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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May 07. 2024

꿈도 없이 살다

꿈도 없이 잔다. 깨면 오후 다섯 시다. 나가서 담배를 한 대 피고 돌아온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뭘 안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컴퓨터를 키고 게임을 한다. 효과는 언젠간 떨어지기 마련이다. 머리감기, 샤워, 세수 등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조차 하지 않고 하루에 정해진 일이라고는 약 먹는 일밖에 없는 사람처럼 약을 먹는다. 심지어 그조차도 거르곤 한다. 취침 전 약은 거르지 않는다. 안 그러면 잠드는 데 너무 오래 걸리니까.


사는 재미가 없다. 존재론적 실존주의가 어쩌고, 허무가 어떻고 이렇게도 표현하는 모양인데 난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글도 춤도 그림도 무엇도 하지 않고 그냥 살아있으니까 살아만 있는다. 삶의 의미를 찾을 필요도 목적도 느끼지 못하는 둔감한 정신은 사실 자극을 바라지도 않는다. 


담배는 좀 줄었다. 하루 한두 개피. 술도 많이 줄었다. 그나마 하루에 잘 챙겨먹는 건 약 정도인 셈이다.


최근엔 서울을 다녀왔다. 생전 처음 코스 요리를 사서 지인들에게 대접했다. 영수증을 받아들고 세 번쯤 다시 봤다.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밥은 맛있었지만 날 포함해 세 명에게 아무 댓가없이 사주기엔 솔직히 무리가 있었다. 집에 온지 며칠이 지나 밥을 먹다 나온 가시를 책상 위 종이에 뱉고 보니 접때의 영수증이었다. 새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버렸다.


해외에 나갈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예술의 전당은 다시 오르지 못할 산이라는 걸 (불가능이란 없다지만, 열려 있다고 해서 내가 다시 올라갈 수 없는 무대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알지만 그래도 그냥 바래 봤다. 한국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집단에 속해 있는 지인, 당신께서는 언어가 된다면, 그리고 나의 계획이 서울에 올라와 춤을 추고 오디션을 보고 수업을 듣는 거라면 차라리 그 돈으로 3개월, 유럽을 갈 것을 제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고, 시기도 늦었으며, 한국에서는 무엇보다 네가 더욱 성공하기 어렵다고.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고. 그는 나를 신경써주는 사람 중 하나이고 '뭐든지 잘 될거야 너는 노력하고 빛나니까'(물론 노력도 안하고 빛도 안 나지만)따위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그의 조언 역시 타당성이 있기에, 돈을 모으는 계획은 유지하되 해외로 나가는 걸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돈이 없다는 건 걱정과 불안을 불러온다. 내가 돈이 없으면 무엇을 못 하고 부족하게 살아야 하는지 안다. 그런데 외국에서, 라는 말머리를 붙인 걱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안과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보험은. 집은. 외로움은. 밥은. 인종차별과 묻지마 폭행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내 상상력과 결합하며 불안은 아직 초석도 다지지 않은 계획에 정말이지 커다란 불안을 드리우고 있다.


어떻게 살 지는 모르겠다. 활로가 될 수도 있고, 돈낭비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계획한 내년 초까지 돈을 모은다는 보장 역시도 없다. 내가 가장 확실히 아는 것은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것뿐이다. 


요새는 몸을 너무 안 써서 그런지, 앉으면 자꾸 쪼그려 앉게 된다. 허리나 코어에 힘이 너무 없고 근육이 빠진 탓이다. 의자에서도 쪼그려 앉아있다 보면 허리에 무리가 가 허벅지와 다리가 저린다. 몸이 쪼그라들어 정신이 함께 좁아지는지, 좁아진 정신이 몸에 영향을 미치는지 둘 다인지는 잘 모른다. 


외국에서 온 친구에게 '나는 만약 가더래도, 탑승수속 밟고 비행기 타는 그 순간까지도 걱정과 불안이 멈출 것 같지가 않아' 라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거라는 얘기가 돌아왔다. 


꿈도 없이 자는 인생이 꿈이랍시고, 1년만에 1시간 만난 사람의 말을 듣는 건 맞나.


생에 있어 모토는 아는 게 힘이 아닌, 모르는 게 약이랬다. 그렇지만 그 모르는 게 약인 것도 내가 어느 정도 그 범위와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무지였다. 계획을 생각하는것만으로도 마음에 구멍이 나고 불안과 걱정이 쏟아들어져와 잠기고 물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모른다. 



누군가는 내게 글을 계속 쓰기를 권유했다.


누군가는 계속 춤을 출 거면 해외를 나가길 권유했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주위 세상은 너무 별천지고 빠르게만 돌아가는데 와중에 누구는 결혼을 하고 취업을 하고 퇴직을 하고 재취업을 한다.


등을 떠밀려서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허풍을 떠는 짓이든 하긴 해야한다.


이유나 당위성도 잘 모른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다. 걱정은 그 다음에.


가서 약 먹고 보험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마음의 흉은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가서 부딪쳐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나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곧 갈 일을 '그래도 가기 싫다' 와 '그래도 일을 해야 라면이라도 먹지' 로 버틴다.


나를, 정말 나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주위에 개와 가족밖에 없는 걸 알아버렸기에 그나마 미련이 덜 한채로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사랑을 구걸하고 관심을 갈구하든 나는 그저 그들의 인생에 있어 부담이나 성가신 가시 정도인 듯하니, 결국 나를 구하는 건 나밖에 없으려니 한다.


빠져 죽을지 물가로 갈지 뭍에서 머리도 안 감은 채 썩어문드러질지는 이제 모른다. 알 수 없다.


그래도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뭐라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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