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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재 Mar 27. 2021

어디서 살 것인가

프로 자취러 아내의 방랑기

아내는 프로 자취러였다. 본가는 부산인데 학교와 직장을 서울에서 다녔다.


첫 자취방은 고속터미널역 근처 고시원이었다. 재수생 시절 강남대성에 유학하기 위해 얻은 방이었다. 고시원은 어린 나이에 상경한 학생에게 견디기 버거운 외로움을 느끼게 했다. 근처 먹을만한 곳도 고작 고시원 앞 설렁탕집뿐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날 잡아 삼겹살을 먹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고 한다. 어느 주말, 아내는 고기를 굽다 말고 짐을 쌌다. 그 길로 엄마(장모님)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두 번째 자취방은 창천동의 원룸이었다. 스무 살의 아내가 재수 끝에 붙은 학교 앞이었다. 낮엔 그러려니 했는데 밤이면 괜히 기차소리가 서글프게 느껴졌다. 무슨 일인지 기찻길 옆에서 목놓아 우는 사람, 술 먹고 토하는 사람 등등 낭인들도 많았다. 얼마 안 가 대신동으로 집을 옮겼다.


옮겨간 하숙방은 밥도 잘 주고 분위기가 정겹긴 했으나 간섭이 과했던 곳이었다. 특히 '여자는 늦게 돌아다니면 안 된다'느니 '여자는 무슨무슨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느니' 등 전근대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간섭이 많았다. 자취살이에 하숙 아줌마의 간섭이 웬 말이냐. 곧 떠날 수밖에 없었다.

20대 중반에는 연희동에 살았다. 올라가는 길이 험한 동네였다. 그래도 아내는 이 집을 제일 좋아했다. 거기서 방을 몇 번이고 두를 맥주를 마셨다. 나(글쓴이)도 매일 그 언덕을 헉헉대며 넘었다. 이케아에서 책상을 사 왔고 커튼을 달았다. 부모님께 무슨 말을 했던 건지, 나는 본가 Tv  중 하나를 뜯어와 연희동 집에 설치하기도 했다.

20대 후반, 아내가 취업을 하고 나서는 투룸으로 옮겼다. 시설 자체도 깔끔하고 주변이 한산한 곳이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내는 밤에 아무도 없는 자취방을 보다가 알게 됐다고 한다. 이젠 자취방을 떠날 때가 됐다는 것을.


결혼했다. 나는 남편이 됐다. 신혼집은 종로에 마련했다. 아내는 서울살이 처음으로 신촌을 떠났다. 여전히 집은 좁았다. 둘이 복작거리니 더욱 좁게 느껴졌다. 대신 사는 재미가 있었다. 밤마다 인왕산 산책로를 걸었다. 싸울 때도 종종 있었지만 잠은 집에서 잤다.

한 시기가 지났다. 지난 17일, 신촌으로 이사했다. 결혼생활 4년 만에 두 번째 집이다. 아내는 "신촌의 많은 집에 살았지만 이게 내 첫 번째 집"이라고 했다.

어디서 살든 주거 환경이 어떻든, 우린 여전히 전세고, 또 한 시기가 지내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어차피 이번 생은 떠돌이 인생일 수밖에 없다. 어디서 살 것인가

아니 결국 누구랑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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