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 2023. 11
“11월에 반팔이라니!”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가져온 가죽 재킷을 한쪽 팔에 걸치고 걸어도 머리카락 사이로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팀원들은 모두 이상고온에 혀를 내두르며 “큰일이다”를 연발했다. 며칠 뒤, 여름 장맛비 같은 가을비가 강풍까지 몰고 왔다. 풍성했던 단풍나무 아래로 비바람에 떨어진 낙엽이 한가득 쌓였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가 마치 수도권 정치권발 ‘메가 서울’ 후폭풍을 만난 위태로운 지역의 모습 같았다. 지역은 낙엽 떨어지듯 한순간에 사라질지 모른다. 요즘 날씨만 이상한 게 아니다. 총선이 다가오니 정치권도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메가 서울’에 이어 ‘메가 부산’까지 앞으로 어떤 ‘메가 시리즈’가 더 나올지 예측도 안 된다. 위기를 넘어 소멸 단계인 지역에 정치권이 던진 화두는 연일 포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너도나도 수저를 올리는 모양새다.
지난 9월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며 “이제는 지방시대다, 지방시대가 곧 기회"라며 균형발전을 강조했다. 수도권 정치권의 ‘메가 서울’과는 정반대 논리다. 권역별로 전국을 4+3 초광역권으로 나누고, 경남, 부산, 울산을 묶어 규모의 발전 계획을 수립했다. 정부의 정책이 낯설지 않은 건 기분 탓이 아니다. 부울경 메가시티, 광역경제권 등 다양한 명칭으로 추진되었던 바로 그 정책과 다르지 않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결국 무산됐고, 부산-경남 행정 통합은 시.도민 여론조사에서 힘을 얻지 못 해 탄력을 잃었다. 내년 총선을 집어삼킬 ‘메가’ 앞에 경남은 어떻게 답할까?
‘경남 청년 –2, 서울 청년 +2’ 최근까지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었던 청년이 여자친구와 함께 경남을 떠나며 개인 소셜미디어에 남긴 메시지다. 청년이 떠나는 이유인즉, 서울에는 방송국도 많고, 즐길 거리도 기회도 더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상상 초월 집값과 물가라는 변수가 있지만, 반박할 근거도 붙잡을 명분도 부족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옛말은 ‘태어난 김에 서울’로 문장만 바뀌었다. 숨 막히는 지옥철을 탈지언정 서울 청년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메가 서울’이라니! 지역을 빨아들이는 빨대를 요구르트 빨대에서 스무디 빨대로 바꿔버리는 꼴이다. 지방시대에도 여전히 기회는 서울부터다. 지역은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 메가 서울에 빼앗긴 지방시대, 생존을 위한 눈치 게임이 시작됐다.
‘메가시티’, ‘메가 부산’은 또 어떠한가? 올 추석, 송편을 빚으며 물 조절에 실패했던 일이 떠올랐다. 송편은 익반죽이다. 따뜻한 물을 적당히 붓고 잘 뭉쳐야 한다. 그런데 흰 찹쌀가루는 물을 많이 부어 모양 빚기가 어려웠고, 노란 찹쌀가루는 물을 적게 부어 잘 뭉쳐지지 않았다. 분홍 찹쌀가루는 물이 식은 탓에 뭉쳤다가 금세 잘게 부서졌다. 잘 뭉치려면 제대로 빚어야 한다. 수도권 일극 체제와 메가 서울에 맞서기 위해 지역은 제대로 뭉쳐야 한다. 정치적 논쟁만 살아남고 지역은 소가 터진 송편이 되어선 안 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비판이 나오는 지역 균형발전 대응책도 ‘메가’만 남고 소가 빠진 싱거운 송편이 되어선 안 될 일이다.
“얘들아 메가시티가 뭔 줄 아니?” 중학생 딸아이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졌더니, 금시초문이었다. 부산에 계신 친정 부모님께 여쭤봐도 뉴스에서 들어는 봤는데 뭘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웃들도 매한가지다. 핵심은 광역경제권이 메가시티가 되든 통합이 되든 정치적 구호쯤으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무관심. 시대를 역행하는 정치쇼에 호응할 국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