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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Jan 18. 2023

창고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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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다시는 열어보지 않을 창고 정도로 취급하는 일이 많아서, 일어난 일이나 들었던 생각들을 아무렇게나 쑤셔박아둔다. 그리고 회피한다. 다시는 근처도 가지 않으려 한다. 문을 잘 잠근다고 잠그는데, 들어간 박스들에는 냉장보관을 필요로 했던 무언가도 있고 처리를 해서 버렸어야 할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것들도 있어서 결국 틈새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악취를 풍기며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그 창고를 다시 열 일만 없으면 그나마 대강 지나가는 편이다. 창고 앞을 닦으면 그만이다. 창고는 절대 넣어야 할 게 있을 때 말고는 열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나를 향해 무슨 일이나 어떤 말이 생겨 창고 안의 내용물이 엉망진창 난장판으로 쏟아져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나는 그냥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침잠한다.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의사에게 매일 연습을 나가겠노라 했던 것도 지키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한 것도 띄엄띄엄 지킨다. 그렇다고 혼자 편안하지도 않다. 편안하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지도 못하고, 게임을 즐겁게 하지도 않는다. 그저 누워 전기장판이 불쾌하리만큼 찝찝한 온도에 설정되어 식은땀이 났다가,줄이면 발이 시린다거나 하는 그딴 생각만 하다가 하루를 내다버리는 일이 일쑤다. 잠만 자는데 잠도 잘 못 잔다. 개같은 꿈을 꾸고 두 시간에 한 번씩 깬다.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다섯 시간 하다가 간다. 물을 마셔야 하는데, 하는 생각 여섯 시간만에 물을 마신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나는 일평생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나인 걸 회피해 버리는 인간이었고 모든 기능은 멈추거나 오작동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아무도 날 부르지 않는다며 투덜대지만 연락이 막상 오자 거절하고, 머리칼이 기름져 뭉치는데도  '볼 사람도 없는데,' 하며 누울 때마다 신경쓰이는 머리를 감지 않는다던가. 나는 나의 실체를 알아보는 일이 지독히도 무서워서 도망친다. 내가 연애를 했더라면 아마 상대는 고생을 꽤나 했을 것이다. 내가 나를 견딜 수 없을 때마다 상대를 찾았을 테니까. 타인은 지옥이란 말이 괜히 있을까. 내가 나로 사는 것도 지옥인데. 지옥의 확장판은 그 누구도 구매하고 싶지 않은 법이다.


금요일엔 병원에 가야 한다. 부끄럽고 할 말이 없다. 나중에 이 도시에 돌아오면 선생님이 공연을 보러 와 주세요, 따위의 말을 몇 주전에 '해야 할 말' 리스트에 넣어둔 게 우습기 짝이 없는데 막상 웃음은 나지 않는다. 왜냐면 사실과 현실은 안경을 고쳐 쓰며 할 일을 빠릿하게 하는 내가 아니라 기름에 절인 머리와 마르디 마른 피부를 가진 깡마른 내가 감내해야 하는 거니까. 볼품없는 모습으로 꿈을 말하던 내가 어찌 보였을까 싶다. '웃음이 난다' 라고 적으려다 미동도 안 하던 입꼬리가 생각나 그냥 관둔다. 


이젠 나이도 적지 않아 삶을 몇 각형으로 두는 일들에서 여러 가지가 힘에 부침을 느낀다. 의욕도 떨어지고, 체력도 떨어진다. 나는 늙고 낡아만 가는데 그 어떤 것도 이룬 업적이 없다. 오늘도 창고 정리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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