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반올림한다_1. 나는 누구인가
어릴 적부터 모든 걸 잘해야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배웠다.
모든 과목에서 1등을 하는 것이 최고라고 여겨졌다.
무턱대고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 했다.
객관적으로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나의 노력에 비해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방송반, 연극부, 밴드부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참여해보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반대를 이기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제일 후회스러운 선택이었다.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공부를 잘하는 친구, 특출 나게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도 있었다. 본인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친구들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나는 왜 00처럼 하지 못할까?"라는 나 스스로에 대한 질문은 끝이 없었다.
치열하게 나에 대해 고민해보고 생각해보지 못한 채 눈앞의 선택에만 급급한 삶을 살았다.
마흔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에 와서야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다니...
이제 와서?
아니면
지금이라도?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꼭 나의 커리어와 관련지어서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 밖의 것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 부부가 유독 서로 하겠다고 하는 것이 하나가 바로 운전이다.
장거리 운전이 부담스럽거나 귀찮고 싫어서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서로 하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 같지만 옆에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는 운전하는 편이 훨씬 더 시간이 잘 가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의 그런 면을 내심 좋아라 하는 것도 같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거리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필요해서, 혹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의 떠남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운전이 아닐까 싶다. 잘 곳이 있고,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을 시기에 나 혼자 아이들과 훌쩍 떠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운전이었다.
나는 떠남에 진심이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떠남에 진심일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운전을 즐기는 사람이었던 것.
돌아가신 친정아빠는 사진관을 운영하셨더랬다. 아빠의 유품 가운데 N사, C사의 필름 카메라를 최근까지 간직했었다. 이것도 물려받은 것이었을까? 사진 찍는 일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2004년,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기 전이라 무거운 필름 카메라를 들고 유럽 신혼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친구들과 가볍게 떠나는 여행에서부터 해외여행까지 고집스럽게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경직된 자세와 부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바라보게 하는 사진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의식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그냥 그저 그런 장면을 카메라로 담다 보면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때의 분위기와 기분이 그대로 담긴 사진들이 나오곤 한다.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뒤로하고, 가벼운 디지털카메라로 넘어갔다가..
큰 아이가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면서 다시 무거운 카메라를 구매하고 다시 사진에 대한 열정을 조금 되살려본다.
사진은 그냥 가벼운 취미다. 그렇다고 많은 돈을 들여 취미를 전문화시키려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내 아이들의 순간순간을 좀 더 리얼하게 간직하고 싶었고
함께 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그냥 흘려보내기보다는 기억할 수 있는 무언가로 남기기 위함이다.
나의 기억력이 나빠서일 수도, 세심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봤던 영화의 감명 깊었던 장면이나 제목을 오래도록 기억하지 못한다.
야구소년의 시합장에서 한번 사진을 찍을 때마다 최소 400여 장 정도의 사진을 찍는다.
역동적인 모습을 카메라의 빠른 셔터 스피드로 담다 보면 우리 팀이 아닌 다른 팀 선수가 찍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컴퓨터에 사진을 정리하다가 너무 멋진 사진이 찍혔는데 상대 팀인 경우 물어물어 연결이 된 경우 개인적으로 사진을 전달한 적도 꽤 있다. 그냥 삭제한다 한들 아무도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안녕하세요~ 혹시 지난번에 저희 아이 사진 찍어주신 어머님 맞으시죠?"라는 인사를 받을 때 나는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적어도 그 사진을 보며 그 순간만은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생각하면 그런 오지랖은 부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찍은 사진을 누군가가 소중하게 간직한다고 생각하면 참 즐겁다.
하나에서 둘이 되었고, 둘에서 셋, 셋에서 다섯이 되었다.
코로나로 많은 것이 멈췄고, 우리 가족의 포토북도 2019년에 멈춰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17권의 가족 포토북을 완성했고, 2020, 2021은 아직 정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 가족의 역사가 끊겨서는 안 될 일, 하루빨리 2년 치 포토북 작업을 시작해야겠다.
아이들은 아직도 가끔 포토북을 꺼내다가 보며 낄낄거리고 과거를 추억한다. 그 모습을 보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좋아서 한 해 두해 해온 일이 이렇게 뿌듯한 일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매년 1권의 포토북을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매년 1권의 가족 포토북을 만들어 갈 예정이다.
야구장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야구 태교를 통해 태어난 아이가 야구선수의 꿈을 꾸고 있다.
현재 유명 프로야구선수의 스승이자, 작년 큰 야구소년의 담임 선생님의 바람과 응원에 힘입어 선생님의 말씀처럼 브라운관에서 우리 집 야구소년이 야구하는 모습을 보면 좋겠다.
그때를 대비해 야구소년의 성장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며 사진으로 남기는 중이다.
누군가의 순간을 포착해 영원으로 남기는 일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다.
앞에 쓴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를 보며 성장하는 아이들과 나의 이야기를 통해 함께 성장하며 함께 잘 사는 일에 순간을 영원으로 남겨줄 사진 한 장을 더해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