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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Feb 12. 2024

무던한 주말



자극적인 날들이 묽어지기만을 바랐다.

  

별다른 할 일 없이 늘어져가던 주말이었다. 정오를 한참 넘긴 시간에도 깨어나지 못했다. 이불에 남겨진 온기를 마저 느끼다 뒤늦게 나갈 채비를 했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단지 나들이가 필요했을 뿐이다. 한 주간 벅찼던 몸과 마음을 달랠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한적한 거리를 걷고 싶었다. 그리하여 종묘 어귀를 찾았다. 막 내린 눈이 들뜬 땅의 온도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질척해진 길 위를 사뿐히 걸으며 한가한 도심을 만끽했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가 묘했다. 들뜨면서도 슬퍼 보였다. 쇼윈도 속 귀금속 가게 점원의 모습은 어딘가 착잡스러워 보였다. 괜스레 미안하게 느껴졌다.    

 

적당히 춥고 적당히 겨울빛이던 날이라 걷기 좋았다. 익선동으로, 인사동으로, 다시 종묘로 쏘다니며 서울 구석구석을 누볐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던 날들엔 충동적으로 자극적인 것만을 찾곤 했었다. 짧은 영상을 수도 없이 넘겼고 백해무익한 음식과 알코올을 들이켰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채 하루를 허비했다. 아까운 젊은 날들이 바스러져가는 것 같았다. 다행히 이 주말엔 그냥 걸을 수 있었다. 잡념 없이 걸을 수 있어서, 놓치고 살던 것들을 시야에 담을 수 있어서 기뻤다.     


맛으로 치자면 과하지 않고 담백하던 날. 때로는 자극적인 날들이 온갖 무탈한 것들과 평안한 것들로 묽어졌으면 좋겠다. 욕심과 절망 없이 딱 하루만치의 일상을 음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체하지 않고 꼭꼭 씹어서. 내 혈관 곳곳에 스며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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