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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매니저Y Dec 07. 2021

내 인생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아들만 셋

얼마 전 뉴스 기사에서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34년 만에 다섯 쌍둥이가 태어났다는 기사와 함께, 다섯 아이의 탄생에 함께한 서울대학교 교수님의 사진이었다. 우리 집 쌍둥이들도 그 교수님 손에서 태어났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산모들에게는 명의로 소문나신 분.


다섯 쌍둥이


군인부부라는 다섯 아이의 엄마 아빠. 어쩌다 일곱 가족이 된 당신들에게 큰 응원을 보내고 싶다.




손바닥보다 작은 두 아이의 얼굴을 마주한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둘이합쳐 5kg의 무게감 그리고 세 아이, 아들 셋 육아에 대한 부담감과, 걱정을 안은채 지속했던 임신기간 뒤에 만난 아이들에 대한 감정은 참으로 복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분을 감출 수는 없었다.


드디어 아들만 셋 엄마가 되었다.

2013년 9월 4일 생후 2일째


2013년 9월 3일 + 30 days

드디어 나 홀로 세 아이의 24시간을 나 홀로 시작해야 한다.


남편, 그리고 정일품(첫째) 잘 부탁해!!!!


육아와 집안일의 달인인 남편 덕분에 그리고 오랫동안 "나 홀로 쌍둥이 육아"에 대한 비주얼 싱킹 연습 덕분에 나름 순조롭게 잘 진행되는 듯했다. 남편과 순번을 돌아가며 쌍둥이들의 밤중 수유를 위해 불침번을 서야 했고, 6살 정일품의 유치원 등 하원과 쌍둥이들의 수유 패턴을 맞춰야 했으며, 팔이 두 개뿐인 것을 원망했어야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팔이 둘뿐이라 슬프다

쌍둥이 육아를 위한 나름의 노하우도 쌓여가고 있었고, 여전히 큰 마음을 먹어야 가능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정일품과 함께 외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여전히 좌충우돌 힘들지만 딱히 아들만 셋이라 더 힘든 점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렵게 시작한 나 홀로 외출에 빨간불이 켜지는 일이 발생했다.


내가 쓰는 쌍둥이 유모차는 앞에서 보면 한 아이만 보이기 때문에, 쌍둥이 아기들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당시 이런 스타일의 유모차는 어르신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쌍둥이 엄마를 걱정해주는 그분들의 그냥 던지는 말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나름 외출할 때 육아에 찌든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그래도 신경을 쓰는 편이었던 나였다.


슬슬 혼자 애 셋을 데리고 다니는 내 모습이 불쌍해 보이나?라는 자격지심이 생길 무렵이었다.


병원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짧은 커트머리에 거침없는 입담이 있을 것 같이 보이는 한 아주머니께서 위쪽 시트에 있는 아이를 보더니 

"아이고 귀여워라"...

"어~ 뒤에 한 명이 더 있네?" 

그리고는 한 쪽손을 잡고 있는 6살짜리 큰 아이에게

"네 동생이니?"


"네 쌍둥이 남동생이에요"라고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큰 아이. 그러자 이어지는 아주머니의 말씀

"어머~~ 너희 엄마는 아들만 있어 어쩌니? 너희 엄마 인생은 망했네 망했어... 딸이 있어야는데..."

타인의 그 말과 말투는 10년이 지나도 또렷하고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고,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으며, 무슨 말과 행동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 굉장히 불쾌한 표현을 했었고, 그 아주머니는 애기 엄마가 안쓰러워서 한 소리 가지고 뭘 그렇게 반응하냐고 혀를 끌끌 차며 말씀하셨다.


저의 어떤 모습이 안쓰러우셨나요?

아주머니는 딸이 있어 성공한 인생이신가요?


물론 친정엄마도 아들 쌍둥이라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당신의 딸이 고생스러울까 봐, 이왕이면 딸 하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눈물을 보이기는 하셨지만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들은 "망한 인생"이란 표현은 너무 크나큰 상처로 남았다. 그 이후로 상당기간 혼자서 아이 셋을 데리고 외출은 하지 않았다.


한동안 하찮은 타인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어쩌다 아들만 셋"인 내 모습이 그렇게 비치고 있음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가뜩이나 세 아이의 엄마라는 삶이 온전히 내 것이지 않았던 내게 세 아이들의 존재가 무거운 갑옷 같아 벗어던지고 싶었다.


나스럽고 나다운 삶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육아는 희생의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심리적인 강박과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할 무렵 우연히 공고문을 하나 보게 되었다.

쌍둥이 백일이 되었을 즈음이었다.

한 번도 도전해보지 못했던 일대일 VIP 의전 통역 분야에 지원을 했고, IOC 위원 가운데 세계 요트연맹 회장님  의전팀에 배치되었다. 여러 차례의 교육 및 회의 참석을 위해 예상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쌍둥이들은 큰 아이를 카워주신 어린이집 원장님께 보내게 되면서 내 삶에 다시금 활기가 생기기 시작을 했다.


30대 중반의 아들만 셋인 아줌마의 신분으로 20여 일 간 집이 아닌 곳에서 머물며 지냈던 시간이 직접적으로 나의 커리어에 작용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다시 쌍둥이와 세 아들의 육아로 돌아갔을 때 조금은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을 망하게 놔두지는 않을 겁니다.



딸이 있었다면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을테고

딸이 있었다면 마음 공감의 상대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모든 딸들이 엄마에게 친구 같지 않으며 딸도 딸 나름이라는 것을 사실을 너무 잘 안다.



나를 바꾸어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고

여자 사람 엄마의 감정선을 공감받기는 어렵겠지만

모든 아들이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으며, 아들도 아들 나름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는다.


나이가 들어 건강검진 탈의실에 같이 들어가 줄 딸은 없지만 (얼마전 친정엄마 건강검진에 동행했을때 들었던 생각) 변기 뚜껑을 열고 볼일을 보거나 앉아서 볼일을 보는 일만 개선이 된다면 아들만 셋 그리고 한 남자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것이 나쁠 이유는 없다.


아들만 셋이라서

혹은 딸이 없어서

내 인생이 망할 일은 절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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