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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재 Aug 25. 2019

처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셨다.

할머니는 아내를 키우신 분이다.

                                                                                               

최근 장모님으로부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처할머니(아내의 외할머니, 이하 '할머님')가 치매에 걸리셨다는 소식이었다. 나이 탓에 무릎이나 관절이 안 좋으신건 알았어도 치매 증상이 있으신 줄은 몰랐다. 아내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할머님은 현재 맏딸인 장모님과 함께 살고 계신다)


처가댁은 부산, 신혼집은 서울. 멀리사는 나는 몰랐지만 조짐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장모님 말씀을 들어보면 할머님은 자꾸 돈을 잃어버렸고, 길도, 방금 보신 드라마 내용도 잊어버렸다고 했다. 이정도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 간간히 있을 수 있는 수준의 일로 보였다.
그런데 며칠 전, 할머님이 주무시다가 말고 일어나서 허겁지겁 밥을 드셨다고 한다. 할머님은 놀라서 일어난 장모님에게 "오늘 밥을 안 먹었더니.. 배가 고파서 그랬다"라고 하셨다. 치매의 결정적 증거가 배고픔, 배부름과 같은 신체 상 생리적 반응까지 잊는 것이라고 한다.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아내는 할머니를 특별하게 생각한다. 할머니가 아내를 키워주셨기 때문이다. 외환금융위기(IMF)가 우리나라를 덮쳤던 시절, 처가댁도 세파의 영향을 받았다. 맞벌이가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때다. 초등학생 아내를 할머니가 입히고, 가르치고, 재웠다. 밥도 아침저녁으로 '할머니 밥'을 먹었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을 할머니와 붙어 살았다. 그 흔적은 진하다. 아내가 제일 잘하는 요리는 닭볶음탕이다. 할머니가 닭볶음탕을 잘하시기 때문이다.

아내는 소식을 듣고 얼마 안돼 부산으로 내려갔다. 할머님은 큰손녀(아내)와 막내딸(아내의 이모)을 구분하지 못했다. 아내가 내 이야기를 하자, "남자친구랑 결혼하고 싶느냐. 왜 자꾸 남편이라고 하느냐"라고 하시기도 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아내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내는 내 앞에 와서도 엉엉 울었다.


                                                                                                              

나도 아내의 마음을 어렴풋이 안다. 내 외할머니도 치매로 고생하셨다. 엄마는 그런 외할머니를 안타까워하면서도 버거워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언제 한 번 외할머니가 콘푸로스트를 물에 말아주셨는데, 그걸 그냥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물과 우유를 헷갈리신거냐고 물을 수 없었다. 내 역할은 그 정도였다. 

아내가 내려간 날, 장모님을 비롯한 할머님의 아들 딸들은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장인장모님께서 아직 맞벌이신 탓에 할머님 혼자 계실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60대 문턱에 들어선 장모님 입장에서도 할머님의 존재가 버거웠으리라. 아내는 반대했지만 발언권이 없었다. 누가 "그럼 네가 서울로 모셔가서 살기라도 할거냐"고 묻는다면 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 때문에라도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설은 처가댁에서 할머님을 뵐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부산에 내려가면 나보다 하루 이틀은 꼭 더 머무르다 오곤 했다. 할머님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도 아내를 며칠 더 두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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