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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과 촌장 Sep 27. 2021

02 시골은 자연이 아니다

1부시골 판타지, 당신이 꿈꾸는 시골은 없다

시골이 곧 자연이라는 순진한 생각     


귀농이면 어떻고 귀촌이든 어떠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 수 있다면. 맑은 공기 맡으며 멋진 풍경 보면서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니 말이다.  

   

하지만 시골이 곧 자연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순진한 로망이다. 짧게 설명하자면 시골도 시골 나름이고, 요즘 시골은 옛날 시골이 아니며, 도시인들이 좋아할 만한 풍광은 도시에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농사를 짓기 위해 시골살이를 하는 거라면 멋진 풍경에 대한 욕심은 과감히 접어 두어야 한다. 농사짓기 좋은 땅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아니다. 반듯반듯 경지 정리가 잘된 땅에 하염없이 논만 펼쳐져 있거나 빽빽하게 비닐하우스가 모여 있는 곳이 농사짓기 좋은 땅이다. 직접 가 보면 밋밋하기 그지없다.      


요즘은 해 잘 들고 물 끌어 오기 좋은 땅마다 죄다 비닐하우스가 들어차 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지만, 비닐하우스야말로 시골 풍경을 망치는 대표적인 인공 구조물이다. 제주도만 해도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면 비닐하우스가 빼곡하다. 게다가 비닐하우스 농사는 파이프와 비닐을 비롯해 차광막, 솜이불 등 각종 기자재와 폐기물이 많이 나와서 하우스 농사를 많이 하는 시골일수록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     


뭐, 비닐하우스 없이 논만 넓게 펼쳐져 있는 곳에 원두막 하나 세워져 있는 곳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름에 수박 하나 쪼개서 원두막에 앉아 먹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요즘 어느 논밭에도 원두막이 세워져 있는 곳은 없다. 아마 농업박물관에 가면 원두막 구경을 할 수 있을 지도.


요즘 논밭에는 논 한가운데 원두막이 세워져 있는 대신, 논밭 귀퉁이 언저리에 비닐하우스에 차광막을 덮어서 만들어 놓은 시커먼 농막이 서 있거나 직사각형 모양 쇳덩어리 컨테이너 박스가 생뚱맞게 놓여 있을 뿐이다.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아름답지 않다.    

  

왜 낭만적인 원두막 대신 시커멓고 볼품없는 농막 같은 게 있는 거냐고 따지고 싶겠지만, 한여름에 논밭에서 십 분만 일하고 나면 에어컨 따위 없는 원두막에 대한 로망은 단숨에 사라질 거라고 확신한다. 옛날 아주 옛날에 원두막에서 수박 서리하는 동네 꼬마들 감시하기 위해서라도 원두막이 논 한가운데 있어야 했지만, 기계로 다 농사짓는 요즘에 여섯 평 농막 자리 구석에 마련하는 것도 언감생심이란 걸 금방 깨닫게 다.      

    


요즘 시골에는 '흙길'도 잘 없다. '멋진 풍경' 같은 건 도시에 더 많을지 모른다.




축사 없는 땅 찾아 삼만리     


농사짓지 않을 것이니 숨겨진 비경을 찾아 산도 깊고 개천도 구불구불 흘러내리는 골짜기로 들어가면 되지 않겠냐고, 또 쉽게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것 또한 쉽지 않다.

     

텃세도 좀 있다고 하니 마을에서 벗어나 마을 저 위 산 쪽으로 좀 들어가 볼까, 하고 생각하면서 자동차 창문을 열고 천천히 드라이브를 하다가 어디선가 불어오는 구수한 똥 냄새를 맡고 슬그머니 창문을 올리며 "끄응, 이 동네는 쪼금 그렇네." 하면서 얼굴이 약간 찌그러질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 


마을을 좀 벗어났다 싶으면 소 축사가 이어질 것이고, 마을에서 한참 떨어져 길이 가로막힌 곳에서 자동차 핸들을 돌릴 때쯤 꼬끼오하고 닭 울음소리가 들릴 것이다. 양계장은 소 축사보다 허가받기가 더 어려워서 민가와 더 떨어져 있다. 허가받기 어렵다는 말은 냄새가 더 심해단 말이다. 도로가에 ‘○○축산’이라는 그럴듯한 푯말이라도 세워져 있다면 제법 큰 규모의 돼지 축사일 터인데, 혹시 호기심에라도 돼지 축사 근처를 지나고 싶다면 심호흡을 크게 하고 오랫동안 숨을 참아야 할 것이다. 혹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더 큰 호기심이 생겨 돼지 축사 안에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은 아예 안 하는 것이 좋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보는 강력한 똥 냄새로 말미암아 급성 두통과 어지럼증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투덜대게 될 거다. “왜 이렇게 축사가 많아? 축사 없는 데가 없어!” 안타깝지만 축사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마을도 축사가 점점 늘어나 노랗고 파란 축사 건물이 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게 생겼다. 우리가 사 년 전 이 동네에 집을 지었을 때만 해도 축사가 2개였는데 지금은 6개까지 늘어났다.      


왜 그러냐고? 축사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농사지어서는 돈 벌기 어려운데 축사는 처음에 돈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지 돈은 된다,고 한다. 농사지어서는 큰돈 벌기 어려워도 축사는 큰돈도 벌 수 있다,고 하더라. 그럼 농사짓지 말고 소나 키울까, 생각한다면 축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 정말 우습게 보고 하는 소리다.


소 키우는 게 힘이 들고 말고를 떠나서 축사 짓고 소 들이고 하는 데 몇 억 가지고는 '택'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축사 허가 받는 것 자체가 하늘에 별 따기다. 그래서 허가 날 만한 땅에 너도나도 축사부터 지어놓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몰려서 시골마다 더 난리다.         

 

물론 하우스도 없고 축사도 없는 아름다운 그곳을 찾으려고 하면 왜 없겠는가. 하지만 그곳에는 수도도 전기도 함께 없을 가능성이 많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올 만한 곳일 거다. 그렇지 않다면 고급 전원주택이 모여 있는, 도시에서 멀지 않은 시골 땅이거나. 당연히 이곳은 땅값이 비싸겠지.    



축사 없는 시골 풍경 사진을 찍기 어렵다. 축사, 공룡알이라 불리는 곤포 사일리지, 트랙터는 삼종 콤비 같은 것.

  


 

울창한 숲이나 나지막한 동네 뒷산은 어디 있을까


아주 멋진 풍경이 아니라도 가끔 숲 속을 거닐거나 동네 뒷산을 오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아, 이런 로망까지 산산이 깨 버리고 싶진 않지만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밖에.     


시골 논밭에는 그늘이 없다. 벼가 자라는 논에도 양파 키우는 밭에도 하우스 들어찬 곳에도 그늘이 있어선 안 된다. 그러니 논밭 근처에는 울창한 나무가 다. 그렇다고 사람도 별로 안 사는 시골 마을에 제대로 된 공원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에이, 그러면 좀 걸어서 운동도 할 겸 가을에는 밤도 따고 솔방울도 주워 올 겸 동네 뒷산에 올라 숲을 만끽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서 마음 가볍게 집을 나섰다가는 무겁게 발걸음을 돌리게 되고  게 뻔하다.


머릿속으로 상상한 뒷산은 등산복을 입지 않고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봉우리낮고 완만한 산 정도일 것이나, 현실 속 뒷산은 야리야리한 등산복은커녕 벌초대행업체 전문 일꾼 복장을 하고 올라가야 하는 야산일 뿐이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산이니 올라가는 길이 어딘지 내려가는 길이 있기나 한 건지 알 수가 없고,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산소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산. 솔직히 말하면 좀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러니까 등산을 생각해서는 안 되고 벌초를 생각해야 한단 말이다. 가을에 떨어진 밤이라도 줍고 싶다면 등산지팡이를 준비할 게 아니라 낫을 챙겨야 한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산책하기 좋은 숲, 가볍게 오르기 좋은 동네 뒷산 같은 건 시골이 아니라 도시에 있다. 우리가 누리고 싶어 하는 자연은 ‘편한 자연’인데 시골에서 누릴 수 있는 자연은 ‘불편한 자연’이다. 사람들을 위해서 정비되지 않은 자연, 편리하거나 깨끗하게 관리되지 않은 자연.      

     

그래서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꿈꾸는 자연, 누리고 싶은 자연은 어떤 자연인가 하고.


그저 보기에 아름다운 자연, 사람한테 편한 자연만 누리고 싶다면 그건 도시에서 더 잘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매끈한 등산 장갑 대신 빨간 코팅 장갑 끼고 넝쿨 끊어가며 뒷산에 길을 낼 정도 각오는 해야 진짜 자연 속에 살 수 있다.


때로 하늘이, 별이, 바람이 정말 좋을 때가 있다. 같은 하늘일 텐데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하늘이 시골에서는 보인다. 그맛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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