우다 버린 꽁초들이 송송, 꽂혀있었다. 

하루는 머리 식히러 놀이터에 나갔는데 A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놀라지 않은척 자연스레 대화를 나눴다. 몇 번의 문답이 오가며 A가 '그래도 공부의 끈을 놓으면 안되는데'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 역시 '잘 나가는' 친구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우린 서로를 부러워했다. A와 나는 금방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A와 나는 동대문에 옷 쇼핑을 같이 가기로 했다. A가 유행하는 옷을 골라주겠다고 했다. "일요일에 보자". 우리는 5만원 씩 준비해 가기로 했다. 그 주 토요일. A가 죽었다. A를 비롯한 다른 일진 친구 2명도 죽었다. 쇼바를 한껏 올린 한 오토바이에 3명이 옹겨붙어 타다가 트럭에 받혔다고 했다. 하필 옷 사러가기 하루 전날의 일이었다.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한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

시간의 선후 문제인지, 인과의 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나는 분명히 그 뒤로 달라졌다. '일진은 멋있다'는 둥 허세에 관한 내 미숙한 관념 속 테라코타들이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나는 싱클레어였고 A는 데미안이었다. A는 죽어서 데미안이 됐다.



                                                                                                       

사람은 어떤 계기를 거쳐야 비로소 알을 깨고 나오게 되는걸까?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사람마다 케바케(case-by-case)라지만, 옛날에는 사회적으로 공히 인정받는 계기가 따로 있었다고 한다. "결혼"이 그 답이다. 관혼상제, 그 중에서도 혼례를 하면 어른이 됐다고 본 것이다.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사람도 혼례를 치르면 어른으로 대접했다. 

묻자. 그럼 결혼을 하면 정말 어른이 될까? 비혼이 대세인 지금 조상들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으나, 결혼이 인생의 큰 변곡점이 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분명하다. 아마 조상들도 그런 이유에서 혼례를 높게 쳤을 것이다. 결혼은 다른 인생을 살아온 한 사람과 "서로 포용하며" 산다는 사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역설적으로 '포기(배려)하기'를 강요한다. ‘시댁-처가댁은 얼마나 자주 방문해야할지’ ‘밥은 마주보고 먹을지, 나란히 앉아 먹을지’ 등의 엮인 문제부터, ‘앞으로 한 가지 직업만 갖고 살 것인지’,  ‘가욋돈을 어디에 투자할지’ 등 이전엔 나만 선택하면 되는 문제였던 것에서도 나는 나의 선택만을 고집할 수 없었다. 결혼 생활이 큰 변곡점이 되는 건 그전에 해본적없는 '포기(배려)'를 '매일같이' 해야해서다.


                                                                                                             

그런 맥락에서 결혼은 어른이 되는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원래는 그 반대여야 한다. 어른이 되서, 내가 타인(배우자)을 위해 기꺼이 내 선택을 '배려'할 수 있게 될 때, 결혼(해야)한다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실은 다르다. 완벽히 어른이 된 상태에서 결혼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부부싸움을 하고, 여전히 어른아이로 남는다. 어른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도 많이들 결혼한다는 사실은 나같은 평범한 이를 위안삼게 만든다. 지금은 어른아이인 나도, 결혼 생활을 거쳐가며 어른이 될지 모르는 거니까.

  결혼하면 어른이 된다는 말은 인과의 문제일수도, 단순 시간 선후의 문제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배려하는 법을 배워하는 과정 속에서 모든 부부가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있는 데미안'이 돼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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