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하수 Sep 09. 2020

계절을 느낀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기분


엄마가 되어 행복한 것 중 하나는,

계절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달을 보며 출근해서 달을 보며 퇴근했을 때의 사계절은

내게 그저 창문 밖 풍경일 뿐이었는데

엄마가 되고서야 아이의 눈으로  함께 세상을 배운다.

마치 세상에 처음 태어나는 것처럼 하나하나

오감을 통해 다시 보고 듣고 느끼며 나는 새롭게 태어난다.


엄마 나이 다섯 살.

여자에서 엄마로 나의 정체성이 바뀐 뒤, 한 해 한해 지날수록 그동안 잠자던 나의 오감들이 하나하나 자극되어 굳어 있던 감정들도 되살아나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억눌려있던 감정들이 풀어지며 많이 울기도 지만, 하나하나 느껴지는 계절의 색깔, 온도, 냄새들은

마냥 새롭게만 느껴진다.


엄마가 된다는 건,

부모가 된다는 건,

자연의 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과정인 것 같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터지는 팝콘 같은 벚꽃을 보며 하늘에서 새하얀 봄눈이 내리는 것 같다며 세상 다 가진 듯 활짝 웃던 아이. 여기저기 활짝 피어난 색색의 꽃들을 보며 황홀해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꽃 잎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여 뜯어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기도 심지어 맛도 보기도 하던...

세상을 날 것 그대로 흡수해내는 순수함을 보며

나의 유년기를 회상해보기도 한다.

아이를 통해 다시 아이가 되어본다.



여름이면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과실이 주렁주렁 달린 매실나무들을 쳐다보며 이틀간 생각해낸 자작곡이라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매실~매실~봄바람이 불어요"

(어쩐지 계절을 헤매매실이지만...)

나뭇잎은 얼마나 초록색인지 하늘은 얼마나 파란색인지 새삼 느낀다. 구름 한 점에도 제각기 자신만의 모양들이 있고, 하늘과 바다는 어쩜 이렇게도 서로를 향해 새파란 표정으로 마주 보고 있는 건지...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아이의 손가락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시간이 숨 가쁘게 지나가는 것 같다.

육아의 고단함 속에서도 지금 이 시간들이 손 안의 한 줌의 모래처럼 금세 빠져나갈까 봐 조마조마해질 때가 있다.

시신경까지 시원해지는 듯했던 여름의 풍경
모래의 맛은 통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했다.


가을이면 날아다니는 잠자리가 무서워 등 뒤로 숨어서는 이내 빼꼼히 얼굴 내밀고 인사를 하며 궁금해하던 아이,

 떨어지는 나뭇잎마다 이건 엄마 선물, 저건 아빠 선물,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

알록달록한 단풍잎, 은행잎을 지날 수 없어 떨어지는 가을 눈을 한참이나 맞고 서있간들. 

 시간들이 흩어질까 봐, 쉬이 흘러가버릴까 봐

마지못해 앉은 척 나란히 앉아서는 고운 잎들 모으고 모아 책갈피를 만들기도 했다. 추억이라도 한 움큼 남겨놓을까 싶어서...


겨울이면  부지런히 쌓인 눈 위에 한 발자국씩 조심스레 도장 찍으며 눈끼리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를 느끼기도 하고

눈썰매를 타며 온몸으로 새하얀 세상을 느끼던 순간들.

아이들 덕분에 나의 추억들도 소환되는 시간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겨울 아이였던 나는

엄마가 되고선 이상하게 추위를 타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으로 체질이 많이 바뀐다고도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체온이 따뜻하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지금 이 행복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줄 모르고 지날까 봐 기록해보았는데 눈물 날만큼 벅찬 순간들이 구나 싶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참 예쁘고 재미있다.

이 투명한 눈 안에 세상이 있는 그대로 담길 수 있게

눈, 코, 입의 필터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코로나는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는 우리들에게 다시 숨 쉬는 법부터 가르쳐 주게 하는 것 같다.


소중한 이 순간들, 이 마음 잊지 않게 하나씩 기록해보아야겠다.

기록이 기억을 이기니깐.

안경이 뒤바뀐거니. 세상이 뒤바뀐거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