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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재 Aug 25. 2019

금수저들의 연애, "내 장난감 말고 나를 좀 봐줘"

장난감을 줬다 뺏는 심리

                                                                                                              

토니 모리슨은 흑인문학의 대모(代母)다. 1993년 흑인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소설 '술라'에서 인간의 오묘한 심리를 설명한다. 이른바 '장난감을 줬다 뺏는 심리'다. (엄밀히 말하자면 철학자 강신주가 '술라'에 관해 쓴 서평에서 재구성된 개념)

                                                                                          

"한 아이가 유치원에서 친구를 사귀게  된다. 이내 속으로 좋아하게 된다. 아이는 친구도 자길 좋아했으면하는 마음에 장난감을 선물한다. 예상대로 친구는 기뻐한다. 하지만 무슨일인지, 아이는 장난감을 도로 뺏어버리고만다. 친구가 자기가 아니라 장난감에 온 신경을 쏟자 화가 난 것이다. '장난감을 준 나'를 좋아하길 바랐는데, 정작 장난감에 집중하자 아이는 장난감도, 친구도 내던졌다."  

-철학자 강신주가 쓴 '술라' 서평 중

'장뺏심(장난감을 줬다 뺏는 심리)'은 사람의 모순된 감정 흐름을 짚는다. 장난감을 매개로 친구를 꼬셨으면서도 '장난감 말고 날 좀 쳐다보란 말이야'라고 외친다. 그러다 자기를 안 쳐다봐주면 줬던 장난감도, 마음도 회수한다. 치기 어린 아이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다 큰 어른 안에도 '장뺏심'은 존재한다. 장난감이 돈, 집안 과 같은 냉정한 현실수단으로 바뀔 뿐이다.



                                                                                                              

실제 사례를 봐보자. A는 금수저다. A의 아버지는 유능한 사업가다. 한창일 때 그 분이 연 100억을 벌었다는 얘기는 설화적이다. A 스스로도 돈을 버는 재주가 뛰어나다. 스타트업을 차렸는데 요즘 성황이다.

B는 다른 면에서 위세가 높은 아버지를 뒀다. B의 아버지는 국립대학 교수다. 그냥 교수가 아니라 자기 분야의 권위자다. 어머님 역시 교수이며 친척 중엔 정부 부처 고위직을 지낸 분도 있다. B는 그 면면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그렇게 상세히 말하지 않았으면 주변인이 B의 친척 직위까지 알 수는 없다. B 스스로도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특목고를 졸업했고 대학도 학부 수석으로 입학했다. 

                                                                                                          

A의 장난감은 돈, B의 장난감은 집안으로 요약된다. A와 B는 공통적으로 연애를 자주했다.  A는 그래도 양반이다. 상대를 가려 만나진 않았다. 사귈땐 한 사람만 봤고, 시작과 끝맺음이 명확했다. A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다. A는 "나는 상대방이 뭘 기대하는 눈치만 보이기만 하면 그냥 다 사줬다. '돈도 많으면서..'라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더라"고 했다.(A는 사실 모든 대인관계를 같은 맥락에서 힘들어했다. 하지만 여기선 연애 이야기에 국한한다)

B는 좀 속물이었다. 자기와 급이 비슷한 상대만 찾았다. 스스로 엘리트코스를 밟으면서도 집안도 좋은 여자여야 했다. 한 번은 자기보다 '급이 높은'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그땐 '우리 부모님은 왜 더 잘나지 못했나'며 부모 탓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결정적으로 B의 인생이 달라지는 지점이 왔다. B의 아버지가 이전 정부에서 장관급 자리 후보에 올랐는데 논문표절 시비가 불거지면서 낙마한 것이다. B는 이후 위세를 부리지 못했다. 결국 연애 뿐 아니라 대인관계를 점차 끊어갔다.


                                                                                                              

B는 장난감을 잃었다. B 스스로 대인관계의 기준을 잃어버린 장난감에 둔 탓에 그는 더 이상 연애하지 못한다. A는 아직 장난감을 갖고 있지만 '장뺏심'에 괴로워한다.

현실과 동떨어져보이는 금수저들의 연애. 하지만 이는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다. 우리는 누구나 상대적으로 금수저이면서 흙수저다. 연애 얘기할 때 "그래도 내가 아깝지" 라고 말하는 것과 결혼할때 '혼수로 얼마' '신혼집이 얼마' 하며 대결하는 얘기는 사실 다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우리의 장난감은 좋으면 얼마나 좋은 장난감인걸까. 만약 좋다한들, 우리는 정말 '장뺏심'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결혼은 장난이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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