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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정 Oct 07. 2019

불편한 만남

- 6층과 11층 사이  

2017년 겨울. 전화가 울렸다. 당시, 나는 두 돌이 갓 넘 둘째와 육아전쟁 중이었다. 1분이라도 더 놀고 싶은 아들 녀석과 낮잠을 재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나의 기싸움이 진행 중이었다. 벨소리를 깜빡하고 진동을 바꿔놓지 않은 탓에 결국 낮잠 전쟁은 허무하게 끝이 났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벌떡 일어선 아들 녀석과 마주 앉은 채 전화를 받았다. 딸아이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의 학부모 회장이자 학교 신설 과정에서 애를 쓰셨던 분이었다. 어찌어찌 내가 전직 방송작가임을 알고 있는 분이기도 했다. 통화의 요지는 이랬다. 학교에서 뭔가를 하는데, TF팀이 필요하다. 일단, 회의를 언제 할 테니, 와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분을 알고 있는 이웃이자, 같은 방송국에서 일했던 작가 언니에게도 똑같은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도대체 뭔 일이지?', '글쎄...'


6층과 11층 사이
우리의 관계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며칠 뒤, 둘째를 어린이집에 잠깐 맡기고 회의 장소로 향했다. 이미 한쪽 회의 테이블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같은 동 6층에 사는 선영이 엄마도 와 있었다. 아파트에 입주한 지 꽤 됐지만, 선영이 엄마와 그렇게 친분이 있진 않았다. 6층에 살고 선영이가 우리 첫째 딸보다 한 살이 많다는 것 정도 아는 그런 사이였다. 6층과 11층 사이. 우리의 관계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 중  명이나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자리의 낯섦을 조금은 풀어주었다. '내 옆에 앉은 이 사람들은 누구지?' 몇몇은 서로 알고 또 몇몇은 얼굴 조차 마주한 적 없는 이들이었다. 공통점은 마을 주민이자, 아이를 같은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라는 사실이다.


저는 2학년 나현이 엄마입니다


서로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2학년 나현이 엄마 최은정입니다. 전직 방송작가고요. 지금은 둘째를 키우느라 집에 있습니다.", "저는 3학년 전선영 엄마고요....." 이런 식의 어색한 소개가 한 참은 이어졌다. 그것이 우리들의 첫 만남이었다. 열 명이 넘는 엄마들의 이름과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울 수 도 없었다. 아니 사실 모두를 알 마음도 없었던 것 같다. 이곳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우리를 모아놓고 하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다.


내가 마을학교 운영진 TF팀이라고?!


자기소개가 끝나고야 서로 알지도 못 하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한들초는 행복학교고, 올 한 해 마을학교를 운영했고, 내년에도 운영을 해야 하는데, 학부모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를 테스크포스팀 곧 마을학교 운영진으로  모시게 됐고, 오늘이 첫 회의라는 것이다. '아니 행복학교는 또 뭐고, 마을학교는 또 뭐며, 운영진은 뭐란 말인가?' 딸아이의 학교가 행복학교라는 것은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사실 그게 뭔지 관심도 없었고, 그저 일반학교와는 달리 아이들이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교라는 느낌? 정도만 가지고 있었던 터라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모임에서 세 명정도 아는 것으로 낯섦을 피해보려 했던 내 안일함이 순식간에 폭로된 느낌이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였다. '교육은 학교에서 알아서 시켜주는 것', '부모는 그저 잘 지켜보고 격려해주는 것' 정의되지 않았지만, 나름의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나로서는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둘째 육아에만 빠져 첫째 교육엔 너무 무관심했었나?', '내 교육관은 방임이고, 엉터리였어.' , '여긴 내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군.''시쳇말로 하고잽이 엄마들이 와야 되는 거 아닌가?'.... 등등 별의별 생각들이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적당한 선에서 끊고,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입담이 뛰어난 엄마들 사이에서 글이 익숙한 나는 메모 같은 낙서만 끄적였다.


@@마을이 학교라고? @@행복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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