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키는 일
나를 글에 녹여내다 보면 많은 작가들이 그렇다고 했듯 나도 어디까지 나를 드러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허용선인지 헷갈린다. 힘들었던 일이나 사건을 글에 녹여 나를 풀어낸다. 며칠 괜찮고, 그런 삶을 산다. 가끔은 써 둔 글을 들키고 싶은 날도 있고, 읽으라고 링크를 걸어 놓기도 한다. 순간은 기분이 좋다. 누군가는 읽겠지?
그러다 글이 현실을 침범해 들어오는 날이 있다. 글에 썼던 무언가가 다시 역류해 나를 찌르는 것이다. 나의 의지나 의도와는 무관하게 오해를 살 수 있는 글이 있다. 몇 번 그랬다. 연락이 온다.
나는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엇을 쓸 수 있고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했다. 친구도 많지 않은 나는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이 흰 화면밖에 없는 것 같은데 내 주위에 나를 직접 아는 이들이 연락을 하면 숨이 턱 막힌다. 잘 모르겠다. 내가 못 쓸 글을 쓴 건지 아닌지부터 시작해 이 글이 어디의 누구에게까지 퍼졌는지도 알 수 없다. 물어볼 수도 없다.
모친께선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는 것을 추천했다. 일을 하느라 바쁜 친구는 식당 알바를 마치고 전화를 하면 피곤한 기색이 목소리에 묻어난다. 나도 솔직히 사람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했다는 걸 안다. 항상 힘든 친구의 일은 내가 말을 몇 마디 들어준다 해서 나아지지 않을 테고, 내가 하소연을 한다고 해서 내 상황이 좋아지지도 않는다. 더 전화할 수 없다 싶었다. 알바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엔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단골 가게는 나의 알콜 의존증만 강하게 하고 내가 보기 싫은 사람들을 계속 볼 수밖에 없게 했다. 시끄러운 음악의 볼륨을 줄일 수도 없다. 통장은 말라 가고, 표정은 푸석해진다.
집에서는 언제든지 방해받을 수 있는 방이 있다. 싫어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문은 고장나 잠기지 않는다. 애초에 문을 잠그면 뭐 켕길 게 있어서 문을 잠그냐고 하는 집이다. 이런 방이고 집이고 싫어 나간 곳이라고 편할 리 없다. 아까 말한 가게처럼.
나의 3평 작은 방은 내가 나를 견딜 수 없을 때 도망칠 수 있는 책과 컴퓨터와 빈 종이와 펜, 침대와 암막커튼이 있다. 그나마 내가 덜 불편해하는 공간.
문이 열렸다가도 닫히는 경우가 있지만, 밖에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방이 그나마 낫다. 하지만 그 공간조차 내가 내 돈 주고 산 게 아니라 가족 구성원으로서 어쩌다 얻은 것이기에 나는 그냥 살아 있어서 막막하고, 무기력에 압도되는 나를 조금이나마 풀어내 설명하려면 이 방에서 뭔가 끄적인다. 결국 뭔가 쓴다. 뭔가는 쓰게 된다. 정신 차려보면 쓰여 있다. 아, 써야지 한 날은 별로 없다. 술 마셔놓고 숙취에 꿀럭거리면서 울컥대는 걸 쏟아내는 것 마냥.
아주 어려운 시험에 붙은 지인은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 또 어떤 지인은 나를 차단했다. 나도 안다. 뭔가 결여되어 있거나 무언가는 과잉이어서 나는 그렇게 달가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을 좋아하는 나지만, 나이도 있다 보니 내 맘대로 인간관계가 안 된다는 건 조금 안다. 관계에 매달리지 않고 바라는 걸 새로 찾아야 했다. 내가 쏟아내는 울컥댐은 이런 이야기를 포함한다. 수백 번 생각하고 수십 번 머릿속에서 써보고 지운다. 그러다 쓰고 다시 지우거나 서랍에 넣고 다시는 쳐다보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삶은 그저 조용히 하루하루 반복되는 연습을 견딜 정신, 그리고 돌아와 발 시리지 않게 누워 있을 곳 정도, 무엇보다 내가 원치 않을 때 그 누구도 나를 부르지 않는 곳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그리고 가끔 (사실 자주) 힘들면 투덜거릴 일기장과 단어를 잘 벼려낸 브런치라는 이 흰 공간이었다. 내가 나로서 좀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
하지만 이제는 회의감이 든다. 의문이 든다. 꾸준히 챙겨보던 어떤 매체를 보고 깨달았다. 매일 자기가 힘든 이야기를 하는 매체였다. 그 작품의 창작자의 힘듬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겠으나, 보는 사람이 지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그 작품을 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내가 쌓아올린 나의 작품이라 나를 보기 싫어진 사람들이 꽤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멀어진 것이 아닐까. 그렇게 내 글에서 내가 멀어지고 읽는 이들이 멀어지는 게 아닐까.
쓰지 않으면 고이고, 고이면 썩는다 생각했는데 쓰는 것으로 사람이 떠나고 안 그래도 가난했던 내 마음이 거덜나는 걸 느낀다.
나는 대단하고 잘난 작가가 아니다.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 글을 조금 쓰게 되었을 뿐인데, 며칠 전 날 작가로 소개를 해 주신 지인이 생각난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뛰어난 통찰력도 신선하고 통통 튀는 표현도, 깔끔하고 정돈된 문장과 문단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이름은 일단 버리기로 했다. 별 생각 없이 본명으로 써왔던 글은 더욱 투명하게 돌아왔기에.
이 글마저 누군가는 읽었으면 하고 누군가는 읽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어디서부터 예술의 영역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우울을 기록하고도, 광기를 기록하고 그려내고도 예술로 남는 이들이 있고 아닌 이들이 있는데 나는 그 경계선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안다 한들 그 가이드라인에 맞추어 나를 재단해낼 자신이 없다.
쓰는 데에 회의감이 인다는 이야기를 쓰다니, 이런 모순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