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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과 촌장 Sep 26. 2021

01 “농사나 지어 볼까?” 그럼 안 돼!

1부. 시골 판타지, 당신이 꿈꾸는 시골은 없다

열에 아홉이 꿈꾸는 귀농

나와 남편은 십 년 전에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로 가서 난생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귀농해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두 눈을 반짝이거나 두 손을 마주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머나! 부러워요. 저도 그렇게 사는 게 꿈인데…….”


그렇다. 내가 직접 만나 본 사람들만 기준으로 하여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 보자면 우리나라 국민 중 90% 이상이 귀농 판타지를 꿈꾸고 있다! 귀농이나 귀촌, 혹은 귀농과 귀촌이 어떻게 다른 건지 잘 몰라도 하여튼 시골에서 사는 삶을 꿈꾼다. 나머지 10%는 지금 시골에 살고 있거나 시골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골살이에 대한 로망이 1%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귀농, 귀촌, 시골살이는 모든 도시인의 로망이라 할 만하다. ‘귀농’이란 말 속에 이미 ‘로망’이 들어가 있다. ‘귀(歸)’는 ‘다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던가. 엄밀히 말하자면, 원래 농사를 짓던 사람이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농사지으러 돌아가는 게 아니라면 귀농이라고 할 수 없다. 요즘 새로 만들어 쓰는 말로 ‘창농(創農)’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농사지으러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원래 거기가 우리 모두의 고향이기나 했던 것처럼.     



농사나 짓겠다니!

아무튼 좋다, 다시 가는 것이든 처음 가는 것이든 아무렴 어떤가. 모두 그렇게 두 눈을 반짝이며 귀농을 꿈꾸고 있는데.

그런데 말이다, 꿈꾸는 농사 뒤에다 감히 ‘-나’라는 보조사를 붙여 버린다. 


‘심심한데 영화나 보러 가자.’처럼 농사나 짓겠다고?

“회사 그만두고 치킨집이나 해 볼까?”, “머리 쓰는 일 하지 말고 맘 편하게 막노동이나 하며 살까 봐!” 하며 자영업 창업과 숙련 기술직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하고 똑같이 맴매 맞을 일이다.


‘농사나 지어 볼까.’라는 말에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척 버겁고 힘겹다는 무게를 더 얹고 싶어서였을 거라고 너그럽게 이해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는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농사나 지어 볼까’ 하고 덤벼들었다가는 큰코다칠 일이다. 

  

"농사는 장난이 아니야!"


   

농사는 사업이고시골살이는 현실이다

농사는 꿈이 아니고, 시골살이 역시 판타지가 아니다. 

농사는 회사에 취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일할 회사부터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프랜차이즈 본사도 없는 개인 창업이자 때로 가족이 모두 달라붙어야 하는 사업이란 말이다. 그러니 기반이 있거나 자본이 있어야 한다. 물려받은 땅이나 시설이 없다면 돈이라도 있어야 한다.


또한 농사는 작물에 대한 지식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귀농귀촌센터에서 교육 몇 시간 받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적어도 일 년은 남 밑에서 농사를 도우며 배우고, 그 후에 내 농사를 시작하고 나서도 이삼 년은 지나야 농사일이 손에 좀 익는다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농사로 수익을 내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농사 안 짓는 게 돈 버는 거다.’는 말을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그만큼 농사로 돈 버는 게 쉽지 않다. 해마다 빚만 늘어날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농부들이 빚을 내 한 해 농사를 짓고, 올해 수확한 걸로 빚을 갚고, 또 빚을 내어 농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서운 얘기지만 해가 갈수록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귀농하고서 빚만 안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골살이 역시 내 눈앞에 낀 반짝반짝 셀로판 종이를 걷어 내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눈을 비벼대고 ‘이게 현실이라고?’ 하며 깜짝깜짝 여러 번 놀라야 한다.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이 현실이 아니라 ‘홍보’이며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도 현실이 아니라 ‘시나리오’일 뿐이란 걸 알아야 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서 꿈꾸면 그게 판타지가 된다.     



우리도 용감했던 게 아니라 오만했을 뿐

귀농을 결심했을 때 우리는 ‘농사나 짓겠다’는 마음이 아니었다. 적어도 농사를 만만하게 보거나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십 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아니었다. 농사를 한 번도 지어 본 적 없으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오만한 것이었다. 그저 우리는 겁 없이 용감했던 거라고 생각했지만, 농사를 우습게 보았던 게 맞다.


우리는 시골에 연고도 없었고, 땅도 없었다. 농사를 지어 본 적도 없었고, 농사짓는 부모를 보고 자란 기억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한테는 없는 것 투성이였네. 정말 무모했었구나. 다른 사람들보고 뭐라고 할 것도 없다. 십 년 전 우리에게 해 줘야 할 이야기다.


아무것도 없던 우리가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한 건, 농사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사란 나와 가족을 살리고 남을 살리며 땅을 살리는 일이 아니더냐, 세상에 이처럼 멋진 밥벌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돈을 벌기 위해 남을 속이고 남을 짓밟아야 하는 일도 많은데 말이야, 뿐이더냐, 사람과 건물과 자동차로 복작복작한 곳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살지 않고 자연 속에서 나무와 풀과 교감하며 행복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을 터인데. 이보다 더 좋은 일과 더 좋은 삶이 있을쏘냐, 싶었다. 


그때 우리의 귀농 판타지 지수는 100점 만점에 120점쯤 되었으리라. 그 누구보다 꿈에 부풀어 있었던 우리. 십 년 동안 우리는 온몸으로 부딪치며 전투를 치렀고, 그 결과 우리에게 없던 전투력 레벨이 상승하였을 테고 판타지 지수는 그만큼 떨어졌으리라. 


온몸으로 겪어낸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서 판타지와 현실의 간극들을 메꾸어 보려 한다. 




"아무렴, 농사는 현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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