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연산 Oct 27. 2023

나는 신경 안 써,

보통은 거짓말이지만

I don't give a fuck,  랩을 하던 때에 정말, 정말 많이 들은 문장이다. '난 좆도 신경 안 써'라는 뜻.

반면 6여년간 랩을 하며 난 저 문장을 별로 입 밖으로 내 본 적이 없다. 나는 거의 항상 신경쓰이는 게 너무 많았다. 맘같지 않은 인간관계, 개인사, 가정사, 걱정,미련, 집착 등. 나는 차마 '신경 안 써' 라고 말할 수 없었으니까. 어느 정도의 허세도 랩이나 힙합의 문화라면 나는 그 문화에 녹아들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면 '난 신경 안 써'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아니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자가 날 좋아하든 말든 신경 안 써' , '헤이터들 x도 신경 안 써', '나 돈 버는거? 랩에 몰두해, 신경 안 써'. 내가 랩을 하는 6년간 들은 "신경 안 써" 라는 말은 자신의 불안을 나타내는 반증이었다. 연애가 불안한 사람,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 자기 스타일에 확신이 없는 사람들. 랩이 끝나고 나면 참 많은 얘기들을 들었다. 남의 시선 아돈 기버 뻐억. 그만큼 신경을 쓰고 있던 그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몇몇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일로 빠졌다는 것 정도는 안다. 


나는 신경이 쓰이면 말을 하지 않는다. 한 30번쯤 삼키다가 신경이 쓰인다고 말한다. 그렇게 한 번, 한 번씩 하다 보면 그것도 꽤 많은 신경이 쓰인다, 를 말하게 된다. 나를 그렇게 드러내서는 나의 손해라고 친구와 지인들은 조언했지만, 억누르는 데엔 한계가 있었고,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고 허세를 부릴 정도의 깡도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가진 돈이 신경쓰이고, 애인 없는 나의 삶이 신경쓰이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세월이 불안하다. 우울증 약을 먹는 내가 신경쓰인다. 


진정으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애초에 마음 한구석에도 존재하지 않을 테다. 그럼 말할 일도 없을 터다. 누가 굳이 묻는다면 아,그거 별로 신경 안 써요. 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엊그제는 혼자 술을 한 잔 마시러 갔다. 누군가 내게 친한 척을 했고,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나를 아는 게 신기해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그는 내 기준엔 하나마나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연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굴 골라 사귈지 하는), 내 삶과는 1억광년쯤 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비밀을 하나 얘기했는데, 듣는 내내 영 불쾌했다. 여기 적진 않겠으나,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는데 그가 근처로 자리를 옮기더니 내 조언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별로 한 말이 없다. '그건 본인이 제일 잘 알겠죠?' 정도의 말만 몇 번 했을 뿐. 그리고 그는 그의 고민에 대해 이제 절대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거짓말. 신경이 안 쓰이면 거기서 말을 삼키거나 이미 머릿속에서 휘발되었어야 한다. 여하간 취해서 내게 치대는 그가 SNS계정을 묻기에 뚱하게 '안 돼요' 라고 대답했다. 


신경을 쓴다는 건 마음 한구석에 뭔가 있다는 것일 테다. 그게 뭔지는 사람마다 또 다를 거고. 나는 타고나길 그렇게 다정하지 못하면서 오지랖이 넓은 모순된 인간이라 신경이 쓰이는 일이 참 많다. 누군가에겐 무관심을 넘어 멀리하고 싶을 때도 있고,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가 치대는 일도 많고. 이런 데에 신경이 쓰인다. 마음이 쓰이고 조금씩 깎여나간다.


무신경하고 안정된 사람이 되고 싶다. 아니면 충분히 다정한 사람이 될 만큼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어느 삶이나 장단점이 있겠지만, 나는 누가 되었든 내가 좋아하게 되면 남녀를 불문하고 담뿍 마음을 주고 결국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하고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 신경을 쓰지 않고도 잘 지내고 싶다. 쓰다 보니 결국 내가 신경쓰는 건 인간관계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애정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관계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시덥잖은 이유로 멀어지거나 하는 것도 안다. 그런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말랑한 마음가짐을 갖거나, 아니면 아예 튼튼하고 견고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어렵겠지만, 신경쓰지 않음의 미학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 경지에 다다를 수 있으면 한다.


건강하게 신경쓰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9월이 지나면 깨워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