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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정 Jul 10. 2024

벨이 아닌 경종을 울려라!

경남도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 2023. 9

“최 작가 이것 좀 봐줄 수 있어요?” 직업적 특성상 주변인들로부터 글 교정 의뢰를 종종 받는다. 써 놓은 글을 읽고 흐름에 맞는지, 문맥상 이상한 문장은 없는지 검토하고 코멘트를 달아 전달한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한 페이지 분량의 글을 받았다. 육하원칙에 근거해 써 내려간 글은 학습권과 교권 침해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한 페이지가 채 안 되는 의견서지만, 거기에 담긴 내용은 책 한 권의 무게만큼 무거웠다. 같은 반 친구의 행동도 문제지만, 부모의 적절치 못 한 태도가 더 문제라는 요지의 글이었다. “아이는 실수를 할 수도, 잘못된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이의 부모가 바뀌지 않으면서 아이도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닐까요?” 글에도 대화에도 내 아이의 학습권을 빼앗긴 부모의 분노보다는 상대 아이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9월 4일, 공교육이 멈췄다. 학부모의 민원으로 숨진 고 서이초 교사의 추모일, 전국의 12만여 명의 선생님들이 교실이 아닌 거리에 나섰다. 정상적인 교육 활동을 보호해 달라는 이들의 절박한 호소가 가슴이 먹먹하게 느껴졌던 한 주였다. 교육이 더 이상 멈추지 않으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지난 목요일, 필자가 맡고 있는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교권 추락’을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2021년 아동학대처벌법과 교육공무원법 동시 개정으로 아동학대 신고된 교사들이 경찰 수사를 받고 직위 해제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악용한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교육 서비스 헌장’의 존재였다. 녹화를 마친 뒤 편집 과정에서 인서트용 자료를 찾기 위해 포털 창에 ‘교육 서비스 헌장’을 검색했다. 모 학교의 누리집에 게시된 교육 서비스 헌장의 내용은 두 눈을 의심했다.      


<고객을 맞이할 때는 일어서서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먼저 친절히 인사를 드린 후 업무를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고객께서 용무를 마치고 돌아가실 때에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친절하게 인사하겠습니다. 전화를 주시면 벨 소리가 3번 울리기 전에 받겠으며 통화가 끝났을 때에는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끝인사를 하고 고객께서 전화를 끊으신 후에 수화기를 내려놓겠습니다.>     

교육 서비스 헌장의 내용 일부만 읽어도 백화점 고객 센터 서비스 헌장을 잘 못 옮겨 놓은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스크롤을 내렸다 올렸다 반복하며 헌장이 기재된 곳이 분명 학교 누리집임을 인식하는 순간, 편집실엔 ‘와…’라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정적이 흘렀다. 교사를 서비스 공급자로, 학부모와 학생을 수요자로 선을 그은 교육 서비스 헌장에서 고객은 왕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각인시켰던 건 아닐까?      


추락한 교권을 바로잡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책으로 일명 ‘교권 회복 4법(교원지위법·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이 추진되고 있다. 학생의 교권 침해를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조치에 대한 이견 등 여야 입장 차를 좁혀 나가야 하는 관문이 남았지만, 공교육 정상화에 대한 물음에 이번엔 국회가 제대로 된 답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법이 바뀐다 해도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학교 누리집에 게시된 교육 서비스 헌장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매뉴얼화된 서비스가 아닌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 있게 벨이 아닌 경종을 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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