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미디어에서 들려오는 우파 중심의 정치, 민족주의, 인종차별은 재난과 다른 심리적 트라우마를 유발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국경을 닫고, 인종 간의 구분도 확실하게 하며 그 트라우마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일본에서도 역시 동일본 대지진 이후 불안한 사회 분위기가 스며들면서 일본 자국민들의 트라우마적인 외국인 혐오와 자국민만을 생각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종차별이 등장한다. 다나카는 일본 내부에 퍼지고 있는 동시대 사회 문제 중, 최근 들어 더욱 극심해진 자이니치 코리안에 대한 일본 자국민의 혐오 발언에 집중한다.
자이니치 코리안은 식민지배로 인해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살고있는 사람들과 그 후세를 뜻하는 용어이다. 자이니치 코리안은 명확한 정체성을 규정받지 못한 채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 자신을 스스로도 규정할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형태일까?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역사는 어떨까? 이 질문에 다나카는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 전시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는 2017년 도쿄와 도쿄 인근에서 9일 동안 촬영되었다. 작가인 다나카 고키는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일기처럼 기록을 남겼고 그 글의 도입부로 작업의 배경과 의도를 설명한다. 작업의 주요 내용은 자이니치 코리안 3세인 우희와 일본계 스위스인인 크리스티앙 두 사람이 도쿄와 그 인근 특정 장소를 방문하고 이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전시는 입구에 영상을 시작으로 총 다섯 개의 챕터와 부록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된다. 전시장 초입에는 자이니치 코리안인 우희와 일본계 스위스인인 크리스티앙이 주고 받은 편지 그리고 그들의 유년 시절을 담은 비디오가 재생된다. 편지와 영상으로 두 주인공의 유년 시절을 따라가면 혼돈과 모호함의 연속인 삶임을 알 수 있다. 우희는 자신 이전 세대가 어떻게 일본에 정착했는지를 시작으로 고통스러웠던 윗세대의 삶을 편지로 담담히 전달한다. 크리스티앙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국적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유럽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위치가 오히려 크리스티앙의 삶을 더 자유롭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여 불분명한 정체성을 흘러가듯 내버려둔다. 두 사람은 언뜻 보기에 비슷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우희와 크리스티앙이 삶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느끼는 크기는 꽤나 큰 차이를 보이며, 이러한 태도의 차이는 이후 이어지는 영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관람객은 일본의 공원에서 「모든 형태의 인종 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을 읽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으며, 평화로운 식당에 앉아 두 사람이 자신들의 나라에서 경험한 헤이트스피치의 형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우희와 크리스티앙이 단둘이만 하던 대화의 폭을 확장하여 관동 일본 대지진 후 발생한 한국인 대학살의 진실을 밝히고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시민 단체 호우센카(ほうせん-か)에 찾아가 아카이빙된 자료를 보며 일본이 자행한 한국인 대학살의 진실을 파악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트라우마의 기억을 담은 아카이브는 피부 위에 바로 절개의 흔적을 남기고, 한 세대보다 더 많은 흔적을 남긴다라는 데리다의 말처럼 이들이 경험한 트라우마적 아카이브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 속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더 깊은 흔적을 남긴다.
밤이 되면 우희와 크리스티앙은 차를 타고 아무도 없는 벌판으로 간다. 두 사람은 차 안에서 역시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나누지만, 이제는 개인적으로 경험한 헤이트 스피치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시작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부분에서 우희와 크리스티앙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우희는 자신이 경험한 헤이트 스피치를 말하며 끊임없이 머뭇거리고 당시 느낀 혼란스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마치 자신의 복잡한 정체성과 어우러진 삶을 명확히 말하기 어려운 듯 우희의 말에는 정지의 순간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반면 크리스티앙은 자신이 겪은 헤이트 스피치를 담담하게 말하며 오히려 이는 유럽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현상 중 하나라는 태도로 접근한다. 크리스티앙은 자신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제 3자가 관찰한 것처럼 큰 관점으로 헤이트 스피치를 언급하는데 이러한 지점이 공통된 문제임에도 복잡하고 다양한 맥락으로 해석되고 이를 다층적인 관점으로 이해해야 하는 순간으로 느껴진다.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 작업은 밝히기 어려운 한 사람의 개인적인 역사에 집중하는데, 이는 마치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진다. 영상 속 우희와 크리스티앙의 과거와 현재는 끊임없이 교차하고 그들의 삶과 연관이 없는 또 다른 차별이 현재에 개입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개인의 삶 내부와 외부를 넘나들며 다나카는 새로운 공론장의 형태로 차별과 단절된 사회 그리고 개인의 트라우마를 보여주고 있다.
우희와 크리스티앙이 경험한 차별과 혐오 발언과 같이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적 요소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기에 더욱 큰 상처를 남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끊임없이 잘못된 지점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다나카가 말한 불안한 사회 속 공동체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휴머니즘의 형태일 것이다.
히토 슈타이얼은 『진실의 색- 미술 분야의 다큐멘터리즘』에서 다큐멘터리의 리얼리즘은 영상의 흐릿함에서 나온다고 말하지만, 다나카의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는 그 무엇보다 선명하고 명확한 색상으로 우희와 크리스티앙의 삶 속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다나카는 영상을 편집하고 이를 전시 공간에서 해체하면서 모두가 동일하게 경험하지 못한 진실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한다. 결국 다나카는 참여하는 사람에게도 트라우마를 전달하며 관람객이 직면하고 있는 이 문제가 우희와 크리스티앙 개인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가 될 수 도 있음을 그리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동일한 노력을 해야함을 전달한다고 볼 수 있다.
전시의 마지막 챕터인 부록에서 우희와 크리스티앙은 자신을 관찰하는 카메라에서 해방되어 그들이 원하는 도쿄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자유로운 서로의 모습을 촬영한다. 자유로운 두 사람의 모습처럼 아픔을 가진 모두가 트라우마에서 해방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 삶의 모습을 실현할 때 다나카가 강조한 휴머니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