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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Feb 03. 2023

별 거 아닌 일

매일 책을 조금씩 읽는다. 만화책이면 한 권을 다 읽기도 하고, 어렵다 싶은 책은 10페이지만 읽기도 한다. 매일 움직인다. 미용실을 걸어간다던지 자기 직전 팔굽혀펴기를 5개 한다던지. 물구나무를 세 번 선다던지.


사소한 일들이 쌓여 마음이 가난해지고 거덜났으니, 사소한 일들로 채워야 수지가 맞을 것 같아서 그렇다.


지인에게 칭찬을 했다. 욕심 있고, 그걸 실력으로 만드는 능력도 있다고. 곧 워크샵을 한다기에 관심을 보였다. 마치 갈 것 처럼 했지만 돈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한나절을 고민하고 돈이 없어 워크샵엔 참가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외의 말은 모두 진심이라 사족을 붙였다. 백날 말하는 것보다 워크샵에 나타나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을 테지만 수업료보다 얕은 내 통장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상대가 승낙하지도 않은 일을 거절하려고 애만 태웠다. 별 거 아니다.


친구가 연락이 끊겼다. 한국에서 내로라 하는 어려운 시험에 붙은 후. 함께 음악을 하던 지인을 만날 일이 있었다. 누나에게 전화해볼까요? 라고 했다. 에이 됐다, 하면서도 곁눈질로 궁금해했다. 전화는 연결됐다. 바쁘다고 했다. 그렇구나. 지인은 눈치없이 내가 앞에 있다고 했다. 내가 카톡도 전화도 문자도 두어 번씩은 남겼다는 얘기는 구질거려서 안 했는데. 얼굴이 한 번쯤 보고 싶긴 했다. 내게 생긴 나름 좋은 소식도 얼굴을 보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럴 일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일 아니다.


관계에도 있는 유통기한이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집은 시끄럽고 불쾌하면서 동시에 내가 누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사실이 종종 나를 힘들게 한다. 밖에 곧 나가겠다 선언한 나는 나갈 돈이라는 것이 이렇게 수시로 생기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조금 더 집에 있었을까 싶었다만, 집 안에도 태풍이 친다는 걸 안 이후부터는 그래도 내가 감당한 만큼의 불행을 돈으로 지불하고 싶어졌다. 태풍의 눈은 술을 놓지 못한다. 몇 주 전 친척이 술로 인한 지병으로 떠나셨던 날도 소주를 사 오는 모습을 봤다. 태풍이 언제 불 지 모르는 집에 암막커튼과 이불 한 채는 내게 영원한 보호를 약속하지 않는다. 그래 별 거 아니다.


소화되지 않는 양가감정을 느낀다. 삶이 가난하다. 마음이 거덜나서 가난하고 통장이 가난하다. 머리의 능력을 모두 쓴 것처럼 산산조각나 흩어진 것 같아 책을 길게 읽지 못하고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 잘 사는 지인은 돈은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자기처럼 대충 취업하라고 했다. 4천만원짜리 차를 부친에게 받아 타는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밉지는 않다. 좋지도 않다. 사람을 만나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혼자 방에 있을 때 짓눌린 기분이 교차한다. 단골 술집은 출입을 관뒀다. 주인에게 있어 나는 단골이지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별 일 아니다.


내가 집을 떠나면 엄마를 놓고 가야 한다. 강아지를 놓고 가야 한다. 엄마는 내가 처음 떠난 주소라는 구절이 적힌 시가 있다. 나도 아마 그럴 것이다. 엄마는 요새 손이 항상 불편해서 집안일을 잘 할 수 없다. 일을 구하고 싶어도 손이 망가질까봐 그러지 못한다. 항상 뜨거운 물에 손을 넣고 나아지길 바라는 엄마는 저온화상을 입었다. 비닐 장갑을 낀 채 물에 손을 담그고 있는 엄마를 보면 수비드 조리를 스스로 한다는 생각을 했다. 몇 번이고 병원을 가라고 해야 엄마는 병원을 간다. 몇 번의 기준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2달 정도를 얘기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식으로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에 있던 무언가는 다행히 암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가락도 아픈 걸 그저 참고 '유튜브에서 봤어 이렇게 하래' 라더니 더욱 악화되었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다. 내가 떠나면 나는 항상 무언가 놓고 온 기분이 들까.


돌아올 집이 있다는 건 좋은 문장같지만, 돌아오고 싶지 않은 집도 있기 마련이다. 만으로 서른, 나는 어디에도 내가 속해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붕 뜨면 차라리 낫지. 물도 아니고 바다도 아니고, 늪에 빠지면 이런 기분일까. 물에 빠진 적도 있고, 바다에 빠져본 적도 있다. 물 좀 먹어본 사람으로서,(그리고 둘 다 별 탈 없이 살아나온 운 좋은 사람으로서) 물하고 바다는 빠질만하다. 수영장은 바닥이 있으니 차고, 또 차고 하면 머리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다가 어찌어찌 나올 가능성이 있다. 바다는.. 비슷한데, 드러누워버리면 된다.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서 구해달라고 했었다. 쪽팔린 건 둘째고. 그래서 나는 살면서 빠진 무언가로부터 그럭저럭 잘 생존했다. 하지만 삶이 늪같이 느껴진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수영장 바닥보다, 바다의 파도보다 찐득하고 더 눅눅한 그 무언가. 친구들은 모두 다른 지역에 가 버렸다. 이십대 초반 메마르고 예민한 성격 탓에 점으로만 남은 친구들은 서로 친하지 않아 나는 세 명 이상의 사람이 모이는 자리를 가는 것이 언제나 황망하게 느껴진다. 함께 음악을 했던 사람들과도 학을 뗐으며(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으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무섭고 지치고, 상대도 어려워하는 걸 느낀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내 자리란 도대체 존재하는 것 같지를 않으니 나는 이제 어디에서 나다울 수 있는지 고민이 든다. 이따위 고민에 깎이다 보면 사람이 점점 말라비틀어져 사소한 일을 머릿속으로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가령 잠깐 짐을 챙기러 탈의실에 다녀온 사이 열댓 살 정도 먹은 아이가 내가 운동을 위해 깔아놓은 매트를 발로 툭툭 차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아' 한마디 하고 그냥 가버린다던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5분 넘게 서서 기다렸는데 아무렇지 않게 새치기를 당한다던지. 내가 가진 입지와 위치는 정말로 어디서든 하잘것없어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이런 일들, 이런 마음의 구석에 쌓이는 일들은 나를 점점 늪으로 빠지게 한다.


나의 우울로만 글자를 채워넣는 일이 지지부진하고, 보는 이를 지치게 한다는 걸 역으로 느껴봐서 안다. 정말이다. 그럼에도 종종 나를 챙겨 주고 연락해주는 지인들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들을 실망시킬까 무서운 것도 진심이다.


별 거 아니다, 별 일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그나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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