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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정 Jul 10. 2024

동네 가게가 문 닫으면, 추억도 사라진다.

경남도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 2024. 2 

‘임대문의’ 동네 상가엔 빈 점포가 몇 군데 있다. 코로나19를 버티지 못해 문을 닫은 식당도 있고, 그보다 오래전 문을 닫은 가게도 있다. 학원 상가 1층의 빈 점포는 빵집이 있었던 자리다. 지금 중학생인 첫째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피아노 학원에 등원시키고 두 돌이 지난 둘째와 누나를 기다리며 더위도 피하고 간식도 사 먹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다른 프랜차이즈 빵집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문을 닫은 후 높은 임대료와 경기 침체 탓에 몇 년째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해 비어있다. 뽀얗게 먼지가 쌓인 창문 너머엔 둘째와 앉았던 소파와 빵을 고르던 가판대가 그대로 남아있다. 하필 누군가가 깬 유리 조각이 빈 점포를 더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다행히 몇 주 뒤 임시방편으로 파손된 부분은 막아 놓았지만, 한동안 주변은 쓰레기가 쌓이는 등 어수선했다. 


 동네 빵집, 동네 문구점이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챙겨야 할 공책 한 권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에 갈 때면 시쳇말로 ‘현타’가 온다. 인터넷 쇼핑몰이 활성화되고 당일‧새벽 배송이 가능한 시대, 문구점 폐업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라지만, 1,000원 지폐 한 장 들고 가던 학교 앞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휴일이면 앉을 자리도 없이 북적거리던 동네 목욕탕은 사랑방이자, 아지트였다. 온탕 하나 냉탕 하나에 어른 다섯 명이 앉으면 꽉 차는 사우나가 전부였던 작은 목욕탕은 서로의 등을 내밀며 한 주의 묵은 때를 털어내고, 야쿠르트 한 잔의 달콤한 정을 나누던 공간이었다. 주거환경 개선과 목욕문화 변화로 손님이 줄고, 대형 찜질방에 밀려나기 시작한 동네 목욕탕은 코로나19 여파로 폐업이 줄을 이었다. 그 무렵 친정 부모님도 평생 지켜온 목욕탕을 접었다. 영업 마지막 날, 목욕탕 앞에서 손주와 찍은 사진 한 장은 이젠 빛바랜 추억이 됐다. 동네 목욕탕이 사라지면 목욕 시설이 변변치 않거나 온수 사용이 어려운 이들은 더욱 시린 겨울을 날 수밖에 없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이동 수단을 이용해 대형 찜질방에 가는 것은 소소한 ‘일상’이 아닌 번거로운 ‘일’이 된다. 


 동네 목욕탕도 동네 문구점도, 지역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어린이집 6년 만에 반토막’, ‘병설유치원 5곳 원아 없어 1년간 휴원 예정’ 풀뿌리언론K에 소개된 기사만 봐도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은 이미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동네의 작은 가게가 잘 버텨주길 바라지만, 중력을 거스르는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오래전부터 비어있던 한 상가의 점포에 인테리어 공사가 한 창이다. ‘OO국숫집 개업’ 현수막이 걸리자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마다 국숫집 오픈 소식이 화제다. 대망의 개업일. 주민이라면 마땅히 한 번은 가야 할 의무감 같은 게 생겼다. 맛에 대한 품평은 갈렸지만, 다들 친분도 없는 사장님 걱정을 늘어놓았다. 도대체 국수를 몇 그릇을 팔아야 임대료를 내는지부터 인건비 걱정까지. 모였다고 하면 국숫집 얘기였다. ‘순번을 정해 국수를 먹으러 가야 하나’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농산물 등 식재료가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거리를 푸드마일(food miles)이라 한다. 푸드마일을 줄이기 위해 로컬푸드 직매장을 이용하거나 직접 텃밭을 기르는 사람들도 있다. 거기까진 실천하기 힘들겠지만, 동네 사람들과의 모임은 가능하면 동네를 벗어나지 않고 동네 식당과 카페를 이용할 것. 이런 암묵적 약속이 동네와 추억을 지키는 힘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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