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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매니저Y Dec 03. 2021

두 번의 출산_어쩌다 아들만 셋

어쩌다 아들만 셋

어쩌다 보니 아들 셋의 쌍둥이 엄마이자 야구선수를 꿈꾸는 아이의 엄마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2013년도로 돌아가 보지 않을 수가 없다.  


2013년 > 2월 
이 폴더는 비어있습니다


20여 년치 사진들을 모아놓은 외장하드의 2013년 2월 폴더는 텅~ 비어있다. 

카카오스토리가 활발하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SNS 어디에도 그 달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내 인생의 큰 축에 변화가 찾아왔던 2013년 2월





난임부부, 임신중독, 37주 긴급 출산 후 대학병원 입원이라는 이벤트들을 겪은 남편과 나는 둘째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만 5년 만에 다시 임신 시도를 해보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 식구의 그림을 그리며 우리의 보금자리로 들어가기로 결정했고,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5회 차 시도를 하던 중 이사날짜가 잡혔다. 


2012년 12월 31일

결혼 10년 동안 세입자가 살던 집을 세 식구가 살기 위해 전체 리모델링을 하고 이사를 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아이를 위한 공간, 나와 남편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놓으니 세 식구에게 최적화된 상태가 되었다. 키가 큰 나에게 맞춰 높게 제작한 주방가구는 집을 팔고 나니 아쉬움이 제일 큰 부분이다. 


2013년 1월 초

마지막 시도에서 착상이 잘되어 임신 수치가 매우 높게 나왔단다. 살짝 당황하기는 했지만 자연임신이 아니라 모든 수정에서 착상까지 미세한 수치 확인을 위한 검사가 매주 이루어졌고, 산모 수첩을 받을 수 있는 아기집 확인을 위해 두 주를 더 기다려야 했다. 


2013년 1월 중순

초음파를 확인하는 의사의 손이 굉장히 신중하게 느릿느릿하다. 아기집이 2개인 것 같단다

첫째 아이의 출산과정을 함께 해준 담당의사는 적잖이 황당해하는 나를 보더니, 성장 속도가 달라 하나는 자연도태되는 경우도 흔하게 있으니 기다려보자고 했다. 내가 당장이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아 보였나 보다. 


쌍둥이라고? 

졸지에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그럼 내가 다시 일을 할 수는 있는 거야?

육아가 끝이 나기는 할까?

내 인생은 어디로 가는 건데?



2013년 2월 

두 생명이 한 몸속에서 자라는 것에 대한 신비로움과 감사함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두 개의 아기집은 엄마의 야속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엄마의 몸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심장소리도 우렁찼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옵션을 찾느라 2013년 2월을 흘려보냈던 것 같다.


엄마의 근심과 걱정에 불을 끼얹을까봐 존재감을 감추려 했었을까?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어 했던 2월 한 달 동안은 내가 쌍둥이를 품고 있는 임산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내 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번 키워보지 뭐 어쩔 수 없잖아
심장소리를 들어버렸는걸....

좋은 날 올 거야, 죽기야 하겠어....? 를 다짐하며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제야 쌍둥이 손주, 쌍둥이 조카, 쌍둥이에 대한 신기함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I can do it"을 선언하자 녀석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끔찍한 입덧이 시작되었다. 


2013년 4월 16일

입덧 수액을 하루하루를 버텨냈고, 남매라고 확신하시던 시어머님의 말과는 달리, 그리고 모든 이의 바람과는 달리 뱃속의 두 아이는 모두 아들이라고 했다. 


쌍둥이예요 쿵!! 아들 쌍둥이예요 쿵쿵!!!

가슴이 쿵! 쿵쿵! 하고 내려앉았다. 


친정엄마는 울었고, 남편과 나는 웃었고, 시어머니는 어떤 반응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웃지요


아이들은 주수에 맞게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고, 임신중독 증상으로 언제 어느 때 응급상황이 올지 몰라 서울대 병원으로 전원을 해서 출산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큰 아이 때만큼의 큰 이벤트는 없었으나, 8개월 차에 들어서니 손끝 발끝의 감각이 없어졌고, 숨이 차서 누울 수도 앉아 있기도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2013년 9월 3일

윤 00 산모

첫째 아기 2.5kg  / 오전 11시 12분

둘째 아기 2.37kg / 오전 11시 16분

차가운 수술실에서 두 아이 얼굴을 한 번에 보는 순간 이 작고 여린 아이들을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던 2013년 2월의 시간들에 대한 미안함의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쌍둥이 임신기간이 끝이 났다. 




어쩌다 보니 아들 셋의 쌍둥이 엄마가 되었다. 

나를 바꾸어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아들 셋, 삼 형제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운동선수 엄마가 되었다.

인생의 축약본 같은 운동을 통해 아이와 내가 함께 커가는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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