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멘토를 찾아가라
내가 만난 명동 부자의 습관
(H) 사장은 어린 시절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군 복무가 끝나면 가계에 보탬이 돼야겠다고 생각하고 제대할 무렵 어려운 집안 사정을 생각하며 당시 제일 큰 중부시장을 무턱대고 찾아갔다. 어린 나이지만 시장에서 몇 시간 지켜본 결과 시장에 활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 남대문시장을 가보라고 했고, 그렇게 남대문시장으로 발걸음 한 것이 삶의 첫 전환점이었다. 남대문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기가 막히게 장사를 하는 장사꾼들에 푹 빠졌다. H사장 역시 “나도 저런 장사꾼이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군 생활 당시 보직이 좋은 편이라, 장군들을 옆에서 볼 기회가 많았고 그들을 보며 무슨 일을 하더라도 꼭대기에 올라가야 인정받는다고 생각했다. 생동감 넘치는 남대문시장에서 지나는 상인을 붙잡고 ’ 여기서 누가 제일 잘 나가느냐 ‘ 물어보았다. 상인들이 한결같이 김복남이라고 하기에 무턱대고 찾아가 “장사를 배우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김복남 사장은 (H) 사장의 의지와 순수함에 반해 당장 나오라 했다. 다음 날 고향에 내려가 인사를 드리고선 모친께서 쥐여주신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받아 들고 남대문에 입성했다.
20대 중반 이렇게 남대문 노점 생활이 시작되었다. 남대문에서는 안 파는 물건이 없었고 김복남 사장 옆을 지키며 수개월간 장사를 배웠다. 하나둘 모여들어 장사를 배우던 다른 사람들은 리어카 한 대씩을 차고 점점 독립하기 시작했고 리어카를 끌고 나가 장사를 해보고 싶었던 터라 (H) 사장도 과감히 리어카를 한 대 내어달라 했다. 다음 날 나와보니 리어카 한 대가 준비되어 있었고 김복남 사장은 길 건너 가보라고 했다. 그곳이 현재의 명동이다.
(H) 사장은 거기가 명동인 줄조차 몰랐다. 1984년 당시 하루 5천 원을 받고 일했는데 명동으로 넘어가니 하루에 7만 원을 벌었다. 명동이라는 곳이 대단한 곳이구나 싶었고 그렇게 명동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후로도 노점상을 3년간 더 했고 이후 명동 뒷골목에 신발가게를 내었다. 하루에 수백만 원의 매출이 일어났다. 다음으로 팔게 된 아이템은 의류였고, 6개 의류 매장을 운영했다. 카드가 없던 시절이라 많은 현금이 들어왔고, 은행에서 산폐기를 3개씩이나 갖다 주기도 했다.
(H) 사장은 노점상에서 신발, 신발에서 옷으로 과감히 아이템을 바꾸어 나갔다. 이렇게 사업을 확장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밑바닥부터 시작한 체력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H) 사장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하지만 옷이 불티나게 팔리던 2000년 명동의 중심에 밀리오레라고 하는 거대 쇼핑몰이 생겼다. 소비자가 밀리오레로 발걸음을 옮겼고 명동 매출이 30퍼센트씩이나 감소했다. 30퍼센트가 마진이었는데 그 마진이 없어져 버렸다. 다른 판로를 찾던 중 그동안 판매된 옷을 분석해 가장 많이 팔린 니트에 집중했다. 그렇게 동대문에서 니트 장사를 시작했고 니트에서만큼은 최고가 되었다.
니트가 하루 저녁에 만 삼 천장씩 팔렸다, 팔천 원씩 남는다고 하면 하루 저녁에 일억이 남는 셈이다. 반품을 3천 장 한다 하더라도 6천만 원의 이익이 남았다. 하루 저녁 들어오는 현금 장사에 매료되어 명동에서 시작되는 화장품 붐을 놓치기도 했다. (H) 사장의 의류 매장은 모두 좋은 입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화장품을 했더라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도 있었지만, 의류사업도 열심히 했기에 후회는 없다. 교복 자율화로 명동 의류 같은 잡화점이 십여 년간 좋은 시절을 누렸다. 그 시절이 끝날 무렵 화장품이 뜨기 시작했고 명동의 최고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명동 임차료가 가장 많이 오르고, 건물값도 오르며 자산가치 역시 상승했다.
(H) 사장이 명동에 처음 들어오던 1980년대 초반 리어카 한 대가 전 재산이었다. 밑바닥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죽기 살기로 돈을 벌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남대문의 최고 장사꾼을 스승으로 삼았고, (H) 역시 최고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현재 명동 관광특구 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명동 발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시골에서 올라왔어요. 그러다 보니 죽기 살기로 했죠. 처음에는 살 집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집을 샀고, 한 채는 안 될 것 같아 두 채 샀어요, 그렇게 늘려나갔죠. 가져갈 것도 아닌데, 그때는 그래야만 주류사회에 선 것 같았어요.” 리어카가 보관되어 있던 장소가 현재 (H) 사장이 사는 아파트 자리였다.
그곳은 현재 신세계 백화점 본점 건너편 우리은행 본점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다. 은행 옆에는 520년 된 은행나무가 그동안이 세월을 기억하며 묵묵히 자리 잡고 있다. 60년대 도시개발과정에서 지어진 아파트와 낡고 허물어져가는 주택 사이로 고급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지어진 아파트 중 하나인 제2 시범 아파트와 초고층 아파트의 묘한 조합을 이루는 이 지역이 당시 리어카를 보관하곤 하던 장소였다. 리어카를 보관하던 장소에서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H) 사장이 리어카를 끌고 가서 장사했던 곳에 현재의 사무실도 있다. “인생은 그렇게 돌고 도는 건가 봐요. 그래서 항상 바른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요. 모사를 꾸미거나, 싸우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스스로 바른생활 책이라 생각하며 성실하게 최고를 향해 일한 결과 현재의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장사를 잘하기 위해선 고수에게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시행착오를 줄여 단숨에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하고 좋은 스승을 만나면 소프트 랜딩이 가능하다. 고수를 만나 바닥에서부터 장사를 배워 성공한 명동 부자가 바로 (H) 사장이다.
흔히 지혜롭고 믿을 수 있는 스승을 ‘멘토’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 속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조언자 멘토르(MENTOR)에서 유래된 말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며 아들의 교육을 친구인 멘토르에게 부탁했다. 멘토르가 친구처럼, 선생처럼, 아버지처럼 이끌어 주어 아들은 잘 성장했다. 이후로 멘토르라는 이름은 ’ 좋은 ‘, ’ 지혜로운 ‘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누구든 새로운 일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두려운 법이다. 그때 멘토를 찾아 배우는 것은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H) 사장 역시 군 제대 당시 맨땅에 헤딩하듯 무작정 남대문으로 발걸음 했지만, 남대문시장의 제일 장사꾼을 멘토로 삼았다. 멘토 아래에서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배운 덕분에 명동 최고 부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좋은 멘토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 선수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축구 선수이다. 손흥민 선수의 경우 가장 가까이에서 이끌어 주었던 아버지 손웅정의 가르침이 있었다. 덕분에 뛰어난 재능에 흔들리지 않는 실력까지 겸비할 수 있었다. 축구 선수 출신의 아버지는 ‘즐기는 축구’를 모토로 자식을 이끌었으며, 손흥민 선수 역시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아버지를 멘토로 삼아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기업체에 입사한 신입사원의 경우, 입사 초기, 업무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역할을 해내기에 역부족이다. 기업체에서는 신입 사원이 소프트랜딩 하여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업무 성적이 우수하고 평판이 뛰어난 선배 직원을 멘토로 지정하여 이끌어 주는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꼭 제도적인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주변을 돌아보면 나보다 능력이 뛰어나거나,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처음부터 당연히 잘할 수 없으니 그들을 멘토로 정하자. 나에게 노하우를 전해 줄 멘토를 주변에서 찾아야 한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일 잘하는 선배를 제대로 모시며 배우자. 내 일조차 잘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사업에 뛰어든다고 잘 해 낼 리 만무하다.
발품 역시 팔아야 한다. 요즘은 SNS 강의도 잘 되어있고 정보는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얻을 수 있다. 업계 유명 인물 혹은 강사의 강연을 들어볼 기회도 많다. 조금의 관심만 기울이면 들어볼 수 있는 강연의 기회는 널려 있다. 심지어 나에게 맞는 좋은 멘토를 찾아주는 서비스까지 생겼을 지경이니 말이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의 경우 정기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TED TALKS를 진행하고 있다. 초대되는 강연자들은 각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룬 사람으로 소위 각 업계 고수의 강연을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열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좋은 강연이 카테고리별로 잘 분류되어 있으며 영어공부까지 자연스레 겸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까.
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고수를 찾거나 내가 원하는 분야의 멘토를 찾는 앱도 많다. 앱 검색 프로그램에서 ‘멘토’, ‘고수’라는 검색어를 넣어 보기만 하면 된다. ‘브런치’ 앱에서도 현업에서 일을 하며 글을 쓰는 고수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지 않은가.
책 역시 좋은 선생님이다. 책은 우리가 가장 간과하기 쉬우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는 도구이다. 배워보고 싶은 업무, 알고 싶은 지식이 있다면 관련 책을 열 권만 읽으면 된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읽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짬은 생각보다 많다. TV 보는 시간, 핸드폰을 들고 만지작거리는 시간, 출퇴근 시간을 조금씩만 활용해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창업을 생각한다면 밑바닥부터 제대로 배우자. 바닥부터 제대로 배울 각오를 해야 한다. (H) 사장이 남대문에서 리어카를 끌며 바닥부터 시작했듯이 말이다. 힘들 것으로 생각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해 어렵고 힘들게 여겨지는 일을 피하면 안 된다. 잃을 것이 없다는 각오로 뛰어들어야만 명동 부자처럼 성공할 수 있다.
(사진출처.이글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