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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매니저Y Dec 13. 2021

엄마는 아들로 성장한 경험이 없다

아들의 머릿속이 궁금한 이유

도서관에 가면 유독 '아들 잘 키우는 법'을 다룬 책들이 분야별로 꾸준하다. 학습, 사춘기, 성교육, 정서, 대화법, 관계법등 다양하다. 그런데 딸을 키우는 법을 다루는 책은 현저히 적다.


아들 엄마들의 독서량이 더 많아서일까?

아들 엄마들이 더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아서일까?


아들 키우는 게 유독 힘이 들어서?

그렇다고 딸이라고 특별히 더 쉽다거나 아들이라고 절대적으로 더 어렵기만 한것은 아닐거다.


아무래도 엄마에게 아들은 딸보다는 낯선 존재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남자 형제가 있었거나, 남녀공학에서 10대를 보낸 경우라면 아들의 이해 불가한 행동들에 대한 경험치가 조금 더 있을 정도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여자 사람인 엄마가 딸로서 성장한 경험에 비추어 "내가 어릴 때는 이랬었지~"하며 참고할 수 있었겠지만, 어떤 엄마도 아들로서 성장한 경험이 없다.


엄마는 아들이 궁금하다. 도서관에 아들 관련 책이 많은 이유다.


아들 엄마는 왜 습관적으로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나?

한 번 말해서는 절대 듣지를 않고, 한 번의 말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일이 드물다.

하루에 몇 번이나 참을 인 (忍) 자를 속으로 새기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말'이 되기도 하고, '소음'이 되기도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순간을 모면해야 하는 그들에게 "네"라는 대답은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소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 아이에게 "내 말 안 들리니?"의 뜻으로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 것이다.


내 건강을 생각해서 감정을 빼고 3번까지는 반복해서 말하기로 했다. ㅠ.ㅠ

다행히 3번 안에는 움직인다. 그걸로 됐다.


엄마는 왜 아들이 어려운 걸까?

나는 버럭 엄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무리 힘들다 해도 엄마가 아들을 제어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목소리만 커질 뿐 절절매며 아이의 눈치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애가 욱해서 감당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면 어떡하지의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큰 아이가 5학년이 될 무렵에 나는 아들에게서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엄마의 말에 폭주하듯이 터져 나온 것이다.  

또, 버럭 엄마와 완전히 틀어져 마음을 닫으면 어떡하지의 심리도 있다. 이 부분은 딸 엄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들 한다.


남자들은 서열을 정하려는 무의식이, 여자들은 서열보다 관계를 다지는데 더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릴수록 가족 안에서도 자신의 서열을 확인하고 더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고 한다.


세 아이들 사이에서 자기들끼리 정해진 서열을 존중한다.

그리고 아들 눈치 보지 않고  버럭 엄마 캐릭터를 당당하게 밀고 나가기로 했다. 우려했던 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필요성은 알면서도 왜 하지 않는 걸까?

내 발에 걸려 내동댕이 쳐지는 물건을 보면 왜 주울 생각을 못하는 걸까?

화장실 변기 커버를 올리거나 앉아서 소변을 보라고 수없이 말하는데 왜 달라지지 않는 걸까?

한 공간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지 못하는 걸까?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는데 갑자기 상황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여자사람인 엄마는 불편한 많은 것들이 남자 사람인 아들에게는 전혀 불편한 요소가 아닐 수 있다고 한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지저분한 바닥을 만들어놓고, 소변이 묻어 냄새가 진동하는 변기를 사용하게 하게 놔두었어야 할 일이다.

즉 목표지향적인 성향 탓에 아들들은 자기가 납득이 가거나 목표를 설정하면 적극적으로 돌변한다든 것이다.


집안일에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아침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는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세 아이 모두 각자의 아침메뉴를 스스로 정하고, 각자 챙겨 먹는 것이 우리 집 아침 풍경이다. 각자의  역할이 생겼고, 분업을 하기도 하고, 서로 돕는 일도  왕왕 발생한다.



내가 변하는 만큼 아이들도 변한다.

1년에 걸쳐 정착한 우리 집 아침 풍경이 좋다. 여기서 더 바라는 것은 욕심일 것이다.


아들이기 때문에 더 힘든 부분도 있지만, 아들이 더 수월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아들이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아들을 몰라서 힘든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여전히 내가 바뀌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할 일들 투성이지만,  아들로 살아보지 않은 엄마가 아들을  키우기 위해 내가 먼저 알고자 노력하니 아들도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일방적이고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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