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새벽 세 시 반에 나왔다. 개를 데리고 나왔다. 맥주 네 캔을 샀다. 공원에 갔다.
4분에 한 캔을 들이켰다. 나머지 한 캔을 20분에 걸쳐 마시다 배수구에 토했다.
담배를 폈다. 내가 쫒겨난 무용단의 티셔츠를 입은 채. 몇 대를 폈는지 모르겠다.
요새 하루가 잘 안 간다. 신기하게도 날짜는 정말 잘 간다. 하루하루는 안 가는데, 날짜는 정말 뻔한 말이지만 쏜살같기 그지없어 벌써 6월을 코앞에 뒀다.
잠이 안 온다. 다른 사람들이 잘 나가는 인스타그램을 본다. 난 아직도 뭘 해야 하는지, 뭘 하고싶은지도 모르겠는데.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쫒겨나고 나니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춤. 음악. 이제 남은 건 글뿐인데, 이건 실망할 일이 아직 없다. 그 어디에도 투고한 적이 없으니까. 음악과 춤은 그래도 삶을 내던지려는 시도 정도는 해 봤다. 너무 시시하게 끝나버렸지만. 그 어떤 결과물도 남기지 않았지만. 아. 하나 있긴 하다. '예술의 전당' 메인 무대 한 번.
하지만 일반인 신분이었다. 그 이후로 무용에 대한 꿈을, 목표를 뒀다. 오해로 인해 한순간에 쫒겨났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 달 반을 보냈다. 친구였던 사람은 내 성격만큼 지랄맞은 건 없다며, 네가 망하면 모두가 아주 즐거워할거라고 했다. 오늘 새벽 네 시, 미안해 , 라고 연락을 넣었다. 300만원을 대가 없이 내가 나아지길 바라며 상담비를 지원했던 친구.
하루가 너무 가지 않고, 시간이 너무 안 가서 유튜브를 틀었더니 부정적인 사람을 멀리하라는 유튜버의 이야기가 들렸다. 그대로 둑이 터져 나갔다. 담배를 입에 물고 그토록 싫어하던 부친을 닮아간다고 조소하며 편의점에서 맥주 네 캔을 샀고, 위에 말한 행동을 했다. 아무도 없는 공원 정자에 앉아 비를 구경했다. 개를 구경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느라 정신없다. 얘는 나 없이는 어찌 살려고.
그리고 집에 돌아왔다. 아까 본 만화와 드라마에서는 각각 I'm a pit, 이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정말 구덩이야, 엉망이야. 남의 도움도 나의 노력도 모두 보이지 않는 구덩이로 빠져든다고. 그러게. 나의 우울함만 늘어놓을 게 뻔해 남에게 연락도 잘 하지 않는다. 웬만해선.
많이 존경하고, 매우 반가운 작가 한 분께선 이런 얘기를 하셨다. 스스로를 덜 괴롭히며 살라고. 항상 감사한 분이다. 생각도 좀 줄이라고. 친구를 비롯해 이 작가님에게 실망을 끼칠까 속상해졌다. 이 구덩이는 쉽게 메워지질 않는데, 내가 좋아하던 유튜버는 부정적인 사람을 멀리하라 하고, 내 친구는 나를 더는 못 봐주겠다 하니 다른 사람들은 시간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엊그제는 남은 친구 중 하나를 만났다. 근교에 가 국밥을 포장해 오며 고맙다고 했다. 몇 달만에 만난 친구는 뭐 그런 걸 얘기하냐, 했지만 서로 알 터다. 그는 점점 멀어지다 결혼을 하고, (그의 말에 따르면)안정적이지만 빠듯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 것이라고. 그럼 나는.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삶이 참 엉망이다. 누군가에게만큼은. 내게만큼은 그럴싸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위에 말한 유튜버는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는 자기가 좋아하는 색의 니트를 입었다고. 나는 옷이란 옷엔 무용단 마크를 다 다리미로 박아넣어서 옷을 갖다 버리면 입을 건 속옷밖에 없어진다.
술이 늘었다.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춤과 일에 따른 고통이라면,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그냥, 그냥 둘 다 늘었다. 내게 남은 건 뭘까.
뒤에선 개가 잠들었다. 우울의 자기복제는 멈추고 싶다. 말을 할 일이 없고, 기록하기도 꺼려하고 춤을 추기도 싫어했지만 욱여넣은 감정이 넘친다.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