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연산 Nov 23. 2024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긴가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긴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가? 내겐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견뎌야 하는 시간이 길다는 말이다. 공연 하나를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한다. 조명. 무대. 출연자. 피디. 사무작업자. 음향. 의상. 등등. 다 모여서 각자의 일을 한다. 마찰도 잦다. 어찌저찌 무대를 올리고 무대에 올라서 스페이싱(무대에 실제로 올라 공간을 가늠하고 익숙해지는 일이다)을 한다. 음향을 체크한다. 의상이 문제가 있는지 확인한다. 변동사항과 수정사항을 체크한다. 어디 하나라도 틀어지면... 어떻게든 되긴 한다. 그런 게 공연이니까. 하지만 어지간하면 다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해낸다. 


숙련된 작업자의 경우, 작품구성 혹은 안무 등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무대작업 시작부터 해서 철수까지 다 하는데에는 1~2주면 된다. 그 사이에 공간의 방향도 깊이도 다 달라진다. 소리의 방향과 크기 빛의 정도와 조명의 크기 갯수 그리고 그 안에서 움직일 출연자와 관객들의 동선까지 모두 고려한 결과물은, 그렇게 모인 수많은 작업자들의 근로 아래 만들어진다.


그렇게 해서 길면 1시간~100분을 공연한다. 짧은 경우(콘서트나 음악 무대)는 개인 혹은 팀에게 3분, 길면 20분 정도 시간이 있다. 토할 것 같은 감정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심장이 튀어나갈 것 같은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공연이 끝나면 구토하거나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기도 한다. 14일짜리가 3분만에. 아니, 140일짜리가 3분만에 끝나기도 하는 거니까.


후련할 때도 있었다. 끝나고 모니터링을 하는데 차마 못 보겠는 것도 많았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약을 먹어서인지, 아니면 아주 약간 무뎌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그냥 일이다. 내게 잘 들어오진 않지만 건조하게 해내는 일. 설렘은 긴장과 불안으로 바뀌었으나, 이제는 그 단계도 크게 보면 지나서 그냥 연출자가 원한 것을 정확하게 무대 위에서 출력한다. 동작. 위치. 표정. 


모든 공연자가 이렇지는 않다. 많은 TV 프로그램에서 그렇듯 감정이 벅차 눈물을 보일 수도 있고, 흐느끼거나 기뻐하거나 격앙되기도 한다. 스포트라이트가 주는 설렘. 긴장감. 그런 것이 아직도 남아있고, 앞으로도 기대하거나,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나는 이제 그렇지 않을 뿐.


이 일을 관둬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다. 나는 벽돌 같은 인간이지만 그래도 아직 이 일을 좋아한다. 벽돌이 지붕이 되라면 지붕이 될 것이고 기둥이 되라면 기둥이 될 것이다. 신발장 옆 선받 받침대가 되라면 기꺼이 할 것이다. 2022년 무용으로 처음 데뷔를 하고, 공연이 끝나고 몇 주 후였나 몇 달 후였나 느낀 감정을 기억한다. '생생하다' 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아주 조금씩 차올라 발밑에서 찰박이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찰박임을 좋아해서 무표정으로 있다가도 일이 들어오면 기뻐 수락한다. 일을 찾아다닌다. 내 돈을 내고서라도 공연에 오른다. 


내년까지 계획한 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다면 유럽에 3개월 갈 것이다. 오디션에 도전하고 워크숍을 갈 거다. 주위 형 누나들이 그랬다. 연산아. 춤으로 먹고살기는 힘들어. 특히 너같이 비전공자에, 나이도 많으면 더 그래.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맞다. 나는 내가 잘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알고 유별나거나 특출난 점 하나 없는 사람이란 거 안다. 재능과 타고남이 빛을 발하는 분야에서 이런 사람이 아직도 여기 매달려있다니 이런 천치같은 짓이 있나 싶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 일말의 끝맺음은 지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친구들은 결혼을 준비하거나 결혼을 했다. 몇 년간 사귄 애인이 있거나 대출금 얘기를 한다. 나는 작년 소득이 600만원이다. 그게 제일 많았던 때고, 공연으로 번 돈은 100만원도 못 된다. 도박도 아니고 추락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다. 시시한 삶이고 무덤덤하게 해내는 공연일이래도 그냥 그 부품이 된 게 만족스럽다. 더 하고 싶을 뿐.


무기력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무의미하지 않았다. 무표정으로 인생 대부분을 보냈지만 무대에서 내려온 후 내 방에서는 조금씩 웃었다. 예술을 하겠다고 버는 돈은 무겁고 일은 힘들다. 입에 담기 힘든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일하면서 매일매일이 너무 힘들어 이건 악몽이고, 감옥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매일 얼만큼의 돈을 주는 그런 거. 하필이면 한 일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연락을 끊은 채 전자기기 없이 일해야 하는 환경이라 더욱 힘들었다. 그만큼 돈은 모을 수 있었지만, 위염과 장염, 불면에 시달렸다. 약을 먹어도 불안하고 두근거리는 게 멈추지 않았고 위염과 장염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뭘 먹으면 토하고 안 먹으면 헛구역질을 했다. 사실 뭐 일이 힘들겠는가. 어딜 가나 사람이 힘들지.


새벽 숙소 골방에 누워 불을 끈 채 생각했다.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긴 거라고. 조명은 한 순간이다. 찰나다. 그 찰나를 위해 이 헛구역과 복통과 불안감을, 빨리감기도 할 수 없고 내 정신을 놓아버릴 수도 없는 곳에, 일당 얼마에 나를 묶어놨다고. 


하고 싶은 예술이 딱히 있지는 않다. 그저 부품이면 족하다. 뭐가 좋아요는 없어도, 오답은 걸러서 한다. 세상이 밝고 꽃밭으로 보이지는 않는 사람이라. 내가 싫어하는 오답만 걸러도, 딴엔 괜찮은 작품들을 해내 왔다. 


최승자 시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그랬다. 허무와 절망은 운명이었다고. 문학은 슬픔의 축적이지, 즐거움의 축적은 아니라고. 내게는 예술이 그렇다. 토해내듯 하는 비명이다. 대신 입이 없다. 입은 없어도 비명은 질러야 한다. 그걸 몸짓에 담고, 연출가가 원하는 대로 출력한다. 내가 원하는 방향의 공연이라면 그런 식으로, 내 안에서 비명을 소화한다. 인터뷰에서 최승자 시인은 덧붙인다. 이제는 시를 의식적으로 씁니다. 그럴 나이가 됐어요. 나도 살아가야 하니까요. 라고. 나도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그래야 하니까. 나도 살아가야 하니까.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 하룻밤은 어둡고 지리멸렬하지만 기억 하나라도 핥아먹으려면 다시 공연장에 서야 한다. 긴 밤을 지새려면 출근이니 급여니 보험이니 실업급여니 하는 단어를 가까이 둬야 하고, 그러고 나면 몸으로 비명을 지를 수 있는 기회가 가끔 온다. 정해진 규격만큼의 동작. 몸의 비명. 그런데 그게 행복하다면 행복해서 이러고 있다. 차오르고 따뜻한 평온 같은 행복은 아니다. 썩어가는 환부를 뜯고 도려내고 고름을 짜내는 기분이 좀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 짓거리가 좋은 걸. 내년까지는 이 일을 어떻게든 해보려 한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80일의 생존일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