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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May 14. 2024

80일의 생존일주

혼자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망가질 것을 안다.

누워있는데 집이 떠올랐다. 강아지가 보고싶지만 집에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어느 시에선 엄마는 내가 가장 먼저 떠나온 주소라던데, 나는 매일 엄마에게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알린다.

약을 먹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또 약을 먹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나는 웃지 않는다. 웃을 일이 잘 없다.

웃어야 행복해진다던데, 도무지 웃을 일이 별로 없다. 

사소한 오해들이 쌓여 나는 멀쩡한 인간일 자격을 박탈당한 것 같다.

말수가 줄어들고 웃을 일도 없고. 

다음날이 오는 게 달갑지 않고 입맛이 깔깔하다. 구겨넣는다. 밥도 입에 구겨넣고

세탁물도 모아 세탁기에 구겨넣고 답답하고 막막한것도 구겨넣는다. 


실제로 먹은 건 없는데 구역질이 자주 난다.


그 누구도 호의적이지 않은 곳에서 실망과 적의를 마주하는 일은 힘들다.

말 한 마디는 오해를 사기 때문에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말을 아무에게도 걸지 않으려고 한다.

무슨 말을 해도 세 번씩 곱씹어 생각해본다. 


아픈 일이 많다

혼자 살기 시작했다

아플 것을 걱정해 약을 많이 구비해뒀다

진통제 소염제 소화제 수면제 신경안정제 등

약은 아픔을 누르고 하루를 살아있게 한다

내가 아프면 그 누구도 모르고 

안다 한들 역시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나는 약을 준비했다


160봉지 정도 되는 약이, 하루에 12알 정도의 알약이 나를 지탱한다

매일 내일이 오는 게 무서운 밤을 겪어봤는가


누군가는 80일간 세계일주를 떠났다

나는 하루 두 봉지씩, 80일간 살아 있을 수 있다.



         


2023년에 썼던 글을 다시 꺼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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