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치다 보면 본인 의도와 다르게 엉망진창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슬기롭게 이겨내는 방법들은 없을까. 있어도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백지가 되어버린다. 티샷이 레이디 근처에 떨어진다. 오늘은 용케 동반자 중에 레이디 한 분이 계시다. "치마 입고 와. 그럼 레이디 첫 샷으로 인정해 줄게"
얼마나 많은 굴육을 견뎠던가? 쪼루난 것도 억울한데 온갖 핍박을 견디며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티샷을 잃어버릴지라도
만일 내가 쪼루가 난다면
레이디 티에서 레깅스를 입겠다.
그녀들 앞에서도 쪼루가 난다면
시니어 티에서 지팡이를 들겠다.
그래도 또 쪼루가 난다면
난 18홀 내내 춤을 추겠다
나를 불러준 대자연에 감사하며
노래하고 춤을 추며 그래도 골프를
사랑할 것이다
그래, 티샷을 잃어버렸을지라도
나를 사랑하고 대자연에 겸손하겠다
나는 춤을 추며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티샷이 죽는 게 오히려 더 좋을 때가 있다. 특별티라 부르는 순간 이동은 오히려 전화위복을 만들어준다. 쪼루는 바로 앞에 떨어지는 민망함, 뒷팀들이 티그라운드에서 쳐다보고 있을 때. 아, 부끄럽다. 마치 난 레이디 티에서 첫 샷을 하는 것처럼 연기해야 한다. 나는 레깅스를 입는 걸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
좀 더 나간다면 시니어 티지만 그곳도 별 볼 일 없다. 부끄럽기는 매한가지다. 이겨내고 보기를 막아보겠다는 생각은 또 한 번 볼 대가리 꿀밤을 치고 만다. 첫 티샷이 정말 중요하다. 꼬이기 시작하는 건 스윙과 머릿속 플레이뿐만 아니다. 다른 생각을 하지 말자. 거리가 짧아도 그린까지 충분히 갈 수 있다. 아기들이 아장아장 걷고 땅따먹기 하듯 앞으로만 가면 된다.
아, 우드를 쳐볼까. 괜한 드라이버 탓을 하면서 우드 티샷으로 바꾸지만 또 또 결과는 뻔하다.
포기는 아니지만 대자연에 감사하며 명량골프로 전환한다. 춤을 추며 아무렇지도 않다고 노래한다. 부글 부를 끓는 속을 잠재우려 더 신나게 놀아본다. 어쩌겠나. 내 탓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