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 2022. 9
지난여름 휴가지를 고민하다 붐비고 예약도 힘든 휴양지 대신 여름 특가 숙박 상품이 다양한 서울을 택했다. 코로나 이후 첫 서울 여행의 설렘을 안고 대학로 연극도 예약하고 고궁과 박물관 투어 등을 계획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명동. 10년 전 휘황찬란했던 불빛은 온데간데없고 한 집 건너 임대·휴업 문구가 붙어있었다. 아무렇게나 놓여진 마네킹과 먼지 쌓인 고지서는 소멸의 땅 촬영 당시 봤던 지역의 구도심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2019년 중국의 한한령에 이어 코로나19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이 발길을 끊기면서 명동의 화려한 명성을 잃은 듯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명동의 한 건물은 1㎡당 1억 8900만 원으로 19년째 서울 땅값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인사동으로 이동했다. 주차공간이 많지 않은 인사동에서 지상 주차공간을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 공영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쌈지길 인접한 지상주차장 한 곳을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쳤다. 선 주차 후 요금표 확인을 하니, 30분에 3000원 추가 10분당 1000원. 울며 겨자 먹기로 주차를 했다. 그날 지급한 주차요금 3만 원은 대중교통 이용 명분을 만들어줬다.
대학로 연극을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복잡한 노선도를 해독하고 환승을 위해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길 반복해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막내는 창원에 없는 지하철 탑승을 항공기 체험처럼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퇴근 시간과 겹쳐 생애 첫 지옥철을 경험하고선 지하철 좋다는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앞사람 머리카락이 코에 닿을 만큼 밀착한 상태로 세 정거장을 꿈적도 못 하고 이동했다. 뒤에 서 있던 청년은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없어 탑승조차 못 했다.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우리 가족뿐인 듯했다. 다들 이어폰을 꽂고 휴대전화만 응시했다.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울살이가 일상인 그들은 행복할까?
마지막 날 중학생인 첫째와 서울 대학 탐방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드리아브스루 방식으로 둘러보며 상상을 해봤다. 서울의 대학을 다니면 비용이 과연 얼마일까? 한 여대 앞 오피스텔형 원룸은 14㎡가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이 기본이었다. 물가 비싼 서울에서 식비와 생활비, 관리비까지 내려면 어림잡아 100만 원. 한 달에 최소 200만 원이 필요했다. 여기에 학비는 포함돼 있지 않다. 물론 공공형 기숙사나 청년주택 등도 있지만, 경쟁률도 높고 공동생활의 불편 등 장·단점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것만 해도 스펙이란 말을 실감했다. 딸은 공부를 못 해서가 아니라 지옥철을 두 번 다시 타고 싶지 않다며 인서울의 꿈이 없음을 밝혔다. 상상은 허상으로 서울여행은 서울탈출로 마무리됐다.
최근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을 자주 만난다. 왜 서울을 가지 않고 지역에서 활동하는지 물어보면, 이미 서울에서의 타향살이를 경험 후 귀향한 사례가 많았다. 지역에서의 활동 소감을 물으면, 몸도 마음도 여유롭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얘기한다. 인서울의 꿈과 수도권 쏠림에 반기를 든다. 지금 즉시 서울을 탈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