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칼 [아침을 열며] 2023. 12
지난달 홈쇼핑을 보던 남편이 로봇 청소기를 구매했다. 그동안 관심 있게 봐온 고가의 로봇 청소기를 10만 원 추가할인에 무이자 8개월의 혜택까지 준다는 쇼호스트의 언변에 구매 버튼을 누른 것이다. 며칠 뒤 배송된 로봇 청소기는 물걸레를 빨고 건조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먼지통과 오수통을 비우고 정수통만 채워주면 집의 구조까지 파악해 구석구석 청소를 말끔하게 해주었다. “로봇이 닦아봤자 사람이 닦는 것만 못 하긋제”라고 말하던 친정엄마는 사람이 닦은 것처럼 깔끔해진 바닥을 보자 “이제 내가 할 게 없네.”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셨다.
로봇 청소기 하나 들였을 뿐인데, 일상은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친정엄마는 아침 시간 청소 대신 이웃들과 티타임을 즐겼고, 물걸레와 청소도구를 정리하자 집안도 깔끔해졌다. 일론 머스크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휴머노이드 로봇은 위험하거나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미래엔 노동이 선택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상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한 대기업 구내식당에서는 국과 탕, 찌개류와 튀김 등 30개의 요리법을 자동으로 요리할 수 있는 로봇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 조리 과정에서 나오는 발암물질인 조리흄에 대한 걱정도 덜 수 있다.
[안녕하세요. 경제평론가 이원재입니다. 오늘 우리의 대화 주제는 바로 ‘미래의 기술과 경제’입니다. 인텔에서 예측한 내용이죠. ‘2028년에 AI PC가 전체 PC 시장의 80%를 차지할 것’이라는 놀라운 전망입니다. 이런 기술적 변화가 우리의 생활과 일터, 나아가 사회 전반에 어떤 의미를 가져올지 오늘 이 시간에 함께 고민해 보려 합니다.]
위의 글은 이원재 경제평론가가 방송 오프닝에 사용한 원고다. 겉보기엔 방송작가가 쓴 원고 같지만, GPT-4에 평론가의 글을 학습시켜 만든 글쓰기 로봇이 작성한 글이다. ‘방송작가라는 직업도 머지않아 사라질 수 있겠구나!’ 로봇이 청소 ‘노동’뿐 아니라, 나의 ‘일’을 빼앗아 갈 수 있음을 실감함과 동시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마을학교 시사토론 동아리 학생들과 경남도민일보 이서후 기자의 <"이 칼럼은 나, 챗지피티가 썼습니다">를 함께 읽으며 노동의 미래에 관한 토론한 적이 있다. 문화기획자이자 영화감독인 김재희 씨가 챗지피티 4.0을 통해 작성한 칼럼은 학생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 우리는 뭐해요?” 로봇이 할 수 없는 일, 그런 로봇을 개발하는 일을 찾아보자고 했지만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답해줄 수 없었다.
4년 전, KBS 창원방송총국에서 근로자의 날 특집 ‘스마트 산단, 노동의 미래와 마주서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독일의 사례를 살폈던 것이 떠올랐다. 독일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산업의 변화에 발맞춰 “좋은 노동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화두를 던졌고,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노동 4.0>이라는 백서를 만들었다. 이제 한국형 노동 4.0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로봇 청소기를 구매한 지 일주일 뒤 집안이 물바다가 됐다. 청소기가 다닌 길마다 물길이 나 있었다. 로봇을 들어 올리자 물이 왈칵 쏟아졌다. A/S센터에 전화했더니 불량인 것 같다며 새 제품으로 교환을 해준다고 했다. 친정엄마는 “봐라! 아무리 똑똑해도 이건 로봇이 못 닦는다 아이가”라며 기운찬 걸레질을 했다. “아무렴, 엄마 손걸레질은 못 따라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