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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과 촌장 Oct 05. 2021

03 텃밭 상추만 먹고 살 거니?

1부시골 판타지, 당신이 꿈꾸는 시골은 없다

도시에서는 꿈쩍거리면 돈이다. 돈 쓸 일도 많고 돈 쓸 데도 널렸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살면 돈 들 일이 별로 없지 않아요? 텃밭에 상추며 오이며 심어 놓으면 저절로 자라는데 마트 갈 일도 없을 거고, 비싼 옷 차려입고 나갈 일이 있나, 물가도 도시보다 훨씬 쌀 테고…….”     



일 년 내내 텃밭 상추만 먹을 게 아니라면


시골살이에 대한 도시 사람들의 착각 중 가장 큰 착각은 시골에서 살면 식비가 적게 들 거라는 것. 언젠가 친구가 ‘시골 살면 텃밭에 뭐도 심고 뭐도 키우고……’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길래 한마디로 정리해 줬다. “일 년 내내 풀만 먹고 살 거니?” 


정확히 말하면 ‘일 년 내내’도 아니다. 따로 하우스 시설을 만들 게 아니라면 텃밭에서 나는 채소는 늦은 봄부터 이른 가을 정도까지만 수확할 수 있으니 딱 반년 정도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를 먹을 수 있다. 뭐, 그 정도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채소를 부지런히 썰어서 말려 둬야지, 저절로 자연주의를 실천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하면서.


텃밭에 뭔가를 심어 보려고 봄날 시골 장터에 가서는 기분이 더 좋아질 수도 있겠다. 상추, 깻잎, 오이, 애호박, 고추, 당근, 파프리카, 가지, 대파, 쪽파, 양배추, 강낭콩, 옥수수, 브로콜리……. 심으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혹은 처음 들어본 채소 모종까지 온갖 채소 모종을 팔고 있으니 이것도 심으면 좋을 것 같고 저것도 심으면 될 것 같다. 모종 서너 개 정도만 사 가야지 했다가 어느새 열 가지 종류가 넘는 모종을 사 들고 집에 가게 되고, 집에 가 모종을 쫙 늘어놓고서는 이 모종이 무슨 모종인지도 헷갈려 하다가 ‘아유, 심어만 놓아도 어디야? 이 정도만 있어도 마트 갈 일이 없겠네.’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배가 부르다.


기대했던 대로 아마 상추는 원 없이 먹을 수 있을 거다. 원 없이 먹을 정도가 아니라 너무 잘 자라서 처치 곤란이 될 가능성이 많다. 내가 먹는 속도보다 상추가 자라는 속도가 더 빠르다. 이참에 동네 어른들한테 이야기도 건넬 겸 상추를 뜯어서 가야지 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옆집 할머니가 상추를 수북하게 담은 대야를 현관문 앞에 내려놓을 것이다. “상추 좀 맛 보라고! 웃자라기 전에 좀 뜯었어!”


풋고추도 오이고추도 청량고추도 따 먹기 바쁘게 주렁주렁 잘 자란다. 처음에는 쌈장에 그냥 찍어 먹기만 해도 맛있다. 밭에서 금방 따서 먹으면 맛도 향도 다르다. 역시! 이 맛있는 고추를 쌈장에 찍어 먹기만 하는 건 아까우니 장아찌를 담기 시작한다. 그래도 고추가 남는다. 놀러 온 친구한테 한 봉지 가득 담아 건네도 남는다.


방울토마토도 조롱조롱 달리고, 오이도 가지도 호박도 지금껏 마트에서 사 먹었던 것과 다르게 일자로 곧게 자라지 않고 제 맘대로 휙휙 구부러진 모양으로 자란다. 기분이 좋다.      





아이고그냥 사 먹고 말지!


그런데 이건 텃밭 농사가 아주 정말 많이 잘됐을 때 말이다. 나도 배부르게 먹고 남에게 푸짐하게 나눠 줄 정도로 텃밭 채소를 지으려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모종보다 더 빨리 자라는 잡초를 뽑아 줘야 하고, 고추며 방울토마토며 호박이며 지지대를 세워 줘야 하고, 제때 잎도 솎아 줘야 한다. 조그마한 텃밭 농사인데 우습게 봤다간 제대로 큰코다치게 된다. 멀칭(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땅을 짚이나 비닐 따위로 덮는 일)이 뭔지 모른 채, 혹은 알고 있더라도 텃밭 농사에 무슨 멀칭씩이나 하냐고 하면서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가 잡초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잡초, 네가 이겼다!


제대로 텃밭에서 채소를 키워 먹으려면 일주일에 몇 번으로는 안 된다. 날마다 한두 시간씩 들여다봐야 한다. 말이 한두 시간이지 그거 정말 쉽지 않다! 쪼그리고 앉아서 십 분만 일하고 나면 ‘아이고, 그냥 사 먹고 말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시간 들이고 몸 아파가며 텃밭 채소 키워서 그것만으로 식재료가 다 해결이 된다면야 그래도 해볼 만하다. 시골 살면 식비가 줄 거라고 아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본인이 자주 먹는 음식 중에서 텃밭에서 내가 직접 키워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엑셀 표에 정리를 한번 해 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주식인 쌀부터 시작해서 쌀보다 더 많이 먹기도 하는 빵, 빵과 같이 먹어야 하는 우유와 계란, 상추와 같이 먹어야 하는 고기, 고기와 함께 마셔 줘야 하는 술, 고기를 먹고 나서 생각나는 제철 과일 같은 것들을 모두 자급자족할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뿐인가? 입맛은 입맛대로 취향이 생겼고, 식생활은 어느새 서구화되어서 텃밭 채소로 샐러드라도 만들어 먹으려면 치즈며 소스도 있어야 한다. 시골에 살아도 커피도 와인도 먹어야 한다. 


자세히 따져 보면 텃밭 농사를 지어서 식비를 아끼는 건 전체 식비 중 10%도 안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 10%를 아끼기 위해 텃밭농사 열심히 짓다가 몸이 아파 한의원 물리치료 다니다 보면 ‘아니고, 그냥 사 먹고 말지!’ 소리가 다시 터져 나온다.

텃밭 농사 한 해 만에 사람들은 이렇게 큰소리치게 된다. “우리 먹을 만큼만 사 먹는 게 속 편해. 그게 남는 거야.”     



대도시로 장 보러 가는 까닭


시골살이 식비와 관련해 다른 희망을 품는 분들도 있다. 시골은 물가도 쌀 것이고, 식당 음식값도 쌀 것이니 자급자족하지 않더라도 식재료 구입 비용이나 외식비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골 물가가 서울 물가보다 결코 싸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비싸다. 이건 유통 구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식재료나 생필품은 유통이 가격을 결정하는데 우리나라는 모든 유통이 서울로 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구조다. 그래서 딸기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해서 그 지역 마트에서 딸기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국의 딸기가 서울로 올라간 다음에 지역으로 유통이 되기 때문에 딸기 산지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 가장 많이 살고 마트가 많아서 가격 경쟁이 치열한 도시에서 딸기를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 게다가 시골에는 대형마트도 없다. 시골 살면서도 근처 대도시 대형마트에 장보러 가는 사람들, 의외로 많다!      



시골 식당 음식값이 결코 싸지 않아


그렇다면, 외식비는? 자신 있게 말하자면 외식비는 확실히 줄일 수 있다. 왜냐? 미안하지만 맛있는 식당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한 달에 몇 군데나 새로운 음식점이 생기고 차 타고 조금만 나가면 요즘 잘 나간다는 음식점에 갈 수 있지만 시골은 정말 빤하다. 그 지역에서 나름 맛있다고 소문난 곳도 아주 감탄할 만한 수준은 아닌 데다가 그런 곳도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제대로 된 외식을 하려면, 또 근처 대도시로 나가야 한다. 


그래도 음식값은 도시보다 싸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음식값 또한 도시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비싸기도 하다. 왜냐? 경쟁이 심하지 않기 때문에. 면 단위에 짜장면집이 한 군데, 통닭집이 한 군데 있는데 가격이 뭐 중요하겠나 말이다. 비싸든 싸든 맛있든 맛없든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 집까지 배달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 


시골 읍내에는 그래도 국밥집도 몇 개, 숯불갈비집도 여러 개 되니 경쟁이 되어서 가격이 싸겠지 하는 기대도 살짝 접어야 한다. 귀농한 후 식당에 가서 깜짝 놀란 것 한 가지는 가족 단위 손님이 별로 없다는 것. 단체 손님이 대부분이다. 그 단체란 것이 시골 경제와 문화를 굴러가게 하는 핵심인데 무슨 지도자회, 무슨 부녀자회, 이장 모임, 무슨 해 동기 모임, 무슨 작목반 등 한 사람이 네다섯 개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게 기본이다. 시골 식당 음식값이 결코 싸지 않은 이유도 단체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자기 돈을 내지 않는 단체 손님들은 음식값이 좀 비싸도 그냥 사 먹는다. 지금 우리 사는 동네 면 지역에 있는 식당의 된장찌개는 8000원, 읍 지역에 있는 식당의 낙지덮밥은 11,000원이다. 도시에서는 좀 더 싼 곳, 비싸더라도 좀 더 맛있는 곳을 선택할 수 있지만 시골은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다.      



이쯤 되면 반성도 좀 해야 한다. 시골에 살면 식비가 적게 들 거라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을까? 시골 작은 집에서 텃밭에 나물 뜯어서 날마다 고추장에 쓱쓱 밥 비벼 먹는 할머니 생각만 했던 게 아닐까? 나는 할머니처럼 살아 오지도 않았고 그렇게 살 수도 없으면서. 시골에 산다고 해서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욕망이 없어지는 것도 아닐 텐데. 


또한 이미 우리 사회가 너무나 도시화되어서 모든 것이 도시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 것 같다. 도시보다 시골에서 뭔가를 구입하고 소비하는 것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세상을 살고 있는데, 먹는 것도 예외가 아니게 된 거다. 다른 비용은 말할 것도 없다. 땅값, 집값 빼고 시골이 다 더 비싸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시골 생활비 이야기는 “그래도 시골 살면 돈은 별로 안 들잖아요.” 2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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