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칼 [아침을 열며] 2023. 7
“분위기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요즘 뜬금없이 안부를 물어오는 이들이 늘었다. 이유인즉, 수신료 분리징수를 담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돼 분리징수가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수신료 2,500원 안 내도 되나?’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분리징수를 한다는 거지 아예 수신료가 폐지되는 건 아니다. 방송법 제64조에 따라 TV 수상기 소지자는 분리 징수로 납부 방식이 바뀌어도 수신료를 납부해야 한다. 법적으로 수신료는 실제 방송 시청 여부와 별도로 TV를 보유한 국민에게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이기 때문이다. 미납 시엔 수신료의 3%의 가산금이 부과된다. 법은 그대로인데 시행령을 바꾸다 보니 현장은 혼란스럽다.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A4 한 장짜리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안내문이 붙었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어르신이 혼잣말하신다. “그래서 어찌하라는 말이고? 안 내도 된단 말인가? 내란 말인가?”
10년을 넘게 KBS에서 글밥을 지어온 지역 방송작가 입장에서 방송국의 위기는 지역 작가의 위기다. KBS는 수신료 분리징수 확정 직후,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신규 사업을 모두 중단하고 기존 사업과 서비스는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금 맡고 있는 프로그램 중 몇 개가 사라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나?” 주차장에서 만난 프리랜서 촬영 감독의 질문에 “아무도 알 수 없죠”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수신료 분리로 인한 방송국의 재정 압박은 방송을 업으로 하는 작가, 감독, CG 등 프리랜서 직군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 공영방송의 위기는 그저 제 밥그릇을 지키고 말고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역의 위기가 될 수 있다. 지역민주언론시민연합 네트워크는 "지금도 KBS 본사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지역국 제작비 예산 상황에서 수신료 분리징수로 재정 문제가 현실화된다면, 지역방송 구성원들이 사회적 가치보다 수익성에 내몰릴 것이 자명하다"라고 논평을 내고 지역 관점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시행되는 수신료 분리징수는 ‘지역 시청자에 대한 폭력’이라고 규탄했다.
2년 전 론칭한 ‘KBS뉴스7’은 40분 분량의 저녁 7시 뉴스의 편성권을 본사가 아닌 지역국이 가짐으로써 지역중심의 뉴스를 제공해 지역방송의 혁신모델로 평가받는다. 수신료 분리징수로 인해 ‘뉴스7’과 같은 프로그램이 축소되거나 폐지된다면, 2022년 3월 ‘지역에서 방송작가로 살아가기’ 칼럼에서 언급했던 내용이 뒤집힐 수 있다. 경남에서 마창대교가 아닌 올림픽대교의 교통 소식을 들어야 하고, 지역뉴스는 수도권 뉴스 뒤에 잠시 나왔다 사라질지 모른다. 인구 감소로 인해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의 현실을 보여줬단 평가를 받는 다큐멘터리 ‘소멸의 땅’과 같은 콘텐츠 제작도 힘들어질 수 있다. 수신료 수익 감소로 KBS 1TV에 다시 광고가 붙게 된다면 어떨까?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할 공영방송이 광고주 눈치를 보게 될 일은 불 보듯 뻔하다. 협소한 지역의 광고시장에서 지자체는 지역 언론의 최대 광고주다. 지역 공영방송이 아닌 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변방송이 될지 모를 일이다. 수신료 분리징수로 수면 위에 떠오른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대한 노력, 경영 등의 문제는 개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수도권 쏠림으로 인한 지역소멸 시대, 지역 공영방송마저 위기를 맞게 된다면 지역도 위기를 맞을 것이다. KBS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 글로노동자로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커피 한 잔 값도 되지 않는 2,500원이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지역을 지킬 힘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